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 송기옥 칼럼니스트] 부안 변산 땅에는 지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새만금의 시발점인 변산 대항리와 군산 비응도를 잇는 세계 최장의 33.9km 방조제를 따라 곧은 도로가 완공되어 4월 27일 드디어 개통 되었다. 19년간의 공사를 쉬었다, 다시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오늘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연간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 할 것으로 예상되며, 바야흐로 동북아 거점도시인 새만금 명품시대가 열리게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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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진강
부안을 오자면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인 김제 만경 지평선 길을 지나 부안의 관문인 동진강을 건너게 된다. 옛날 김제, 부안 골 원님끼리 다툼이 벌어졌는데, 김제원님은 동진강이 김제 땅이다. 부안원님은 부안 땅이라고 서로 주장을 하였다 한다.
부안원님 왈-김제원님? 동진강이 서쪽에 있습니까? 동쪽에 있습니까?
김제원님 대답하길-그야 김제에서 보면 서쪽에 있지요!!
부안원님-그럼 서진강이라고 해야 맞지요. 부안 동쪽에 있어 동진강이라고 하니 부안 땅이 맞습니다.
김제원님- 두말 못하고 부안 동진강이 되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 성황산(일명 上蘇山)성황사
원래 성황사는 성황신을 모신 당집이었다 한다. 서기 660년 백제의 부여가 함락당해 왜에 있던 의자왕의 아들 풍왕을 옹립하여 백제유민의 마지막 항전 터인 주류성(개암사 뒷산 4km 성)을 치기위해 당나라 소정방이 올라왔다는 해발 150m정도의 산으로 지금은 이매창의 시비 등이 서있는 부안군민의 휴식처로 ‘서림공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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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화 간척지와 전우(田愚1841-1922) 선생 사당
부안읍에서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동진면 문포에서 당시 하서면 돈지라는 지명 양끝을 막아 새만금의 1/10인 약 4000ha 간척지가 조성되어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일렁인다. 이름하여 계화 간척지로 박정희 군사정부가 1968년 10월에 착공하여 14년 10개월 만인 1977.12월에 완공되었으며 약 400ha에 해당하는 청호저수지는 우리나라 제일가는 인공호수며 한때는 물반, 고기 반으로 경향 각지의 강태공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전우(호- 간재) 선생은 한말의 마지막 거유(巨儒)로써 1905년 을사늑약의 울분을 참다못해 여러 번의 상소를 올렸으나 허사였다.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힘없이 기울어가는 나라를 더 이상 어찌 못한 채 서해 낙도인 위도 왕등도에 들어가 살다가 계화도로 와서 10년 생활로 마지막을 보냈는데 전국에서 몰려든 제자만도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돈지포구에서 보는 고군산도와 함께하는 돈지일몰이 장관이다.
▲ 석불산과 고희장군
석불산(288m)은 변산의 끝자락으로 등룡리 잿등에서 청호지에 이르러 병풍처럼 드리워져 북풍을 막아주는 장장 6km는 족히 되리라. 그 옛날 중국에서 작은 배 한척에 불상이 실려 산 너머 불등리(佛登里)에 올라 석불이 이산으로 숨었다 하여 석불산이라 했다.
1592년 임진왜란 시 고희장군이 선조대왕을 엎고 강을 건너 의주까지 몽진하는데 공을 세웠다하여 공신으로 추대 이 산을 하사하였다 하며, 그의 묘와 유물과 사당이 있으며 묘하게도 석불산 영상렌드 왜관 셋트장이 들어서 ‘불멸의 이순신, 촬영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가 산 정상에 오르면 망망대해 칠산 바다와 고군산도와 변산의 경관이 한눈에 보여 아름답기 그지없다.
필자의 집에서 10분 거리로 가끔씩 올라 체력 단련과 작품 구상을 하기도 한다.
▲ 우슬재
부안읍에서 서쪽으로 8km 지점인 하서면 네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은 내변산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은 새만금,격포 채석강으로 가는 길목이다. 내변산 입구 옥문(玉門)지 맑은 시냇물이 샘밭들로 흘러 가뭄 없는 비옥한 땅을 이뤄 조설팔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전라감사 이서구와 암행어사 박문수가 말했다고 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경치 좋은 동네가 있다. 봄이면 살구꽃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이름하여 내변산의 깨끗한 지하 샘물이 마를 새 없이 솟아나는 신성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필자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문전옥답과 해묵은 한옥을 보수하여 7대째 고집스럽게 지키며 작품생활을 하고 있다.
