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세상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4-25 1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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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우리 역사에 4월은 유독 아픈 옹이가 많이 있다. 그런 아픔을 안고 맞이한 요즘, 방송과 언론에 각종 역사 문제와 과거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거꾸로 가는 정치의 수레바퀴,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세상.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역사전쟁 중이다. 정부 여당은 민족상잔을 벌인 6.25 전쟁이나 빛나는 산업화 시기의 역사는 애써 외면하고 해방 공간 남한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부정한 역사로 보고 이를 바로잡는다며 이른바 '역사 정치'를 벌이고 있다. 세월호 책임자 처벌과 십여 년 전 일어난 개인 성범죄 사건인 김학의, 장자연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 특별수사팀을 꾸려 큰 문제처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열전 같은 진통을 겪어야만 우리 세대가 치르고 있는 역사적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건가. 과연 역사적 사건에 대한 피해보상은 언제까지 지속되며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까.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세상. 세월의 강물이 역류하는 시대다.

과거 역사 진상 규명과 누추한 성추문 사건이 2019년 정치의 핵심 화두가 되기에는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흘러간 옛노래를 다시 부르는 격이 아닌가. 옛 노래인지 몰라서 그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것은 아닐 터이다. 새로 부를 노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논리와 별개로 존재하는 정치의 논리가 무엇인지 학습하지 못한 권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논리를 사회의 모든 영역에 적응하려고 든다.

정부, 여당에서 백년전 역사까지 들춰 새로운 평가를 하려는 것은 공허한 은유에 불과하다. 산적한 민생 현황 문제에 정치적 영향을 기울이기보다 언제쯤 끝날지 전혀 예측할 수없는 청산으로 정국을 끌고 간다면 그것은 여당이 자기 맘대로 아무런 일이나 할 수 있도록 직접 자신을 허가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적폐 청산, 인적 청산, 물적 청산에 이은 과거사 청산 등으로 반복되는 청산 정국의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고 이어져 가고 있다. 이런 청산의 상황이 우려스럽기가 짝이 없다. 이것은 여당 대표가 공공연히 말했던 20년 집권 구상 계획과 240석 원내 의원 수 당선의 초석 심기 일환으로 이참에 보수세력과 반대 세력은 아예 씨를 말리려 작정하고 시작한다.

과거로의 회귀 정치는 현재의 관심과 갈등을 과거 사건에 투영함으로써 일단 완성되어 묻혀 있었던 과거를 그 칠흑의 망각으로부터 현재의 갈등과 다툼의 현장으로 끌어내자는 역사 인식의 능동성을 상징하지만, 자칫 자기 주관주의의 오류에 빠지기 쉽고 따라서 진실성이 유용성으로 흘러버릴 위험을 안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미래보다 과거 진실규명 이라는 쪽으로 정치적 의미를 너무 많이 할애함으로써 현재의 난맥상으로 얽힌 문제의 관심을 거꾸로 과거로 돌리는 경우 이것은 정책 부재로 인한 자신감 결려와 현상황 인식의 실패다. 과거 잘못된 정치의 진실규명이 주는 약간의 안식에 귀의하여 과거에의 예종, 숙명론적 굴레를 스스로 만드는 잘못된 정치 행위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권의 지극한 정의로움이다. 자기도취적 현 정권이 역사적으로 왜곡된 것이라며 올바른 평가를 주장하여 행하는 것이 긍정적인 면도 있다. 긍정의 힘은 주위에 전염되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를 다시 파헤쳐 그 뜻을 바로 살피려다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예를 허다히 본다. 세월의 시간 속에 용도 폐기로 화석화된 사건을 생물을 취급하듯 조사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목청만 높았지 막상 결과는 헛방일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므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지당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오만과 독선으로 훗날 자신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명적인 행위로 비칠 수 있다.

지나간 시대의 사악함을 옹호할 생각도 없고 잘못을 범한 사람의 처벌을 비난할 의도도 없지만, 위정자는 혹시 자기만 선하다는 의식에 취하여 균형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극히 자기도취적인 지도자를 프로이드는 "타인의 생각에 둔감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스스로 위대하다고 느끼는 심리 유형을 '나르시시스트'라고 이름 지었다. 이들은 자신의 비판을 참지 못하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100년 전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발표한 독립선언서에는 망국의 빌미를 제공한 과거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민족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거부했던 기성세대에 대한 원망도 한 문장도 없다. "자신을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고 했다. 100년 전을 돌아보면 저절로 지금의 우리 정치형태를 살피고 되묻게 된다. 과거의 잘잘못에 발목을 잡거나, 스스로 잡혀 있지는 않은가. 과거를 탓할 만큼 나라와 주변 여건이 좋은가.

독립 만세운동 100주년이 된 지금 정치인들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서민 현실에 닿지 않는 정권의 정의는 참 정의인가.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갖고 있는가. 나라다운 나라로 가는 길이 왜 이리 먼가. 세간의 담론이 왜 과거에만 쏠리는가. 검찰지검에서 수사해도 될 김학의, 장자연의 누추한 사건들에 특별수사팀을 꾸려 정권이 명운을 거는 속내는 무엇인가. 과거에 매달려 미래담론을 뭉개며 내일을 향한 발걸음 을 멈추게 하는 편협한 정치 형태가 우려스럽기만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려는 과거 회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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