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데스노트는 엿장수 노트인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9-17 15: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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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오래전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어렵게 마치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 중인 딸의 책상에 놓인 만화책을 우연히 보았다. 딸에게 '박사과정을 공부해야 할 네가 만화가 뭐야'라고 야단치듯 말했다. 돌아온 답이 아빠, 지금 청소년들이 열독하고 있는 일본 만화 작품 데스노트라는 것을 번역한 것인데 작가 발상이 놀랍다. 그렇게 해서 '데스노트'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정의당에서 '데스노트'라는 단어로 고관 후보자를 손 위에 올려놓고 줬다 폈다 하며 세상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데스노트는 2003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만화 스토리이다. 평범한 학생 라이토가 우연히 노트를 하나 줍고, 거기에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게 모티브다. 라이토는 나쁜 짓을 하여도 심판받지 않는 흉악범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가며 악을 처단하고자 많은 악당을 죽였다. 하지만 연쇄 살인 범죄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며 자신에게 죄를 묻자 라이토는 절규한다. "나야말로 정의야 약자를 구하는 신이고, 정의의 사자라고."

데스노트는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게는 이름만 적히면 끝이라는 저승사자의 명부장과 같은 것이다. 정의당이 인준을 거부한 안경환, 조대엽, 박기영 후보자가 낙마하는 것을 보며 "족집게 같다." "소름 끼친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특히 셀프 후원 논란으로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낙마할 때, 국민 상식에 따랐을 뿐이라고 故 노회찬 원내대표가 말했다. 국민 상식이라는 단어로 이름을 올렸다는 데스노트 잣대가 여론에 반(反)하는 경우로 바뀐 것에 대한 실망으로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이 정부 들어 청문회 때 자기들이 반대하면 어김없이 낙마한다고 주장하던 정의당 '데스노트'가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저잣거리 장사꾼 '거래노트'로 변질되어 여론은 정의당이 주장해온 데스노트의 시효가 끝났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오락가락, 원칙과 기준이 그때그때 상황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과도한 주식투자로 부적격 의견을 밝혔다가 적격의견으로 바꿨던 전례는 당시 노회찬 의원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창원지역 보궐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보은용이라는 뒷말이 있었다. 조국 장관 의혹이 불거진 한 달여 전만 해도 부적격으로 기울었던 의견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을 여당의 강행 처리 과정으로 정반대로 감싸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흔히 욕심에 눈이 먼다고 한다. 욕심이 생기면 볼 것을 잘 보지 못한다. 1개여 월 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초점을 빨아드린 조국 블랙홀에 정의당이 취한 행동을 보며 느낀 것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회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정의당도 당리당략 앞에서는 기존 정당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올바른 정치는 나라의 정의, 바른길, 절대다수 국민의 여론과 삶을 생각해야 한다. 정의당도 그건 안 보고 내 표 편만 생각한다.

그동안 많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독보적 의정활동으로 정의당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더 나은 민주주의 모델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했다. 사회적 약자, 더 나아가 모든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한다는 '공감 능력'은 진보 정당의 가장 큰 역량이자 자산이었다. 다수 지식인이 정의당의 의정 활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친 서민, 약자의 대변인으로서 보수 정권 때부터 보여줬던 공감 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에 데스노트라는 것으로 줄타기 의정활동을 벌여 공감 능력의 부재를 드러냈다는 것은 진보 정의당에겐 아픈 결과다.

리버럴리즘적 가치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느냐를 가르는 분기점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진영 논리에 따라 결정한 것은 정의당이 '과정에서의 공정'이라는 가치를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조국 대첩의 전투에서 정의당은 범여권의 정당으로써 가지는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그러나 단기적 전투에서 승리라는 것은 중장기적 의미에서 승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승리하려면 가치라는 측면에서 진전이 있어야 한다. 정의당은 조국 사태 블랙홀에서 패스트 트랙이라는 선물을 받고 쾌재를 부르며 ‘도랑 치고 가재를 잡는 수확’을 얻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정의당은 요구되는 존재 가치를 허물었다.

정의당은 지난 의정활동에서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씹어 봐야 한다. 마치 데스노트를 자기네들이 독점한 저승사자 살생명부로 착각하며 우매한 행동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블랙홀에서도 쾌재를 부르며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위선의 정치를 하였다. 여당의 선거법 강행처리 대가로 도덕성 잣대가 바뀌는 건 정의당이 줄곧 내세워온 정의가 아니다. 민주당 2중대 정의당에는 과연 정의가 있느냐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잠시 맡겨놓은 그 노트는 나에게는 나의 것이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것이다. 그러나 내 것도 아니고 당신 것도 아니고 우리 국민의 것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엿장수 가위 치듯 멋대로 쳐 ‘엿장수 노트’로 만들지 말라. 데스노트 만화 속에서는 정의가 과연 정의로운지 묻는 원작의 주제가 고스란히 재연된 것일까. 만화 데스노트에서 마지막에 적힌 이름은 주인공 ‘라이토‘라는 것을 기억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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