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의 삶을 다 마친 후에 우리는 본래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9-04-26 1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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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37)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노자는 공자가 현실에 참여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깊은 마음 속에는 공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있었을 것이다. 허위와 기만, 죽음과 전쟁, 황폐와 절망의 시대에 애써서 세상을 바꾸려는 공자의 노력이 가상해 보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자는 공자에게 그 너머의 세상을 보라고 얘기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그 노력과 마음을 놓아버리고 세상이 저절로 펼쳐지도록 내버려 두라는 가르침을 공자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노력과 애을 다한 후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때가 온다. 이 땅에서의 삶을 다 마친 후에 우리는 본래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누구에게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잊고서 부귀화와 고성쇠를 잊고 내 본질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온다고 노자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孔子見老聃而語仁義 (공자견노담이어인의) 공자가 노자를 보고서 인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老聃曰 (노담왈) 노담이 말했다.
夫播穅眯目 則天地四方易位矣 (부파강미목 즉천지사방이위의) 모름지기 겨를 뿌려서 눈에 들어가면 천지사방이 위치가 바뀌어 보이고
蚊虻噆膚 則通昔不寐矣 (문맹참부 즉통석 불매의) 모기나 등에가 살갗을 물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니
夫仁義憯然乃憤吾心 亂莫大焉 (부인의참연 내분오심 난막대언) 무릇 인의는 참연하여 나의 마음을 심란케 하니 어지러움이 이보다 크지는 않다.
吾子使天下无失其朴 (오자사천하무실기박) 그대도 천하로 하여금 그 소박을 잃지 않게 하고
吾子亦放風而動 (오자역방풍이동) 그대 자신도 또한 바람부는대로 움직이며
總德而立矣 (총덕이립의) 덕을 거느려 서도록 하게.
又奚傑傑然揭仁義 (우해걸걸연게인의) 그런데 어찌하여서 힘들게 인의를 높이 들고서
若負建鼓而求亡子者邪 (약부건고이구망자자야) 큰 북을 지고서 도망간 죽은 아들을 찾듯 하는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양심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인의와 양심을 세상에 설파한 공자가 왔다간지 2천년이 지났지만 이 세상은 점점 더 인의는 땅에 떨어지고 참된 도덕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공자의 인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그나마 이 만큼이나 세상을 바꾸었다고 만족하면 좋겠지만, 이 세상을 바라보면 참된 평화와 행복은 드물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서 애쓴다 할지라도 내 마음속에 있는 온갖 번뇌와 망상은 또 어찌할 것인가? 인의와 도덕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억지로 누른다 한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추한 마음은 또 어찌할 것인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양심이 있으면 그 양심 밑에 있는 추악함이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있는데 양심을 들먹이며 인의를 들먹이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아무리 북을 치고 다니면서 세상의 부패와 거짓을 청산하자고 외친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음을 안다. 범죄와의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범죄는 조금도 줄지 않고 있다.

 


 

夫鵠不日浴而白 (부곡불일욕이백) 무릇 고니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烏不日黔而黑 (오불일검이흑)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물들이지 않아도 검으니
黑白之朴 不足以爲辯 (흑백지박 부족이위변) 흑백의 본래 모습은 논의할 것이 없고
名譽之觀 不足以爲廣 (명예지관 부족이위광) 명예의 모습은 크다고 할 수가 없소.
泉涸魚相與處於陸 (천학어상여처어륙) 샘이 마르면 고기는 육지에 있어서
相呴以濕 相濡以沫 (상포이습 상유이말)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물거품으로 적셔주시만
不若相忘於江湖 (불약상망어강호) 강이나 호수에 있으면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하오.

인의라는 것은 인간 에고의 동물 본성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이자 사회적인 학습이고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아가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인의를 애도 결국에는 에고인 ‘나’라는 것의 나타남이고 ‘나’라는 그것을 내세움이다. 인의를 찾고 도덕을 아무리 떠들어댄들, 그것은 결국 ‘나의 옳음’을 증
명하고 타인의 ‘잘못됨’을 지적하는 것에 불과하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한다.

내가 너보다 더 옳고, 내가 너보다 더 낫고, 내가 너보다 더 훌륭하다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높인다. 그런 인의에 대해서 노자는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쓴들 어찌 그 동물적 본성에서 나온 ‘나’라는 에고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물고기는 강과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물고기는 자신의 참된 본성대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와서 숨도 못 들이시면서 힘들어 하는 가운데, 서로의 비늘과 피부를 물로 적셔준들 어찌 그들의 고향인 강과 바다에서 사는 것만 할 것인가? 까마귀와 백로는 그들의 본성대로 살아간다. 그들의 본성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본성이 있다. ‘에고 본성’과 ‘참나 본성’이다. 에고는 아무리 애쓴다 한들 에고일 뿐이다. 그런 에고는 극복할 수 없다. 그런 본성은 아무리 갈고 닦은들 결국 에고일 뿐이다.

이 최첨단의 과학기술시대에 우리는 자신의 참된 고향인 강과 바다를 잊어버리고 육지에 와서 서로에게 습기를 뿜어주고 물을 적셔주지만 어찌 그것으로 물고기가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겠는가라고 노자는 묻고 있다. 이 경쟁의 시대에 서로 습기를 적셔주고 물질을 조금 더 나눈다 한들, 그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물고기가 숨을 쉴 수 없듯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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