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김정원
할아버지가 대인시장에서 수박을 고르신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수박을 툭툭 두드려 보고
“잘 익었다” 하시고
노점상 널조각 곁에 바짝 쪼그려 앉은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려 보고는
“아직 멀었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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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다음날 대못으로 테니스공만 한 수박부터 축구공 크기의 수박에 별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수박에 꽂힌 못이 붓펜처럼 움직이지 않자 수박마다 깊숙이 못을 찔러 놓습니다. 자기만의 표시를 해두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넓은 수박밭 표식을 마치고 집에 온 미나는 고단한 잠이 들고 새벽 코피를 흘리지요. 이른 아침 또다시 밖은 소란스럽습니다.
누군가 수박밭에 못질을 해놨다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지요. 잠이 덜 깬 미나는 밖으로 나와 대못을 꺼내 보이며 환하게 웃습니다. 순간 회초리를 내리치는 엄마를 피해 고양이처럼 도망을 칩니다. 자기 행동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지요. 이유도 묻지 않고 회초리를 든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대문 밖 맨발로 서성이다 집으로 들어갑니다. “잘난 딸년 땜에 올여름은 수박밭이 파리로 들끓겠네. 저리 미련해서야.” 엄마가 울먹입니다. “…아무려면 수박 농사가 자식보다 더 귀하겠어.” 잠시 후 미나에게 수박밭을 못질하게 된 이유를 들은 아버지의 눈꺼풀이 떨립니다. 아버지는 발에 흙을 털어주며 구멍 난 수박은 다 썩는다고 말하지요. “그럼, 수박을 비닐봉지로 싸 놓을까?”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젓습니다.
미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아빠 품에 안깁니다. 아빠의 땀 냄새가 산딸기 냄새처럼 달았지요. 딸기밭 위로 뜬 무지개를 보면 무지개 뿌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 그 뿌리를 파보리라고 다짐합니다. 무지개 뿌리 속에는 금은보석이 있다고 한 할머니의 말. 금을 파서 수박 농사를 망친 아버지에게 주고 싶다고요. 어린아이의 孝가 보여주는 웃지 못할 일화입니다. 그해 수박밭은 떼 지은 파리의 날갯짓 연주로 여름이 뜨거웠다고 해요. 이후 아버지는 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언제 철이 들까, 하고는 웃곤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세상에서 자식보다 귀한 것이 또 있을까요. 「팔월」을 통해 어린 시절 추억의 구근球根을 만져 보는 시간, 점자처럼 애틋하게 읽히네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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