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5월의 녹음은 무삼히 짙어지는데...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5-15 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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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살림살이가 각박해지면 맘에 여유가 없어 계절의 아름다움과 그 변화를 놓치고 산다. 밝은 봄 햇살이 얇고 무겁게 느껴지는 날의 연속이다. 지난 넉 달 가까이 내리퍼붓는 코로나 폭설에 모든 것이 덥혔기 때문이다. 잠잠하다 싶었는데 또 고개를 쳐드는 무지막지한 코로나로 자연은 봄의 절정이지만 인간의 봄은 저만치에서 머뭇거린다.

지난 2월부터 불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꽃구경과 꽃몸살로 부산을 떨었던 지난 시절은 자취를 감추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스스로를 자가 격리해 꽃이 핀 건지 진 건지 감각마저 무심해졌다.

학교 문은 닫혔으며 비대면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일할 수 있는데도 그냥 쉬는 인구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일시 휴직자도 160만 명 폭증했다. 실업급여도 186만 명으로 전년도 42만 명 늘었다. 이념에 뒤틀린 경제정책으로 가뜩이나 힘에 부치는 와중에 불어닥친 코로나는 550만 자영업자 대부분에게 치명적이다.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이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경제 중병과 코로나 역병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 치른 선거에 여당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평소 야당 복이 많다고 회자 되었지만,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야당 복이 있었다. 소주성 정책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코로나 역병까지 가세하며 서민의 목줄을 조일 때, '돈 살포 동남풍'까지 많든 여권의 전략은 대승의 원인이 되었다. 충격적인 권력 비리와 경제 실정의 책임은 서민 표심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오직 나라님이 뿌리는 돈다발에 감읍하는 무지한 백성들까지 가세한 기막힌 선거였다.

민주당 49.9%(1434만여 표)대 통합당 41.5%(1191만여 표)로 243만여 표 차이지만 여·야의 의석 차이는 163석 대 84석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당은 촛불이 벚꽃으로 만개한 잔칫집이지만 통합당은 수술 불가능한 말기 암 선고를 받은 곡(哭)소리 나는 초상집이 되었다. 여당은 부자 몸조심으로 자세를 낮추었지만 야당은 선거가 끝난 1개월이 지난 지금도 멘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야당의 패배는 이미 예견되었다. 탄핵으로 갈라진 두 세력이 탄핵의 강이라는 은유의 강을 파놓고 강물에 서로 돌을 던지며 누구도 배를 띄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임박하자 많은 문제점은 덮고 공생을 위해 급조로 합당하였다. 불임(不姙) 정당에서 다산(多産) 정당으로 바꿔내기 위한 보수의 노력은 곁으로는 멀쩡해 보였으나 이미 산모(産母) 뼛속에는 골다공증을 드러냈으며, 몸속 암 덩어리를 국민은 내시경으로 들여다보았다. 공관위도 '안되게 하는 힘'이 막강함을 보여준 것 외에는 별로 한 게 없어 난산(難産)의 단초를 제공했다. 상대방 허를 찌르는 전략과 전술 없이 단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자가당착으로 완패했다.

통합당은 패인에 관한 분석은 고사하고 당을 추스르는 방법을 놓고도 사분오열이다. 안되는 집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소속당 의원의 사전투표 부정 의혹 제기와 이에 동조하는 듯한 통합당의 방관은 참패한 야당이 증거도 없이 유령만 좇는 형태로 이런 비상식적인 발상은 엄청난 상실을 겪었을 때의 심리 변화 과정인 '퀴불러 로스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등 5단계를 겪고 있던 셈이다.

보수세력과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하며 통렬한 반성을 해도 모자랄 통합당은 총선 결과는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고 코로나 때문이고 부정투표 때문이라고 자기 합리화하고 있다. 심지어 고위 당직자는 "국민의 선택에 절망했다. 정권 폭주를 막지 못한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한테 되돌아올 것"이라고 패배 책임을 유권자에게 돌렸다. 그러나 대구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김부겸 의원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라며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렸다.

언론은 통합당의 선거 참패를 재난에 비유하고 있다. 재난을 영어로 뜻풀이를 해보자면, 재난(disaster)은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를 가리킨다. 수렁 속에도 '별은 보인다.'는 말이 있다. 통합당이 빠진 재난의 수렁 속에서 다름의 이해와 연대의 힘이라는 별을 보면서 극복의 의지를 다져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아젠다로 전선을 형성해 희망을 주는, 생산적인 보수세력으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 역병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의료진의 봉사로 잘 이겨내고 있지만, 경제 역병은 다르다. 경제 역병은 이념에 뒤틀린 시장과 기업 적대 시장에서 창궐한다. 코로나까지 겹쳐 중병이 든 경제 위기를 마구잡이 포플리즘으로 치료가 가능한가. 자기 앞도 못 닦는 야당이 나라를 돌볼 수 있겠는가. 들려오는 서민들의 절박함이 정치권에는 소귀에 경 읽기가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절박함을 아는지 서민들의 한숨과 가슴앓이 사이로 5월의 녹음이 무삼히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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