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생명 위협 느끼고 있는 순간에도 사 측은 원자력병원 이송 미루자고 제안"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피해자들 전폭적인 지원 시행·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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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병원 입원 당시 피해자의 양손 사진. (사진=전국삼성전자동조조합 제공) |
[일요주간=임태경 기자]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발생한 방사선 피폭 사고와 그 이후의 대응에서 드러난 회사의 무책임한 태도는 충격적이다. 사고 당시와 이후에 회사가 취한 일련의 조치는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좌절을 안겨줬으며 회사가 약속한 피해 지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27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삼성전자노조)은 기흥공장 8라인(8인치 Wafer 생산)에서 발생한 이 같은 방사선 피폭의 실태를 전하며 “이재룡 (삼성전자) 회장은 피해 노동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전폭적인 지원을 시행하고 노동조합에서 요구하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올해 5월 27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8라인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8인치 Wafer 생산 라인은 지난 7월 파업 기간 중 열악한 노동환경이 밝혀진 여성 노동자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 업무보고를 통해 발표한 중간 조사 내용에 따르면 피폭자 2명은 손 부위에 부종, 홍조, 박리 등이 있어 치료 및 추적 관찰 중이고 원안위가 개인별 피폭 시나리오를 분석해 재현실험과 선량평가 등을 수행한 결과 두 사람 모두 피부(손)에 대한 피폭 정도를 나타내는 등가 선량이 최소한의 안전 관리 허용 기준치를 뜻하는 선량한도인 연간 0.5 시버트(Sv,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단위)를 크게 초과한 94Sv, 285v로 고선량 방사선에 노출됐다.
원안위는 “방사선 작업종사자의 경우 1년에 최대 0.5 시버트(Sv)까지 노출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각각 188배, 56배 초과한 것”이라며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자료(2021-산업안전보건연구원-807 근로자건강진단 실무지침 제3권 유해인자별 건강장해)에 따르더라도 10Sv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될 경우 피부의 괴사, 표피탈락이 나타난다”면서 피해자의 손 사진을 통해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손에 28Sv가 피폭된 1명은 인체 전체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는 전신 유효선량이 130 mSv로 나타나 기준치인 연간 50 mSv를 초과했고 다른 한 명은 유효선량이 15 mSv로 분석 됐다”며 “피해자는 손가락 7개를 절단할 위기이기도 하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작업자 두 명 중 한 명은 손을 집어넣고 한 명은 손으로 핸드폰 촬영을 했는데 손을 집어넣은 작업자는 손에 피폭이 많았지만 내부 케이블 등이 방사선을 가려 몸에는 피폭이 적었던 반면 핸드폰으로 촬영한 작업자는 상체에 피폭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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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가 지난 8월 15일 노동조합 게시판에 직접 올린 방사선 피폭을 당한 양손 사진. (사진=전국삼성전자동조조합 제공) |
이와 관련 삼성전자 노조는 “사 측은 사고 이후 언론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최선의 치료 지원을 약속했으나 피해자들은 노동조합과의 인터뷰에서 회사의 대응이 충격적이고 부적절했다고 증언했다”며 “애사심을 갖고 회사를 믿었지만 사측의 태도에 실망한 피해자는 노동조합 게시판에 자신의 손 상태와 회사의 무책임한 대응을 공개하며 노동조합과의 인터뷰에 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이는 2007년 고 황유미 씨 사건 이후에도 산업재해 피해자들에 대한 사 측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며 사 측의 부실한 사고 대응 절차와 무책임한 태도를 강력히 규탄했다.
◇ 피해자 “삼성전자, 피폭 사고에 형식적 절차만 고수”
피해자들은 노동조합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5월 28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전리 방사선 피폭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몸에 이상을 느낀 피해자들은 피폭 의심 신고를 했다”며 “피해자들은 회사의 내규와 전문성을 믿고 목숨을 회사에 맡겼으나 사 측은 삼성의료원이라는 인프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하지 않았으며 적절한 치료 병원에 대한 안내조차 하지 않고 형식적인 절차만을 고수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사내 병원을 방문한 피해자들은 방사선 전문 진료 인력의 진단이 아닌 일반 의료진에 의해 형식적인 검사만 받게 됐다. 사업장에 다수의 방사선 설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당시 방사선 전문가를 만나볼 수 없었다”며 “피해자들은 방사선 진료 전문 병원인 원자력병원으로의 이송을 요청했으나 사내 규정에 따라 불가하며 대신 사 측의 제안에 따라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방사선 진료가 가능한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들은 사 측의 대응 매뉴얼에 큰 실망을 느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원자력병원으로의 이송이 거부된 이유가 사내 앰뷸런스가 단 한 대뿐이기 때문에 경기 남부 관외로의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사내 규정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더 이상 사측을 믿고 본인들의 목숨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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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의 아내가 병원비 납부를 위해 카드론 대출을 받은 후 피해자에게 입금한 이력. (사진=전국삼성전자동조조합 제공) |
◇ 피해자 생명보다 사건 은폐가 우선?...피해자 “피폭 정황 은폐 위해 검사 일정 지연 유도”
피해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순간에도 사 측은 원자력병원으로의 이송을 사고 다음 날인 29일로 미루자고 제안했다”며 “피해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즉시 원자력병원으로 이동해 림프구 수치 검사를 통해 방사선 신체 피폭 사실을 다행히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사 측의 제안대로 이송을 다음 날로 미뤘다면 정상으로 돌아온 림프구 수치 때문에 피폭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 측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지난 6월 3일 노동조합과의 회의에서도 마치 피해자들을 배려해 즉시 이송을 시킨 것처럼 주장했다”고 전했다.
