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손 안의 호두 같던 세상은
점점 바위처럼 자라더니
나중에는 산더미만 한
호랑이가 되어
그를 집어 삼키려 했다.
[일요주간 =박지영 기자] 영화감독 홍상수가 영화평론가 정성일과의 대담에서 “예를 들어 제가 아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저의 편견이 거의 없는 느낌을 받게 되면 저는 그 사람의 안으로 제가 들어가서 그 사람의 얼굴로 다시 나오는 그런 느낌을 받을 거예요. 그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될 때가 최고라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이것이야 말로 공감능력이 아닐까? ‘동감’은 상대방과 같은 상황에서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을 말하지만, ‘공감’은 상황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 너는 내가 아니냐!”고 하를 내기 전에 “내가 저 사람이 되어보자, 저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자”하고 마음을 바꿔먹는다면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겼던 관계도 어느새 따뜻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 그래서 ‘공감’은 ‘존중’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하지만 공감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끔 만나는 친구보다도 함께 지내는 가족에게 공감하기란 더 어려워 갈등하고 불행은 증폭된다.
따뜻한 위로
이 책속의 이야기들에는 그동안 삐걱거리기만 했던 가족과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관계를 회복해가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힘들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어렵지 않다.
소설가이면서 동화작가이기도한 저자 ‘이종은’의 짧은 이야기 모음 『공감』에는 45편의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은 저자기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가지각색 사연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단편소설과 에세이, 그 중간 지점에 놓여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장애인, 치매 환자, 워킹맘, 한부모 가족, 이혼과 재혼, 실업 등 개인 및 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물들이 어떻게 절망을 극복하고 세상으로 한 발 내 딛는지 그려낸다. 그 밑바탕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통한 관계 회복이 깔려있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넬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또, 화가 ‘박경민’의 그림이 상처투성이 인문들과 만나 묘한 여운을 준다.
가족의 탄생
2035년에는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 유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한 부모+자녀’ 가구가 200만 가구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급속한 초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관이 가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 부모 가정이나 이들의 재혼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함께 가족을 이룬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폐쇄적이고 불편한 시선이 자녀로 하여금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공감』에는 재혼한 가정이 겪는 갈등을 담은 이야기들이 여러 편 나온다.
그 중 『아빠는 외출 중』은 서로 첫 결혼에 실패하고 만나 재혼을 하게 된 부부의 이야기다. 서로 아픔을 가지고 어렵게 결혼했지만 둘은 허구한 날 싸움이었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남자. 하지만 유학 간 아내의 아들이 마음에 걸려 아이를 만나러 미국으로 간다. 그런데 같이 사는 7년 동안 한 번도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아들이 그의 등장을 몹시 기뻐하여 ‘아빠’의 고마움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남자는 아들의 놀라운 변화를 보며 자신도, 아내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아버지의 가족』에서는 제목처럼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가족을 바라보는 딸의 복잡한 마움이 잘 드러나 있다. 분노와 그림이 뒤섞인 채 찾아간 아버지의 집. 다시는 찾아올 일 없을 거라고 말하며 차갑게 돌아서며 나오려는데 이복동생인 여자아이와 맞닥뜨린다.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이복동생을 보며 달은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딸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증오에 사로잡혀 사는 대신, 아버지라는 한 인간을 조금씩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터부시하고 반목하는 현실을 건드리면서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더 행복해지는 길인지를 말해준다.
행복의 씨앗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되는 이상한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돈보다는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주는 사람을 간절히 원한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영원불멸한 가치일 것이다.
『보고 싶은 아들에게』에서 김 교장은 은둔형 외톨이가 된 큰아들을 닦달하거나 내치지 않고, 아들에게 묵묵히 편지를 쓴다. 끊임없는 사랑으로 기다려주면 아들이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거라는 간절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감』은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짠하지만, 그 속에 행복의 씨앗을 품고 있는 책이다.
소설가이면서 동화작가인 저자 ‘이종은’은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나 전원적인 풍경 속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현대소설」에서 소설로 데뷔한 뒤,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며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할머니 뱃속의 크레파스』『초콜릿이 맛없던 날』 등의 동화를 발표했으며 ‘MBC 창작동화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장편소설로는 『누드화가 있는 풍경』 등이 있다.
화가 ‘박경민’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홍익대학교, 대진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국립경인교육대학교와 덕성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2006년 ‘관계의 풍경’전을 시작으로 다섯 차례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열었다. 그린 책으로는 『역사를 바꾼 인물-인물을 키운 역사』『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눈 오는 날』『석류나무집 아이』『왕따 가시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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