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참정권을 박탈한 선관위, 사전투표를 폐지하라

박덕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6-09 13: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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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제도는 도입 이후 줄곧 부정선거 의혹의 진원지로 지목되어 왔다. 국민이 선거 과정 자체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의 토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불신을 걷어내려면 그 뿌리부터 잘라야 한다. 사전투표, 이제는 폐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국가적 행사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러나 지금의 사전투표는 편의성이라는 명분 뒤에서 불신과 의혹만 키워왔다. 선거를 축제로 만들어야 할 제도가 오히려 불신의 늪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사전투표를 전면 부정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직장인, 여행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에게 사전투표는 사실상 유일한 참정권 행사 수단이다. 실제로 지방선거 기준 사전투표율은 2014년 11.49%, 2018년 20.14%, 2022년 20.62%로 꾸준히 상승해 왔고, 이번 2026년 지방선거에서는 23.5%를 기록하며 사전투표 도입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운영과 관리의 부실이 불신을 키웠다는 주장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좋은 취지로 설계된 제도가 반복된 관리 실패로 국민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면, 그 제도는 존치의 근거를 잃은 것이다. 신뢰 없는 편의는 민주주의에서 편의가 아니라 독이다.

투표율을 높이는 방법이 사전투표뿐인 것도 아니다. 사전투표에 투입되는 막대한 예산을 국민에게 직접 환원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투표 참여자에게 지역 상품권을 지급한다면 투표율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국민이 선거를 신뢰하면서도 참여 자체를 즐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말문을 막히게 한다. 선관위는 내부 지침으로 본투표일 용지를 전체 선거인 수의 최소 50%만 인쇄하도록 하향 조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선거론자들이 잔여 투표용지를 문제 삼는다는 이유로 남는 용지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것이 선관위의 해명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전국 67개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으로 추가 공급이 이뤄졌고, 이 중 50곳에서는 실제로 추가 용지가 사용됐으며, 22곳에서는 잠시나마 투표가 완전히 멈췄다. 

 

부정선거 의혹을 잠재우려다 되레 투표 자체를 중단시킨 것이다. 시험지도 없이 입시시험을 치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선관위 선거정책실장은 "투표소별 선거인 수와 사전투표 결과, 선거일 투표 진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담당자 한 명의 실수가 아니다. 중앙선관위 차원의 구조적 판단 착오다. 선관위는 이미 국가기관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내던진 것이다.

선관위는 그동안 '헌법기관의 독립성'이라는 명분 아래 기득권과 폐쇄성을 철저히 지켜왔다. 헌법이 보장한 독립성은 정권과 정파로부터 선거를 지키라는 뜻이지, 회계와 인사를 불투명하게 틀어쥐고 감사를 피하라는 면죄부가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채용 비리 의혹과 불투명한 내부 운영으로 비판받으면서, 정작 본업인 선거 준비마저 이 꼴로 처리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적폐나 다름없다. 스스로 개혁할 능력을 잃은 선관위는 국회 입법을 통해서라도 해체 수준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사전투표 제도 역시 백지상태에서 다시 따져봐야 한다. 선거 행정에서 유권자 편의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는 제도의 신뢰성이다. 아무리 참여하기 편한 제도라도 주권자가 그 과정을 믿지 못한다면 민주주의 토대는 뿌리째 흔들린다. 오해와 불신이 겹겹이 쌓인 사전투표는 물론, 전산과 기계에 의존해 의혹을 키워온 전자개표 역시 국민 신뢰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 둘 다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는 기관이 요구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스스로 무결점을 증명해낼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투표용지 수요조차 감당하지 못해 주권자의 참정권을 박탈한 선관위에게 우리 선거의 미래를 더 이상 맡길 수 없다. 폐쇄적인 선관위 조직을 즉각 해체 수준으로 뜯어고치고, 불신의 온상인 사전투표제를 완전히 폐지하며, 국민이 신뢰하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선거 관리 체제를 밑바닥부터 다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이다.

 

 

일요주간 / 박덕수 칼럼니스트 happyworld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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