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분노가 판치는 사회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6-07 11: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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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국회의원의 발언이 국가 비밀이다 아니다를 두고 여·야가 연일 들끓고 있다. 서로를 비난하고 고소와 맞고소로 대받으며 상대방의 정치적 행위 자체를 분노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며 국민들 눈에 비친 현시대는,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 분노하며 진흙 뻘밭에서 서로 이전투구하는, 인정머리가 털끝만큼도 없이 삭막한 “분노시대”에 살고 있다.

오랜만에 나름 먹물이 짙게 배고 사회성에 관심이 많은 후배를 만난 술자리에 서로의 안부와 생활을 물으며 현 사회에 관한 담소를 나누는 중, 나를 거슬리게 한 것은 내용보다 그의 목소리가 공격적인 용어 선택이었다. 사안 하나하나마다 흡사 싸움 난 것처럼 침을 튀기며 분노하여 목청을 올리니 "누가 보면 싸우는 줄 알겠다."라고, 소리를 좀 낮췄으면 하는 바람을 비쳤지만, 막무가내로 "누구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라며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있기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이다. 그냥 들어주며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많이 불편했다.

어느 시대든 분노는 올바르지 못한 현실에 대해 묵인하지 않겠다는 결단일 때가 많다. 인간 사회가 불평등과 부정의를 줄여 갈 수 있는 것은 그런 현실에 대한 누군가의 분노 때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절대 빈곤시대에 태어나 어렵게 공부한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안락한 삶에 안주하기보다 타인의 고통과 불합리한 사회현실에 분노하고 뭔가 개선을 위해 열정을 갖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분노와 열정만으로는 충분하게 개선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도 많다는 사실이다. 분노와 열정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라 할지라도, 그래도 뭔가 가치 있는 결실을 볼 수 있으려면 이성과 합리성의 안내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소통하고 의견 교환으로 공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생각에 차이와 이견이 있다면 무례한 비난에 앞서 건설적 대화의 길을 찾는 노력을 충분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견으로부터도 이해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 주는 기회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쟁점 사안에 잘못을 따져야 할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차원 높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일의 오류와 자신들이 가진 한계를 넘어선 실력을 같이 쌓아갈 수도 있다.

설령 옳지 않은 일이라 해도 모든 사인이 다 따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잠시 멈춰 문제의 구조가 스스로 드러나길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점에 관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때가 많다.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해야 하고, 누가 더 옳은가를 다투는 일과 공동의 협력적 실천을 통해 성과를 내는 일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말하는 그 어떤 논리도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없다.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도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뭔가 크고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더 많은 이견과 차이, 갈등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때마다 작은 차이 때문에 협력하지 못하고, 공존하기보다는 대립하고, 그러면서 '분노는 나의 힘'이라 외쳐대며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려 한다면 과연 우리는 무슨 일을 이룰 수 있을까.

말의 내용은 단단하고 행위의 결단은 견고하더라도 그 말의 방법은 부드러워서 차이를 갖는 여러 사람이 머물 심리적 공간을 넓히고 그러면서 모두 함께 일을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행복함의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는 실천적 지혜가 우리 사회 규범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정치권은 지금 너무 작은 일에도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에 따른 일반 국민의 사회생활도 작은 것에 과하리만큼 분노가 분출된다. 분노가 많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의를 갈구하기 때문일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학 교수는 "의견의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도덕적 분쟁을 인정하는 것"을 정의로 사회로 가는 첫 단계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담론이 어디로 가는가. 분노가 많은 현 시국을 큰 정치로 잠재우는 도량의 정치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왜일까.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분노가 폭발하는 정치가 진정으로 올바른 정치인가. 의견 불일치를 포용하는 큰 정치를 국민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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