이 마을과 연결된 무릉도원 같은 도화동(挑花洞)이라는 동네를 지나 소가 무릎을 꿇은 형국이라는 우슬재를 넘어가면 남수동과 내변산의 백골물이 모여 흐른다는 백천내가 지금은 1급수 부안땜 식수원에 잠긴 중계 골짜기를 더듬어 볼 수가 있다.
▲ 직소폭포
이 고장 출신인 아동 문학가인 이준섭(소파상 수상) 시인이 정년을 하고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와 마지막 고향발전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며 가끔씩 직소폭포와 내변산의 절경을 필자와 같이 서 유람하기도 하며 작품 구상도 한다.
내변산에서 가장 깊숙한 곳이 사자동 직소폭포다. 폭포로써의 갖출 것을 다 갖춘 30m의 절벽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옥구슬 같은 폭포수는 변산의 제일가는 절경이요 자랑거리다. 송도의 3절(박연폭포, 황진이, 서경덕)이 있다면 부안의 3절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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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계 유형원(柳馨遠1622-1673)과 허균(許均)
유형원은 조선조 실학의 비조(鼻祖)요 신기원을 이룬 대학자다. 내변산의 청림리가 고향인 청림 고재흠 수필가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전주에서 주로 생활을 하지만 주말이면 주례청탁이 밀려 지금까지 400쌍을 넘게 주례를 선 기인이다. 풍부한 한학 지식은 물론 건장한 체구로 두주불사하는 덕인이시다. 가끔 만나 부안 고향 발전을 위해 담론을 나누기도 한다.
청림리를 지나 우반동재를 넘어서 내려 가다보면 우측 옥녀봉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반계서당이 보인다. 반계는 이곳에서 칩거하면서 후학을 길러내며 19년 동안 반계수록을 28권이나 지었다. 후일 다산 정약용이 반계수록을 연구 실천을 한 실학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좌측 산 중턱에는 우반동 선계폭포위 정사암자라는 곳에서 홍길동전을 집필한 허균이 이고장의 명기 이매창과 국화주를 마시며 풍광을 즐긴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전남 장성이 홍길동의 무대라고 하지만 이곳 우반동굴 일명 도적굴과 소 천엽 속 같다는 내변산에 숨어든 홍길동의 활약무대! 마지막에는 율도국(이상향)으로 갔다는 그 곳이 위도라는 배경과 시나리오가 가장 접근성이 잘 맞는다. 필자는 이준섭 시인과 이곳을 답사하면서 홍길동전을 밝히는 소설구상을 하기도 했다.
▲ 부안 해변온천장과 부안 땜
필자의 집을 가운데 둔 상서와 하서면 갈림길에서 외변산이 시작되는 백련리를 지나 바람모퉁이에 오르면 시원스럽게 칠산 바다와 새만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리막길을 가다보면 좌편에 산 하나를 통째로 삼켜버린 산 뚜껑이 날아간 펑퍼짐한 돌산이 나온다. 그 돌로 새만금 방조제를 쌓았다. 바위를 토석을 들어낸 그 암반위에 호텔급 고급 콘도가 들어서면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식처가 될 것으로 본다.
좌편 골짜기 마을이 대광(大光)이라는 동네다. 예로부터 큰 불빛이 비치리라는 예언이 담겨진 마을 이름이다. 그 뒷산이 변산의 제일봉인 의상봉(509m)이다. 앞에는 새만금과 비안도가 손에 잡힐 듯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군사시설이 해제되면 또 하나의 명품이 되리라.
이 일대에 ‘세계적인 문학동산 책 마을’을 조성했으면 한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해창다리 건너 바로 연접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해변 온천인 변산온천장과 우편 깊숙한 골에 온천수가 나온다는 묵정(墨井) 마을이 있다. 이 고장 출신인 그 유명한 최기인 소설가의 ‘똠방각하’의 주 무대가 여기다. 변산 물은 한국에서 제일 깨끗한 1급수인 변산 땜의 식수원이 되었고 남아돌아 이웃 고창까지 급수가 되며 그물이 넘쳐나 이곳 해창 다리 밑으로 흐른다.
