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김양수 “사소한 일상, 그 모든 것이 작품의 주제”

이희원 / 기사승인 : 2013-08-30 17: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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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5년차 만화가 김양수를 만나다
▲ 웹툰 <생활의 참견>의 김양수 작가


[일요주간=이희원 기자]
어린 시절, 단행본 만화를 즐겨보던 세대라면 최근 웹툰(Webtoon : web+cartoon의 합성어)의 열풍이 어색할 수 있다. 많은 단행본 작업을 진행해온 작가들도 웹툰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웹툰은 소재의 다양성은 물론 작가와 좀 더 친밀할 수 있는 요소를 내포해 수많은 독자층을 양산하고 있다. 이렇듯 포털을 통한 웹툰의 연재가 이뤄지는 가운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로 꾸준한 인기 몰이를 하는 작가가 있다. 15년 째,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양수 작가다. 포털사이트에서 연재 중인 ‘생활의 참견’은 지난 99년부터 작가 ‘김양수’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최장수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일요주간>은 여름의 끝자락에 김양수 작가를 만나 작품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자에서 만화가로

김양수 작가는 월간 <PAPER> 출신 기자였다. 기자 생활 초기, 자신의 이름을 단 <김양수의 카툰판타지>를 연재하며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녀작인 <카툰판타지>는 <생활의 참견>의 초기 작품명으로 제목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단행본을 발간을 앞두고 있었다. 좀 더 임팩트 있는 제목이 필요했다. 작품 초기, 판타지에서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 자신의 일상의 이야기를 그리는 나를 발견했다고. 주변 친지들은 ‘생활형 카툰’이라는 애칭을 만들어줬다. 2005년 드디어 <생활의 참견>이라는 이름을 달고 단행본 출간이 이뤄졌다.

만화를 연재하게 된 배경도 인상적이다. 그가 월간지 음악기자로 스카우트 된 계기는 PC통신에 연재했던 그의 소설 덕분이었다. 잡지사에서 그의 글에 흥미를 갖고 전격 스카우트했지만 그는 DESK(편집장)의 책상 앞에 자신이 그린 만화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미술 혹은 만화를 전공하지도 않은 그에게 지면이 배정 될 리 만무했다.

그러나 어느 날 지면 한 곳을 채워야했고 편집장은 자주 들이밀던 <카툰판타지>으로 지면을 완성했다. 싸늘할 것 같던 편집장은 의외로 선전하는 <카툰판타지>의 연재를 맡겼다.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으로 독자의 공감 형성 “작품의 자양분 형성”
김 작가 “꿈을 쫓아가는 것···결코 헛된 일 아니다”

첫 단행본이 나온 뒤 김 작가는 한 동안 기자와 만화가의 두 직함을 버리지 않았다. 2000년 연재를 시작한 <생활의 참견>은 당시 <PAPER>에 한 달에 한번 씩 독자를 찾아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둘을 병행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연재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번 연재하던 작품을 주2회 연재해야했다. 결국 그는 1여 년간 병행 한 끝에 선택의 기로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둘 중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글을 쓰는 것 역시 그에게 행복한 일이었다. 김 작가는 자신에게 물었다. “과연 사십대 이후에 내가 행복할 수 있으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하나?” 그가 여기서 답을 얻은 것이 바로 “만화가”였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10년을 함께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더욱 좋아하는 일을 위해 과감히 기자 직함을 벗어던졌다. 이후 웹툰 작가 김양수의 삶이 시작됐다. 초기 과연 연재가 언제까지 이뤄질까하는 고민은 <생활의 참견>의 나이와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 벌써 500회를 훌쩍 넘어 6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보물섬>을 즐겨보던 그는 무작정 따라 그리며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중?고등학교 때 이미 4컷 만화를 그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만화를 좋아했고 책 읽는 것을 즐기던 소년은 어느 새 자신의 일상 속 이야기를 쉽게 지나치지 않고 소재로 삼아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인기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꿈을 향한 발걸음

‘생활형 웹툰’으로 불리는 김 작가가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청소년 혹은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자신도 역시 그랬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글을 쓰는 것 역시 버릴 수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회상했다.

