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누가 역린(逆麟)을 건들이는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10-04 11: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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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우리나라 정치권은 유별난 히스테리 집단이다. 국민은 코로나에 지쳐 사회적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데 아픔을 어루만져줘야 할 정치권은 민생은 둿 전인 채 불평등, 불공정으로 여ㆍ야가 서로 싸우며 연일 스트레스를 키우고 있다. 이 와중에 정치인들의 부도덕은 파면 팔수록 의혹이 번져나가서 끝 간 데를 알 수가 없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접하며 느낀 건 국정운영 축으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집권 여당과 지도층이 당면 문제에 관한 사실에 접근하는 방법을 보며 어쩌면 저리도 뻔뻔할까 하고 생각이 든다. 장관이라는 공적 관계의 정당한 모습은 '아이고 내 새끼는' 이라는 이 애끓는 가족주의에 의해 송두리째 폐기처분되었고, 야당의 목청은 허공의 메아리로 맴돈다. 이래서 국민들이 집권 여당과 지도층 인사의 공동체 의식 부족과 도덕적 해이 문제로 분노하며 들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3년 동안 소리 높이 외친 언설이 정의, 평등이다. 언론들도 정의, 평등을 이 시대 화두처럼 보도했다. 이 말이 귀에 못이 박힌 국민은 그런 줄 알았으며 믿었다. 국민들 눈에는 과정과 결과에 민주주의가 서식할 만한 평등과 합리 공간이 예비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독재시대 불공정, 불평등의 잘못을 풀고 쓰다듬어 가지런히 해주고 그 동안에 잘못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그 언설은 이 시대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이러한 언설이 이 시대를 지배할 때 비로소 이 사회는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는 사회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제 편 감싸기로 정의와 평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금 결과로 빚어진 모든 사태들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21대 첫 정기국회 4일간 대정부질문은 정치인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여ㆍ야는 불공정을 들먹여가며 온 나라 청년들 가슴에 불을 지르고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은 상대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죽기 살기 싸움이다. 싸움 붙이기를 좋아하는 언론은 싸움에는 구경꾼이 많아야 흥미가 있다며 가상의 생각까지 덧대 이 싸움을 극한으로 증폭시켰고 적개심에 불타는 정치언어들은 화산처럼 폭발했다. 싸움이 소강상태에 이르면 또 다른 의혹으로 룰도 반칙도 없는 사생결단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추 장관 아들 병역 불평등 의혹이 휴가 연장이 아닌 휴가 미 복귀 무마 문제다. 국회는 이러한 사태의 책임 소재를 묻는 야당의 정치공세와 방어로 연일 고함과 삿대질을 거듭하고 있다. 추 장관 아들은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엄마 찬스'를 써서 무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 장관은 자식을 향한 '애간장'인데 세상은 '엄마 찬스'를 써 의혹을 부풀린다며 국회 답변에 심기 불편을 드러냈다.

춘풍추상(春風秋霜) 이 글은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 걸린 글이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나에게는 차갑게. 공직자 누구나에게 귀감으로 삼을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이 글을 거꾸로 뒤집는다면 내 자식에는 춘풍, 남의 자식에는 추상이다. 지금 언론에서 화제가 되는 두 법무장관의 자식 문제가 내 자식에는 춘풍, 남의 자식에게는 추상이기에 시끌시끌하다.

왜 유독 법무장관들만 논란에 중심인가. 법무부의 영문 명칭은 Ministry of Justice(정의부)다. 정의를 관장하는 두 법무장관을 둘러싼 불법, 반칙과 특권, 온정과 특혜에 대한 저열한 공방으로 국회는 일 년 내내 싸움판이다. 사건 발단이야 어떻게 되었든, 결과가 어떻게 매듭 되던, 정의를 관장하는 장관이 줄줄이 불공정 시비를 벌이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유력자의 딸이 시험 한번 없이 의사가 된다는 게 평등인가? 수사 잘하는 검사들을 좌천시키고 아부 잘하는 검사를 승진시키는 게 평등인가? 이래서 청년들이 들끓고 있다. 이런 정부가 공정을 외쳐 되니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한비자의 세난(說難)편에는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불공정 불평등에 '국민적 역린'이 있다. 이 시대 청년 세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세 가지 이슈로 입시, 병역, 취업 불공정이 그들에게는 역린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저축해도 아파트를 살 수 없다는 부동산 절대 불평등, 병역 문제 불공정 때문에 '공정 가치'는 청년들에겐 역린(逆鱗)으로 대단히 민감하다.

지금 들끓는 두 법무장관 자식들 논란은 그 역린을 건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기적 행위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불쏘시기 역할을 했다. 현 정권 내 진보기득세력과 86세대에게서 더 강고하게 지속되는 특권과 반칙, 세습과 특혜의 적폐가 청년들의 희망을 앗아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청년들에게는 교육과 병역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부모들에겐 특권을 못 가진 서러움을 안겨줬다. 아무리 '내 자식 사랑'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지만, 지도자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사회 지도층은 왜 도덕적 의무가 부족한가. 선진국 지도층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은 못 가질지언정 모럴 헤저드(moral hazard)라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
'엄마 찬스', '아빠 찬스'라며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병역, 교육 불공정 시비가 비단 두 법무장관만의 문제인가. 우리 사회 정치ㆍ경제 엘리트 모든 사람의 문제다. 그렇기에 사회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모범을 보여야할 지도층이 도덕의식 부족에 따른 '내 자식' 욕심으로 논란의 중심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정의와 평등의 언설은 허울 좋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국정운영에 더 큰 책임을 진 여당은 '국민의 역린'인 불평등, 불공정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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