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개 시민사회단체·노동계 “모든 노동자 평등한 쉴 권리 보장”반발
-인원 수 상관없이 최소 면적만 제시…수천명 일하는 곳도 1.8평 보장 시 OK
-SK에코플랜트, 휴게실 부족에 떠밀려 공원 찾은 노동자에 불이익 공포 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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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개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계 등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 2 시행령 입법 예고를 규탄했다. <사진=건설산업연맹 제공> |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오는 8월 18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의 2(휴게시설의 설치) 개정에 따라 모든 사업장 내 휴게실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 시행령을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 50억원 미만 공사는 1년 적용 유예하면서 개정 법률 적용 대상은 전체 사업장의 ‘1.8%’로 줄었다. 이에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쉴 권리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휴게공간 면적과 관련해 머릿수와 관계없이 최소기준만 제시한 것을 두고 ‘비정상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실제로 경기도 이천에 있는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에서는 인원수 대비 부족한 휴게시설로 내부 잡음이 새기도 했다.
평등하지 ‘못’한 휴식권
참여연대, 국제민주연대, 노동건강연대 등 60여 개 단체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규탄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달 25일 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해당 법안의 시행령에 대해 ▲사업장 규모에 따른 적용제외와 적용유예 철폐 ▲휴게실 면적 기준을 1인당 단위면적으로 규정 ▲휴게시설 세부 기준을 노동조합과 합의해 시행하도록 규정 등 주문했다.
이들에 따르면, 노동부는 산안법 제128조 2의 대상을 ‘20인 이상 사업장과 20억원 이상 건설공사 현장’에 한정했다. 50인 미만, 50억원 이상 사업장은 적용을 1년 미뤘다. 20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제외했다. 휴게실 설치 관리기준도 단순 최소 면적으로 제시했다. 일례로 직원 수십 명이 일하는 곳임에도 최소 6㎡(1.8평) 이상 휴게실이 한 개라도 있다면 사업주 처벌은 불가한 셈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 법대로라면 1.8평에 50명이 빼곡히 앉아서 가둬져도 처벌받지 않는다. 물론 이마저도 20인 이하 사업장은 제외된다”라면서 “이제 잠시라도 허리 펴고 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으나 노동부의 시행령은 그 기대를 무너뜨리고 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김미경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우리 급식노동자들에게 휴게실이란, 8시간 적은 인원으로 2000명 어치 밥을 하기 위해 네다섯 시간씩 밥하기 위해 동동거다가 쉴 수 있는 한줄기 꿀물 같아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실상은 한 명도 제대로 발 뻗고 누울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좁은 면적, 제대로 된 휴식권 보장 불가
이들은 ‘쉴 권리’는 사업장 규모 별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평등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제대로 된 휴식을 위해서는 다리를 뻗거나 누워도 다른 사람과 부대끼지 않을 정도의 넓이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예고 된 기준(1.8평)으로는 서너 명이 다리 펴고 앉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최근 이천 반도체 공장 증설 건설현장에서는 인원수 대비 불충분한 휴게시설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로부터 불만을 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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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사진=newsis) |
지난 13일 SK에코플랜트(前 SK건설)의 하도급 업체 소속 직원인 A씨는 <일요주간>에 “사측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다”라고 제보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 이천 반도체 공장 증설 현장에서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입사 초부터 본인과 동료들은 반도체 공장 이천 캠퍼스 단지 내 공원과 중앙식당 등 편의시설을 자유로이 출입하며 사용해왔으나 13일을 기준으로 출입 금지 통보를 받았다. 공원에 안전모 등을 놓고 식사하거나 누워있는 모습에 대해 민원이 여럿 접수됐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SK에코플랜트가 A씨를 포함한 건설 노동자 등에 통보한 문서에 따르면 ‘공원 출입 및 단지 건물 앞 취식 등’은 ‘금지’되며 ‘지정된 동선’에서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를 어길 시 ‘패널티(불이익)’가 부과됨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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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SK에코플랜트가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단지 내에서 근무 중인 건설 노동자들에게 공원 사용 등을 규정토록 한 공문(왼)과 단지 내 사용 가능 및 불가능한 지역을 설명한 그림(오). <사진=제보자> |
A 씨는 <일요주간>과의 통화에서 “현재 단지 내에 7개의 휴게시설이 있으나 사용 인원이 너무 많다. 잠시라도 누워 휴식을 누리려고 해도 머리 바로 위에 다른 사람 발이 놓여 있거나 부딪혀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다”라면서 “공원은 사람에 치이고 밀리다 못해 찾아가게 된 마지막 휴식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A씨는 “해당 현장은 공장 증설 과정에서 사람을 추가 고용한 곳이기 때문에 인원 수가 1만 명 가까이 된다. 기존 반도체 제조 노동자분들이 사용하던 공간에 건설 노동자들이 대거 추가 투입되면서 한정된 휴게 시설이 포화 상태가 된 것”이라면서 “사람이 늘면 그만큼 식당이나 휴게실 등 편의 시설도 함께 늘려야 하지만 사측은 그러하지 않았다. 사람이 일만 한다고 생각하지, 먹고 자고 쉬는 존재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기존 편의 시설을 늘리지 않고 고용 인원만 늘린 것이 노동 조건 악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자는 취지의 공문이며 공원 출입을 통제하거나 편의시설 사용을 금지하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패널티라는 표현은 다운그레이드(downgrade)하여 정정할 것이며 향후 패널티 부과 계획도 없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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