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청문회 이대로 해야 하나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4-15 13:56:37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저런 방법으로 청문회를 한다면 저 자리에는 부처, 예수가 앉아도 별수 없을 걸." 고관을 뽑는 인사청문회가 범법자 심문 회처럼 본질이 호도된 것을 두고 지인이 내게 한 말이다. '오직 남의 약점만 들춰내 혐오 사회로 가는, 인간 이해의 방법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안겨주는 청문회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결같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치는 일은 쉽고 잘 진행될 수 있는가? 그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다. 후보자의 자질, 능력 검증보다 망신 주기, 약점 찌르기로 치부 드러내기로 변질한, 여·야의 정쟁으로 본질이 호도된 인사청문회. 문제점을 보완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여·야당에서는 '그때만 넘기면' 라는 사고에 젖어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불합리한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필요성이 무시되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사청문회법은 2000년에 도입되었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라고 만든 장치며 동시에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을 사전 검증하는 제도다. 올해로 20년째지만 미성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관 하겠다 나선 사람들 하나 같이 골라도 골라도 저렇게 똑같을까 할 만큼 의혹투성이다. 질의자도 업무의 적합성과 자질에 대한 검증은 사실상 뒷전이고 후보자의 사생활과 도덕적 결함에 초점을 맞춰 낯뜨겁고 분위기가 흐려 본질과는 거리감이 있다. 청문회 삼박자인 야당의 의혹 폭로, 여당의 묻지 마 옹호, 후보자의 송구, 사과, 반성을 매번 지켜보는 국민은 식상하다. 그런데도 더 기막힌 것은 국회가 부적격 판정을 내려도 청와대는 이를 존중치 않고 임명을 강행해 정국을 경색시킨다. 여·야가 공수가 바꿔도 하는 짓거리는 똑같기에 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웠을 경우 그 꼭짓점이 땅에 닿는 자리, 즉 피라미드의 전 중압이 한 점을 찌르는 바로 그 지점에 국회 청문회가 있고 국민의 눈이 있다. 이처럼 청문회는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다. 질의자는 꾸민 표정, 걸친 의상은 물론, 지위, 학벌, 경력 등 소위 겉치레에 대하여 지극히 냉정한 시선을 키워두고, 인간과 그 인간이 걸치고 있는 외식을 구별하는 통찰력으로 자신의 조리나 논리적 귀결로써 자기주장을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늘 후보자를 죄인 다루듯 소위 촌놈 겁주기식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는 고함으로, 말하는 입만 있고 듣는 귀는 없는 우격다짐으로 제대로의 자질 검증 쟁점에는 접근이 기피된 입씨름의 장이 되었다.

일찍이 선을 닦는다며 마조가 앉아서 좌선만 하고 있음을 본 스승 회양 스님이 곁에서 기와장을 계속 갈고 있다. 마조가 스승에게 말했다. "기왓장은 갈아서 무얼 할 것입니까?" 회양은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까 하네." 마조가 빈정거리며 "그렇다고 기와장이 거울이 되겠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스승이 말했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 없듯이 좌선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승이 말했다.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만약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때는 소를 때려야 하나 수레를 때려야 하나?" 국회에서 고관 나리들을 뽑는 인사청문회. 그 결과를 두고 국민들은 지금 청문회 제도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인사 청문회 제도가 나쁜가. 사람들이 운영을 잘못하고 있는가. '이대로... 괜찮나?'

표방가치와 실행가치의 표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청문회에서 국민은 무엇을 보았는가. 소위 가방끈이 길고 먹물이 짙은 지도층은 하나 같이 서민 정서와 거리가 변칙과 반칙의 선수들이다. 탈세, 부동산 투기, 금전적 부당이익, 위장전입 등 물질만능주의가 일상화된 그들의 세상살이 방식에 서민들은 혀가 내둘린다. 돈과 명예를 양손에 쥐어 삶이 공고해 부족한 게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은 보통사람의 사고를 비웃듯 '감투'라는 것까지 갖기를 원한다.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염치, 예의, 교양 이런 것은 아예 벗고 다니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민들은 저런 분들이 중심에서 국정을 운영한다며 '글쎄?'라는 생각을 가진다.

사람의 많은 부분은 상황에 따라 굴절되어 표현되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현상을 어떤 순수한 본질에 비추어 규정하려는 태도는 이상주의적 환상이 아니면 처음부터 부정적인 결론을 의도하는 비난 그 자체라 해야 한다. 또한 굴절되어 표현됨과 동시에 반대로 상황이 사람의 많은 부분을 굴절시킨다는 사실을 수긍한다면 올바른 청문회는 당사자 사고의 반대적인 것과 대비하고 전체 속에서의 그것 위치를 밝힘으로써 객관적 의의를 규정하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시계(時界) 열상의 변화 및 발전의 형태를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장과 주장의 대립이 논쟁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지적해주는 품위 있는 미래 지향적 장이 되어야 한다. 폭로를 위주로 인격을 탈탈 터는 것보다 업무수행 역량과 자질이 더 중요하게 기준을 두고 점수제를 도입하며 총점이 평균점 이하는 자동 탈락시키는 방식도 대안이다. 한국행정연구원 서원식 연구원은 "미국 인사청문회처럼 청와대가 사전에 검증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고 청문회 기간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문회와 후보자를 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매우 경멸적이며 절망적이다. 어떠한 사회든 대중은 다수이며 동시에 지혜롭다. 그들의 이질적인 요소에 동조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후보자가 비록 국민 정서상 미흡한 점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 될 게 없다”는 도덕 불감증 인사들이 나라를 이끄는 지금.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저버리는 공직자 후보자들. 그 사람들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은 받겠지만 국민으로부터는 실격이다. 법은 판결에 기준이 될지라도 판단에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판단의 기준은 서민의 상식이다. 매번 청문회 때마다 꼭 같이 반복 되풀이되는 낯뜨거운 상황, 국민은 언제까지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 불감증을 봐야 하나.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청문회 이대로 계속 진행해도 괜찮나. 제발 국민들을 좀 생각해주길 바란다.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