“당시 하이텔 등 PC통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4컷 만화를 그려 돌려보는 것도 좋았지만 웹상에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소설을 올리는 것에도 흥미를 끌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 했죠”
3대 메이저인 나우누리, 하이텔, 천리안 등 초기 PC통신에서 ‘핫한’ 인기를 끈 것이 바로 소설류였다. 소설가가 되려면 신춘문예 등에 당선되어야하는 등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판단한 당시의 시류를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수없는 판타지와 공포소설이 난립했고 유명작가의 대열에 합류한 이우혁 씨는 <퇴마록>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역시 PC통신에 소설을 쓰며 그림을 좋아하는 내가 글을 쓰는 것에도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순정 소설은 물론 액션과 역사물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고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이 오자 ‘글 쓰는 재미’를 처음으로 느꼈다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즐기고 친구들에게 4컷 만화로 이목을 끌던 김 작가는 이야기와 만화를 함께 작업하는 ‘웹툰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꿈을 쫓는 일을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꿈을 향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김 작가는 공부로 대학을 가야한다는 획일적인 생각이 곧 꿈을 그저 꿈으로 만든다고 경고한다.

“유명 포털사이트에 <생활의 참견>이 연재된다고 가족들에게 말하자 어머님이나 누나는 별 관심을 갖지 않으셨어요. 지금은 물론 작품을 지지하는 소중한 팬들이지만요.(웃음)”

웹툰 작가뿐 아니라 칼럼니스트 등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최근 대학교 강연회를 통해 학생들과 나눈 얘기를 공개하며 틀에 박힌 생각을 버리고 다양한 경험을 나누라고 따끔한 조언을 덧붙였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높은 학점을 받아 졸업해 대기업에 취업하는 일, 물론 이것이 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취업’을 위한 도전이 아닌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찾는 일이 선행되어야합니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은 학보사 면접에서 떨어졌다며 고민을 털어놓자 김 작가는 시작을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하자는 욕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기자를 꿈꾸고 있다면 글을 쓰는 일이니 신문은 물론 책을 가까이하며 항상 다독하고 습작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잡지사나 신문사 등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왜 꼭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 다양한 경험은 곧 재산이된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게 안타까운 현실 이죠” 시야를 넓게, 그리고 생활의 경험은 결코 버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

김 작가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IMF로 취업의 문이 좁았던 1997년, 졸업 후 운이 좋게도 잡지사에 취업했고 기자의 길을 먼저 걷게 됐다. 잡지 기자로 시작해 자리를 잡을 때쯤 웹툰 작가라는 직함을 추가했고 페이퍼에서 인터넷으로 ‘읽는’ 흐름에 따라인터넷에 연재하는 웹툰 작가로 자리 잡았다. 결국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껏 ‘운’이 좋아 기반을 제대로 닦는 데 성공적이었다면 이제 사십대로 들어선 나는 그 ‘운’을 한껏 발휘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나는 작품을 그리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지도 않고 타고난 글쟁이도 아닙니다. 하지만 (기자생활에서) 나이에 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것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확신합니다. 다양한 경험이 결국 <생활의 참견> 속 에피소드로 태어나 독자들을 만나고 있기에 제가 잡은 기회와 경험이 만나 최대한 재미지고 잘할 수 있는 웹툰 작가로 성공하게 만든 것 아닐까요”

그는 말한다. “제가 처음부터 <생활의 참견>의 연재 목표로 잡았던 게 50회 연재입니다. 하지만 이제 500회를 넘어 다음 달 이면 600회를 맞이하게 되네요. 감회가 새롭죠.(웃음). 다양한 경험과 그 소스를 바탕으로 태어난 <생활의 참견>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를 직업삼아 생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모릅니다”

김 작가는 지난 7월부터 <생활의 참견>의 연재와 함께 그 동안 수 없이 많은 시놉시스 가운데 선택된 작품으로 스토리 작가로서의 길도 걷고 있다. 도가도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 <아이소포스>는 이솝우화의 이솝, 즉 자신의 운명을 바꾼 주인공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신화적 일기이다.

이외에도 그는 딸 ‘시우’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만든 4컷 만화 ‘시우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꿈을 쫓는 시간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언젠간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줄 테니까요”


김양수는 누구?

1973년 생인 김양수 작가는 1997년 월간 <PAPER> 기자로 입사한 후 이듬해부터 「김양수의 카툰판타지」를 연재하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이후 2008년 본격적으로 웹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기자생활을 과감이 벗어던지고 전업 작가의 길로 돌입했다.
최장수 작품으로 손꼽히는 일상툰 <생활의 참견>은 물론 <아이소포스>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생활의 참견>(2005),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한자 만화 교과서>(2007), <생활의 참견 New Season①>(2009), <생활의 참견 New Season②>(2010), <시우는 행복해>(2011). <생활의 참견-운수좋은날>(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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