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싸움 잘 날 없는 사회를 생각하며...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11-05 1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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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이 시대는 진보 보수 세력의 '싸움질'이 불신, 증오를 키우며 시대의 9부 능선 위로 기어 올라가 참호를 구축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시대의 언어가 토론과 대화로 소통이 아니라 반목과 책임 떠넘기기로 단절을 완성해가는 이 광경은 저주받은 역질이거나, 거족적 치매 현상으로 안타깝게 보인다.

어느 시대에나 정치적 견해에 따른 차이로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하지만 치열했던 대립과 충돌도 그 제도권 안에서 머물렀으며, 그 범위를 벗어나면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진보·보수, 여당과 야당의 대립에는 전에 없었던 현상이 나타났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들 간의 충돌과 대립은 여과 없는 언어적 폭력으로 표출되고 나아가서는 대규모 군중을 동원, 세(勢) 과시로 이어졌다. 국가의 힘이 대외 위기 극복에 모여야 할 이때 불필요한 '싸움질'은 불행한 시대상을 반증한다.

조국 법무장관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이후, 여당과 야당은 정의, 평등, 불공정을 들먹여 가며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엎고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은 상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죽기 살기의 싸움이었다. 특히 싸움 붙이기를 좋아하는 언론은 이 싸움을 부채질하며 극한으로 증폭시켰다. 적개심에 불타는 정치 언어들은 화산처럼 폭발했다. 싸움이 끝나는구나 싶으면 또 새로운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면 마치 싸우는 자동인형처럼 똑같은 죽기 살기의 싸움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대게 정치인들의 싸움은 명분과 실제(實際)는 너무 다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싸움이 치열할수록 공허하고 민주주의와 서민생활과는 무관하게 보인다. 이 싸움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이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민주주의라는 링 위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벌써 몇 라운드째인가. 이 싸움은 실체도, 정해놓은 룰도 반칙의 페널티도 없는 막무가내식 싸움이다. 세계 타이틀 매치에 나서는 권투선수는 사각의 링 위에서 싸운다. 그들의 승부는 명료하다. 쓰러지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링 위에서 여당과 야당 심지어는 새로운 선수로 구경꾼들까지 참여해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그래서 끝이 없고 이 링의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누구도 모른다.

어제 내 편인 검찰총장이 오늘은 적이 되는 진흙탕 싸움, 전방위로 전방위를 치는 이 싸움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사생결단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급기야 대규모 군중 동원으로 여론을 광장 정치에 불을 지폈다. '촛불 문화재'라 명(銘)한 집회 피켓 구호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무슨 문화재 행사가 상대편 죽이기로 작정하고 행사를 하는가. 태극기 집회도 별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나빠진 중요한 원인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 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된 것에 있다고 생각이 된다. 이 말은 한국 민주화에서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부정하려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그 뒤 정치인이 되고 정권에 주요 요직을 맡아 새로운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정치를 하면서도 중요 정치적 문제를 60, 70년도 군중동원식으로 세를 과시해 해결하려는 데 있다고 보인다.

기실 운동권의 역사적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의 현실 삶과 유리된 조건에서 의식화되면서 갖게 된 과잉 이념화된 사고방식과 도덕적 우월의식은 그것이 지속하는 시간에 비례해 부정적 효과를 더 크게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운동권이 다수를 차지하는 정권은 기존의 정치 체제 안에서 충분한 권력 기반을 확보하지 못해, 외부의 힘에 유혹을 느끼며 자기편 사람들을 동원, 싸움질의 정치로 정치적 약점을 덮으며 간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치를 하며 적을 만들지 않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차라리 적과 함께 살아가는 생산적인 방법을 찾는 편이 현명하다는 건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정치가 싸움과 갈등, 파당적 이해관계와 전략적 고려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그 때문에 정치란 늘 파당적 싸움에 골몰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세계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견을 통해 배우고 서로 연결된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민주적 전망을 폐쇄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이 소탐대실의 정치적 욕망을 '시대 정신'라는 명분으로 위장해 찬,반(贊反)을 벌이는 난장판 싸움에 이 시대를 사는 무고한 서민 살림살이는 쪼그라들고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있지도 않은 신기루를 만들어 이 아수라판을 벌리는 동안 국가 경제는 소리 없이 죽어간다. 그래서 주제넘지만 백면서생이 말한다. 정치에서 싸움을 피할 수는 없으나 잘 싸울 수는 있다. 정치인들에게 바란 건데, 싸우되 제발 잘 싸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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