부안 땜으로 가는 길목 역시 경치가 좋아 동양화 한 폭을 연상케 한다. 여름 우기 철 비가 많이 내릴 때는 벼락폭포가 괴성을 지른다. 부안 땜의 여수로의 뿌연 물방울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불케 하듯 장관이다.
여름철이면 깨끗한 물을 그냥 흘러 보낼게 아니라 이물을 가두어 자연 풀장과 보트도 띄울만한 곳이다.
이곳에 제주천지폭포주변 야외음악당처럼 꾸며 놓아도 좋을 것 같다. 다양한 볼거리와 레져타운이 들어선다는 설이 나돌고 있어 땅값이 치솟고 있다.
시인들의 시비가 세워진 부안땜 광장과 대광의 문학동산 책마을과 변산온천장, 해창다리 새만금의 나들목으로 연계한 이곳은 변산의 명품도시를 만들기에 손색이 없는 자연 환경이 주어진 곳이다.
▲ 변산 마실길과 채석강, 적벽강
새만금 입구 해창을 지나 변산해수욕장의 고운 백사장의 해변길을 따라 원불교의 수도처인 새우섬 하섬은 진도 앞바다처럼 바다 물길이 갈라진다. 이곳에서부터 바닷가 길을 따라 이름하여 변산의 마실길이라 하여 주말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젊은이,노인 할 것 없이 한데 어우러진 쌍쌍이서 손을 잡고서 걷는 모습이 새로운 관광코스로 이채롭다.
4km 정도를 걷다보면 8도에 딸 하나씩을 두었다는 수성할매의 전설이 얽힌 봄이면 노오란 유채꽃이 피어나고 신우대가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책코스의 적벽강 주변과 이태백이 술에 취해 달을 잡으려다가 빠졌다는 채석강, 그리고 밤이면 소라귀에 파도소리가 자장가로 들려 포근한 잠에 취한다는 격포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500실을 자랑하는 호텔급 대명콘도는 평일에도 방을 구할 수 없을 정도며 주말이면 예약 없이는 방에 들어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수영장과 야외 풀장 등 시설이 잘 갖춰진 1급 콘도다. 대명콘도에서 내려다본 채석강은 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것 같은 기암절벽과 검은 콩돌 위를 걷는 적벽강가는 과연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관광자원의 보고로 변산의 자랑거리다. 멀리 보이는 위도 형제섬 사이로 빠져드는 일몰이 장관이다. 그래서 변산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소금강이라 부를 정도로 빼어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위도 핵폐기장 소동
격포에서 1시간 30분정도의 뱃길인 위도 고슴도치섬의 비경 또한 동양의 하와이라고도 부를 정도다.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해상사고 시 292명 목숨을 앗아간 곳이 임수도다. 전남곡성이 심청이 고향이라고 하는데 심청이가 제물이 된 임당수가 이곳이라고 위도 어민들은 추정하고 있다.
위도 지킴이 백은기 위도버스 기사 겸 문화관광해설사의 유머러스한 말재간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다. 위도에 가면 펄펄 뛰는 월척이 넘는 우럭을 잡아 즉석회가 일품이다. 위도 핵폐기장 소동은 전국적인 톱뉴스로 청정해역에 핵 쓰레기 처리장을 목숨 걸고 반대한 부안군민들은 찬, 반의 자중지란으로 고스란히 피해만 입고 상처만 남았다.
반대했던 혹자는 위도에 핵폐기장을 유치하고 대신 부안건설을 했다면 몇 십 년을 앞당겨 발전을 가져 왔으리라는 후회를 하는 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자연환경을 이용한 농, 수산물 생산과 함께 경쟁력을 키워 부가가치를 노려야 할 때이다.
또한 서해안 시대를 열 1억 2000만평의 광활한 새만금 땅은 각종 국제규모의 관광 타운과 새만금항의 물류기지와 장차 국제공항이 들어서면 13억 중국과 동북아를 향한 관문으로써 대한민국의 태풍의 눈으로 그 역할을 해낼 꿈의 요람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좋은 기회와 배경이 갖춰진 복 받은 부안 땅을 땀 흘려 일궈 21세기를 향한 변산반도의 미래에 큰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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