[특별기고] 축구감독은 승부사가 아니라 스승이다

서정선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6-29 14: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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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지 않는 지도자는 선수들의 꿈을 잃게 한다

 

 

기업 CEO도, 군 지휘관도, 학교 교장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연구한다. 시장이 변하면 전략을 바꾸고, 전장이 변하면 작전을 수정하며, 교육이 변하면 수업도 달라진다. 그런데 유독 스포츠만 과거의 성공 경험을 반복한다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대 스포츠는 경험보다 학습 속도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월드컵 탈락은 한 경기의 패배로만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국가대표팀의 실패는 감독 한 사람의 전술 실패를 넘어, 선수들의 꿈과 국민적 기대, 그리고 한국 축구 시스템 전체의 책임을 묻게 만든다. 이번 한국 대표팀의 탈락을 보며 가장 아쉬웠던 대목은 단순히 패배가 아니었다. 패배할 수는 있다. 상대가 강할 수도 있고, 경기 흐름이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준비의 흔적이 부족해 보였다는 점이다. 상대가 달라도 경기 운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경기 상황이 바뀌어도 전술적 대응은 충분히 세밀하지 못했다.


필자는 축구감독을 학교의 스승과 같은 존재라고 본다. 학교 선생님은 매년 바뀌는 입시제도와 교육환경 속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의 진로를 고민한다. 학생의 성향, 강점, 약점, 가능성을 살피고 그에 맞는 학습계획을 세운다. 교사는 단순히 교과서를 읽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학생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사람이다.


좋은 스승은 학생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학생에게 맞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이 선수에게 전술을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지도자는 선수를 자신의 철학에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선수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다.


축구감독도 다르지 않다. 국가대표 감독은 단순히 선수 명단을 짜고 경기 당일 전술판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같은 완성형 선수만 관리하는 자리도 아니다.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 오른 젊은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상대를 분석하고, 경기별 맞춤 전략을 세우고, 선수의 장점을 살아나게 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의 진로를 연구하듯, 감독은 선수의 축구 인생을 연구해야 한다. 문제는 이번 대표팀에서 그런 연구의 깊이가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월드컵은 같은 전술을 반복하는 리그 경기가 아니다. 상대마다 압박 방식이 다르고, 수비 라인의 높이가 다르며, 중원 장악 방식도 다르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전혀 다른 시험지다. 그렇다면 감독은 매 경기 다른 해법을 준비해야 한다.


입시에서 국어, 수학, 영어 시험지가 다른데 같은 풀이법만 반복하는 교사가 있다면 학생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멕시코를 상대할 때와 남아공을 상대할 때의 해법은 달라야 한다. 체력, 스피드, 압박 강도, 전환 속도, 세트피스 대응까지 모두 달라야 한다. 그런데 팬들이 느낀 것은 맞춤형 전략보다 반복된 운영이었다.


감독의 실패는 기록으로 남지만, 선수에게 월드컵은 인생의 시간이다. 감독은 다음 팀을 맡을 수도 있고, 다른 자리에서 다시 평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수에게 월드컵 4년은 너무 길다. 어떤 선수에게는 이번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일 수 있다. 어떤 젊은 선수에게는 세계 무대에 자신을 증명할 가장 중요한 기회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감독의 무책임한 준비 부족은 단순한 전술 실패가 아니다. 선수들의 꿈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다.


한국의 일선 학교 선생님들은 높은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학생의 진학과 진로를 위해 많은 시간을 쓴다. 학생이 실패하면 다시 상담하고, 부족한 과목을 찾아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교육이 사람의 미래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감독도 사람의 미래를 다룬다. 선수들의 커리어, 국민의 기대, 한국 축구의 방향을 동시에 책임진다. 그래서 감독은 권한보다 책임이 먼저여야 한다. 명성보다 연구가 앞서야 한다. 과거의 경험보다 현재 세계 축구의 변화를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번 탈락이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 축구는 아직도 이름값과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감독을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계 축구의 변화에 맞춰 선수들을 성장시키고, 경기별로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있는가.


월드컵은 감독의 자존심을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다. 선수들이 평생 꿈꿔온 무대다. 그 무대에서 감독은 지휘관이기 전에 스승이어야 한다. 스승은 학생의 꿈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감독 역시 선수들의 꿈을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가 다시 시작하려면,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선수들의 꿈은 어디에서 보상받는가.
패배는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패배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전술 실패는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꿈을 낭비한 실패라면 더 깊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 축구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분명하다. 선수 위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선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전술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 경기 새로운 답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감독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결과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과는 얼마나 연구했는지, 얼마나 상대를 분석했는지, 얼마나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능성을 끌어올렸는지에 대한 총합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시험 문제를 연구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지도자는 노력하라고 말하기 전에 노력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국가대표 감독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선수들에게 정신력과 투지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상대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더 많은 전술을 준비하며, 경기마다 다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감독의 존재 이유다. 선수들은 감독을 믿고 자신의 축구 인생을 맡긴다. 국민은 감독을 믿고 대한민국을 맡긴다. 그 신뢰를 저버린다면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야 한다. 준비하지 않은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연구하지 않은 지도자는 선수들의 꿈을 맡을 자격이 없다.


감독은 패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 아니다. 패배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준비를 다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비판받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준비 부족으로 선수들의 월드컵이라는 단 한 번의 꿈을 잃게 했다면, 감독은 가장 먼저 선수들에게 고개 숙여야 한다. 지도자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은 실패는 용납되기 어렵다. 실패는 결과에서 끝나지만 준비 부족은 과정 전체를 부정한다. 지도자의 책임은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참회란 패배에 대한 후회가 아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온 제자들의 꿈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가장 깊은 책임의 고백이다. 대한민국 축구는 이제 명장보다 연구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경험보다 학습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권위보다 책임을 아는 지도자를 원한다. 감독은 승부사가 아니라 스승이다. 준비하지 않는 지도자는 패배를 만들지만, 준비하는 스승은 미래를 만든다.


대한민국 축구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전술이 아니다. 지도자의 자세다. 대한민국 축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유명한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의 꿈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스승이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선수들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요주간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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