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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최근 발표된 감사원의 선거관리위원회 감사 보고는 충격적이다. 직원 채용과 관련된 의혹은 파면 팔수록 번져나가니 끝 간 데를 알 수가 없다. 감사원의 조사 활동이 사실을 향해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이미 밝혀 사실만으로도 민심 이반 현상이 심한데도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사가 위헌이라며 거부감으로 맞섰다.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며 외부의 일체 간섭을 배제하는 무소불위 권위를 지키기에 안달이다. 민주국가에서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외부 감시에 무풍지대라니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헌법재판소는 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에 명시된 기관이라는 명분으로 비리로 얼룩진 선관위 손을 들어 주었다. 내가 보기에 이미 드러난 채용 비리 사실만으로도 선관위는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감사 무풍지대에서 선관위 비리는 제도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끼리끼리 정서로 채용 비리가 굳어져 있었으며,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과는 족벌 관계로 설사 비리가 있어도 판결로 외풍을 막아주는 미덕(?)이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채용 비리가 사실로 확인되자 민심은 분노로 들끓었다. 2013~2023년 경력 채용에서 드러난 규정 위반만 879건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선관위의 이러한 사태의 책임 소재를 묻는 여당의 정치공세와 야당의 입 닫음 현상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부정선거 시비에서 채용 비리로 사건이 전도되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국민은 분개했고 사법부는 침묵했다. 선관위는 마지 못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 책임의 소재와 사실 규명은 흐지부지하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뜨거운 현안이 되는 까닭은 여권의 '계엄 계몽성'과 야당의 '내란 프레임'의 중심에 선거관리위원회의 문제가 존재하며, 그 책임이 어느 쪽으로 귀착되느냐에 따라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은 선관위의 '선' 자만 나와도 민감하며 불법 채용의 책임 소재를 따지자는 목소리도 높다.
이러한 비리가 드러났지만 처음 선관위 누구도 '나의 책임'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국민의 들끓는 분노에 뒤늦게 노태악 선거관리위원장이 '책임 통감'이라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가 나의 책임이고,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책임을 자인하고 나섰다 한들 그 말이 그 말이다. '책임이 없다' 는 말이나 '책임을 지겠다' 는 그 말이 그 말인 것이고 하나 마나 한 소리이고 들으나 마나 한 헛소리다. 그 말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무내용하다. 왜냐면 설사 그가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 책임을 질 도리나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이 보장한 헌법기관으로 독립기관이지만, 주요 수뇌부 구성원을 들여다보면 판사들이 구성원으로 채워져 사법부와 다름이 없다. 권력의 입김에서 벗어나 선거를 엄중히 치르라고 헌법에 못 박은 독립 기구인데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다 보니 조직이 심하게 부패했다. 감사원의 직무 감찰도 안 받겠다고 헌법재판소로 달려갔는데 헌재는 선관위 편을 들어줘 감사원 직무 감찰마저 위헌이라 했다. 헌재의 선관위 편들기에서 드러난 사실은 판사ㆍ대법관 등 현직 법관이 선관위원장과 주요 요직을 겸직하고 있는 지배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선관위는 아무리 잘못을 한들 잘못이 드러나지 않으며, 잘못하는 게 없다. 2020년 총선 직후 선 무효 소송이 120건 쏟아졌지만, 최초 판결은 820일 걸렸고 5건만 재점표했으며 나머지는 다 기각됐다.
선관위의 편을 들어주는 사법부의 권위가 요즘처럼 추락한 적이 있었나 싶다. 국민이 직접 뽑지 않는 사법부의 권위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사법부의 권위는 원천적으로 무엇일까.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공정함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전부일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권위는 외부의 공격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저잣거리에서는 재판이 조선 시대 사또 재판처럼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과정과 궁예의 관심법 재판이라는 비아냥이 있다. 결정문이 치밀한 논리와 논증으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뛰게 하지는 못할망정 헛웃음을 짓게 하는 판결이 비일비재하다. 이헌령 비헌령으로 편향적이고 정파성을 노출한 판결이 반복적으로 쌓이면서 신뢰에 기반한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이러한 사법부의 법잣대 아래에서 국민은 머리를 조아리고 수긍해야만 하는 미천한 백성일 뿐인가. 사법부가 갈등의 종결자가 되어야지 새로운 갈등의 생산자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어느 제도든 허점이나 오류는 있게 마련이고 수정 보완하면 되는데 선관위는 그럴 장치도, 의지도 없어 논란을 키웠다. 통제를 안 받고 권한은 막강하니 언제든 논란의 중심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선거 관련 업무를 중시하면서 자체의 자정과 민주주의적인 방법을 통해 정확한 선거 감시, 감독으로 공익에 기여하는 존재다. 이것이 선관위의 공공성이다. 사회의 공적 이익을 위해 희생과 질책을 각오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정확성과 투명성에 긴장이 없는 선관위는 헌법기관의 지위를 누릴만한 자격이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가장 공명정대해야 할 기관이 비리의 온상이며 내부 인사관리가 취약한 상태로는 올바른 선거 관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드러난 조직 및 관리 문제는 어떤 개혁으로도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뿌리 깊은 국민의 불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선관위가 무엇을 뉘우쳐야 하는지, 선관위가 어떤 개혁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또 물어 전 국민이 신뢰하는 확고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고매한 도덕의 언어들이 인간들의 탐욕으로 여지없이 무너져내리는 위선의 시대에 유독 선관위의 잘못을 따지는 고담준론과 명석한 이론이 아무짝 쓸데없는 잔소리로 들릴지라도, 그럼에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올바름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것을 국민은 굳게 믿고 있다. 과거 일부 정치인 주장했던 선관위의 문제는, 어떤 일이든 과정에서 일어나는 지엽적 작은 것에 불과했기에, 다만 그것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의혹이 사실에 접근한다면 그동안 국가는 무엇을 했고, 선관위의 처신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 상태로 선관위를 방치해도 되는가.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는 다 다르다. 구성원은 이제부터라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헌법을 바꿔서라도 뜯어고치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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