◇ 피해자 “삼성전자, 피해자들 책임...간병인 지원 거부 및 경제적 부담 전가”
피해자들은 “사고 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사 측의 무책임함은 계속됐다”며 “피해자의 간병인 지원 요청이 거부됐으며 양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서류를 직접 작성하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했다. 결국 한 손만은 쓸 수 있었던 후임 피해자가 서류 작성을 도와주고 밥을 먹여주기도 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들은 또 “더욱 심각한 것은 원자력 의학원 진단서가 산재 신청에 필수적임을 알면서도 치료비 지급을 거부해 피해자 가족에게 극심한 경제적 곤경을 안겼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산재가 바로 안될 것 같으니 병원비라도 어떻게든 해달라’며 호소했지만 사 측은 절차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며 “어쩔 수 없이 피해자는 스스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피해자의 아내는 ‘치료를 받는 과정도 스트레스인데 병원비까지 걱정해야 하냐’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으며 현재 피해자 가족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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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와 피해자 아내가 주고 받은 대화 내용. (사진=전국삼성전자동조조합 제공) |
◇ 피해자들 “피해자 잘못으로 둔갑된 사고 보고서 유포” 고통
피해자들은 “지난 5월 29일 사 측이 사고 발생 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를 했다”며 “부서장들은 인터락(Interlock, 안전을 위해 특정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장비 작동을 막는 장치)이 있는 줄 몰랐느냐며 피해자에게 사고 귀책을 돌리는 허위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통원 치료를 받은 하루 만에 회사로 돌아와 개인 귀책에 대한 소명을 해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회사의 박 모 그룹장은 직접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피해자 개인에게 큰 정신적 부담을 줬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환경안전보건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인터락 실사를 정상적으로 했다면 이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 측은 최소한 허위 보고서를 쓴 모든 관계자들을 징계하고 사내 게시판에 공지해야 할 것이다. 만약 최소한의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로부터 확보한 관계자 명단을 참고해 노조 차원의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피해자 손가락 7개 절단 위기 속 방사선 사고 대응 직원들에게 포상
피해자들은 “사 측은 지난 7월 30일 방사선 사고에 대응한 환경안전담당 부서 직원들에게 포상을 수여했다”며 “피해자는 직접 환경안전팀장에게 ‘손가락을 7개 자를 위기에 있는데 시상으로 그걸 덮으려고 하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환경안전팀장은 침묵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회사의 이런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고 전했다.
피해자 이 모 씨는 “2012년 입사 이후 20여 개의 상장을 받았을 정도로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후 2개월 동안 겪은 회사의 태도를 보며 자신이 소모품처럼 다뤄졌다는 생각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며 “이러한 경험은 회사에 대한 그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켰고 그동안 회사에 쏟았던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고 실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대우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문제”라며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이러한 부당한 처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2019년 서울반도체에서 방사선 피폭 사고가 있었다. 당시 서울반도체는 사고의 책임을 '휴먼 에러'로 규정하며 피해자에게 전가했으나 결국 2019년 과징금 4050만 원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삼성전자 노조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서울반도체의 부적절한 대응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느냐”고 삼성전자를 향해 되물으며 “현재까지의 행태와 사고 보고서에 서울반도체와 똑같이 Human Error라는 단어를 쓴 것을 봤을 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이 명백하다. 94Sv이라는 치명적인 방사선 피폭 사고를 단순히 작업자의 실수로 치부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사 측은 이제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조 “피해자가 2016년부터 주장한 노후 설비의 위험성 회사의 무시”
삼성전자 노조는 “피해자는 지난 2016년부터 노후된 8인치 설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설비 투자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그러나 회사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며 “회사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삼는 무책임한 경영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전폭 지원 △사고 책임자와 허위 보고서에 관여한 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방사선 장비를 다루는 전 직원의 1개월 내 특수 검진 실시 △방사선 안전 관리 시스템 전면 재검토 및 개선 (설비 투자 및 안전설비로 교체) △방사선 사고 발생 후 대응 절차 전면 재검토 및 개선 △정기적인 방사선 안전 점점 및 결과 공개”를 거듭 요구하고 이 같은 요구사항들을 반영한 재발방지대책을 오는 9월 안에 명확히 공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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