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론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국민통합의 길로 다함께 나아가야 한다

김쌍주 대기자 / 기사승인 : 2019-11-05 10: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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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쌍주 대기자
[일요주간 = 김쌍주 대기자] 국론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여·야의 정치적 공방이 ‘검찰개혁’과 ‘공수처·선거법’을 놓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대립이 격화되면서 진영 간 세(勢) 대결양상으로 비화돼 국론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은 당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갈등을 풀고 하나로 묶으려는 ‘국민통합’의 노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한 의지가 나쁜 정치로 이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곤혹스런 일이다. 이런 경우가 우리정치영역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영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좋은 사람인데, 그가 속한 조직 안에서의 역할이나 그가 속한 조직 자체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우리는 흔히 본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신념들이 실제 결과로는 얼마나 나쁘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경우들을 종종 목도한다.

그렇다면 애초 우리가 지녔던 신념이란 것은 아예 옳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마치 조선시대를 다시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조선시대 그렇게 인재를 중용하여 잘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대왕시대에 왜, 그렇게 당파싸움이 심했던 것일까?

사림이 처음으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것은 선조8년(1575)이고, 인사관리권을 갖고 있었던 이조전랑 벼슬자리를 둘러싸고 시작된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부터 연유된다. 당시 이조전랑이었던 김효원이 자신의 후임으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거론되자 외척이라는 이유로 심충겸을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대체로 나이가 지긋한 사대부들은 심의겸을 지지하였고, 젊은 층에서는 김효원을 지지하였다. 오늘날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간의 다툼과 갈등양상을 비교해보면 마치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동인과 서인의 편 가르기가 심화되어 국정혼란이 초래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임진왜란 이전의 선조대왕시대에 주목해야 한다. 조선이 오랜 기간 평화로운 시절을 겪고 있었고 긴장상태가 없는 상황 하에서 당쟁은 날로 격화되었고, 결국 국력이 분산되어 허약한 체질이 돼버렸던 것이다.

이때,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를 평정 한 뒤 암살되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590년 반대세력을 물리치고 일본을 다스리는 최고지위에 올랐다. 조선은 점점 힘이 분산되어 가는 반면, 일본은 점점 힘이 모아져 끝내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지금은 조선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도맡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치인(治人)’의 기회를 갖는다. 굳이 자신이 직접 치인할 기회를 못 가져도,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투표와 엄청난 양의 정보가 공개되는 SNS를 통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수기와 치인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뽑는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믿음의 현실적인 증거는 매우 미약하다. 조선시대 당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부정적인 측면에서 조명되고 있다. 그러한 당쟁의 이해는 대부분 정확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우리는 그 시대가 지향한 가치와 그 시대의 정치제도 및 관행 속에서 그 시대의 정치제도인 당쟁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누구나 알듯이 정치행위는 권력획득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갈등이 없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 면에서 당쟁은 보편적인 정치현상이다. 조선시대도 오늘날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은 사실 선조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섬세한 주목을 해야 마땅하다. 선조시대는 정치의 시대였다. 이 시대는 정치세력의 다양성 면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

흔히 선조시대를 당쟁이 발생한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조선시대 당쟁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조선시대만큼 정치에서 이상이 드높이 외쳐진 시대도 드물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선조대왕시대 정치세력들 간의 분열은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다른 일부는 도덕적 확신에 따른 행동의 결과이기도 했다. 도덕적 확신에 찬 사람은 결국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기력이 작용하는 공간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그들은 정치세력 간의 시비가 아닌 민생개혁에 대한 추구가 자신들도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들 중 극소수가 살아남아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왜 그토록 힘이 없었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짓밟혀야 했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한에 차야 했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극한을 겪어야 했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견뎌야 했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말할 수도 없었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분노할 수도 없었는가? 우리 모두가 깊이 고민해봐야 할 때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은 대통령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국민통합’ 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던 문 대통령의 취임사가 무색할 정도라는 여론이 팽배하다. 대통령은 “많은 분야에서 통합적인 정책을 시행해왔다”고 강조했지만, 납득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는 것 같다.

‘국민통합’ 은 국가의 기초체력으로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다. 그런 측면에서 가치와 이념의 대립 속에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날의 국론분열과 갈등을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절대 보장될 수 없다 .

국론분열과 갈등의 책임에 대해 여·야 정치권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민의가 광장에서 외쳐진다는 것은 정당정치와 의회정치가 실종됐다는 의미이다. 특히 국정운영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여당의 책임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끌어안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일은 집권여당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러나 작금의 여당지도부는 자성하기는커녕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분열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더욱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국민통합’ 을 잘 이루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안정된 정치문화에 있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도 국회 안으로 들어와 의회절차에 따라 토론의 형태로 진행되고 의견을 좁혀 나간다. 즉 의회가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핵심기제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국민통합’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가 그나마 세계로부터 부러움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미국인들은 정쟁은 용인되지만 ‘국민통합’을 흔드는 그 어떤 정치세력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영역은 경제주권, 안보주권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민통합’이다.

이제 문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남은 임기 동안 초심으로 돌아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국민통합’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국민통합’은 대한민국이 가장 시급히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아울러 분열된 국민의 상충된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며 국민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 중심에 대통령이 있기를 바래보며,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아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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