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고은주 시민기자] 남산 타워가 코앞인 동네에 살면서 밤마다 야경을 보며 더 넓은 세상, 외국에 대한 로망이 컸던 저는 중학교 동창인 지금의 신랑을 만나 브라질에서 11년 유학생활을 했던 남편의 제 2고향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우리의 뜨거웠던 사랑만큼이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높은 구두를 통해서도 느껴지던 그 뜨거운 열기와 '빠옹 지 께이죠'라는 치즈빵 냄새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첫인상입니다. 순간 생각 했습니다. 이 땅은 구두 보다는 낮은 운동화가 어울리겠다고.

조금만 불편해 보여도 도와주겠다며 무표정인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들, 길을 물으면 아기를 안고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넘어선 따뜻함에 작은 동양인이라 크고 진한 서양인들에게 눌리기 싫어 불편한 구두를 신었던 차가운 마음은 녹아내리게 되었습니다. 울퉁불퉁한 길과 삐그덕 거리는 나무문, 에어컨 없는 열린 문의 식당들은 브라질 사람들을 닮아 있는 모습입니다.
단기간 초고속 발전과 기술면으로 뛰어나 편리하지만 뾰족하고 좁은 회색빛 한국 생활에 지쳐있던 저에게 한반도의 38배인 브라질은 넓고 느려서 위로가 되어준 땅입니다.
낯선 곳이지만 낯설지 않게 다가와 준 나라는 브라질이 최고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넓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로 북부에는 세계 최대의 수량인 6300km의 아마존 강이 흐르며 광대한 저지대가 펼쳐져 있어 광활한 대자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벅차 오릅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중남미에서 경제 강대국으로 산업화 된 국가인 남미의 중국 브라질에서 인종차별이 없다는 점에 더욱 놀라게 되었습니다.
겸손과 굳건함을 품은 아버지를 닮아 있는 나라입니다. 촌스러운 듯 보이지만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라는 멋은 고상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모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순박하고 정열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인위적이고 어색한 사람이었는지 민망하게도 반성을 하게 합니다.
쓴 맛을 알아야 달달함을 발견할 수 있듯 배움을 주면서 동시에 고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으로써 일자리 잡기가 힘든건 구멍이 났던 신랑의 신발이 이야기 해 줍니다. 언어의 장벽도 만만치 않은 벽이었고, 성인이 되어 두 아이 육아와 동행하며 배우려니 어려움은 더욱 배가 되었습니다.
뒤처지고 어리숙해 보여도 절대 쉬운 나라는 아닙니다. 빈부 격차가 심해 치안 문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편히 지갑과 핸드폰을 손에 들고 다니 수 있는 고국이 그리워 진 적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의식적인 치장은 내려두게 됩니다. 포장을 벗고 내면의 깊숙한 본래 나를 찾아 가는 비움의 여정이 됩니다.
누구나 애틋해 하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거리, 설레는 새해 축제는 한국과 반대로 고요한 거리가 되어 가족들과 보내는 문화입니다.
고국에 부모님이 계시는 경우 애써 아기자기하게 우리만의 즐거움을 만들어 갑니다.
언제나 보고픈 시댁과 친정을 만나려면 비행시간이 25시간이 걸리고, 12시간 시차가 있어 연락도 간편한 일이 아닙니다. 뜨거운 땅이기에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뜨거움에 데이지 않도록 삶의 온도조절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브라질다운 색이 묻어 있는 곳은 시장입니다. 농산물 시장과 의류 시장의 규모는 기대 이상의 유통을 보여줍니다.
인구가 2억이 넘으니 삶의 패턴이 넓어지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브라질에서 살다 한국에 잠시 들어오면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하고, 기계적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좁은 땅에서 내 자리를 찾아 서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알기에 또각 거리는 구두와
숨 막히는 넥타이를 족쇄로 찬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먹먹해 지기도 합니다.
브라질도 치열하게 일을 하지만 사람들 눈동자에 마음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나옵니다. 거리에서 맨발로 공차며 뛰어 노는 아이들, 일회용 종이로 만든 장난감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쪼이지 않고 느린 교육을 받으면서도 자연스러움과 교양을 갖춘 순수한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좁은 사람이 아닌 넓은 사람으로 큰 생각을 품은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브라질에 살게 된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습니다.
그래도 타국에 살다 보면 사막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살아 낼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숨어있는 기회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이민자들의 눈물과 땀이 젖은 기회의 발자국을 따라 갈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물듭니다. 인생이란 이름표 속에 멈춰진, 끌려진, 쫓긴 나를 재생 시켜준 땅이라고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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