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디로 가는 배냐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8-12-07 17:35:29
  • -
  • +
  • 인쇄
최철원 논설위원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예전에 유행했던 '황포돛대' 제목의 노래다. 가수 이미자의 애끓는 목소리를 통해 우러나오는 가사에는 떠나는 배에 대한 우려와 함께 무사함을 비는 염원이 담겨있다. 첫 문장에 굳이 흘러간 유행가를 쓰는 까닭이 있다.


정치?경제?사회?국방, 장르에 구애됨 없이 작금의 신문 기사마다 불안과 걱정을 토해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탄 배는 똑바로 가는지, 노래 가사처럼 어디로 가는지, 행여 방향을 잃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2017년 5월, 기대와 희망을 가득 실은 대한민국호는 문재인 대통령을 선장으로 하여 우렁차게 뱃고동을 울리며 닻을 올렸다. 소득 주도 성장정책으로 소득을 올라가 주름살이 펴지며, 저녁이 있는 삶을 열어가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서민들은 기대와 희망으로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소득 주도 성장정책으로 나타난 각종 지표는 우리 경제가 한층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급하게 올린 최저임금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폐업이 늘어나면서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로 고용 참사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일부에서는 차라리 IMF 때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자조 어린 얘기도 들린다. 현 정부의 정책과 구상대로 소득이 늘어나고 서민 생활이 향상되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오죽 좋으랴.


비핵화를 두고 미?북 관계가 교착 상태에 가깝고 미국은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를 옥죄고 있는 현실이다.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답은 아직 불명확한데, 달랑 북한 카드 한 장 들고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사활을 거는 것은 아닌지. 시대적 소명이라는 개혁은 시장과 현실 상황을 고려치 않은 채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로 사회 전반이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연습 없이 시행하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 정규화 강행은 고용을 줄이라는 신호와 다름없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시장 순리에 역행하는 것은 가뜩이나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이 서민 삶의 향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헷갈린다. 시장 상황을 도외시한 개혁으로 서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처자식의 목구멍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감에 젖어있다. 짓눌린 고통으로 현장이 피폐하면 선의의 이론은 악마의 맷돌이 된다. 얼마나 더 많은 서민이 갈려야 그 생존의 실험을 끝내겠는가. 이것이 개혁이란 말인가. 시장 흐름에 대처하지 못한 개혁 때문에, 개개인의 삶은 구조의 붕괴와 더불어 부수적으로 소멸돼야 하는 비눗방울 같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 정부의 개혁 구조 속에서 서민은 무엇이고 서민의 가정은 무엇이며 성공한 촛불혁명때문에 왜 서민들의 삶은 뻘밭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하는가. 완장 찬 검찰 정국, 민노총과 귀족노조들에 굿판을 더 크게 벌리라 자리를 펴주는 게 개혁이 아닐 텐데.


현 정권이 바라본 사회 전반의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배분의 공정성 등 구조적 문제를 지금처럼 충격적인 방법으로 실행할 때 파급되는 시장 상황의 부정적 측면 때문에 최소한의 서민 생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불안한 내일을 뻔히 보며 위기감에 빠져있는 서민들에게 아무리 명석한 논리로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그들을 침묵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치매에 가까운 상식이다.


서민 생활의 본질은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들은 무조건 냉엄한 현실에 버텨야 하는 것이며 못 버티면 영원한 나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시작하는 정책이라 충격이 있을 수 있지만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소득이 늘어난다는 위로 어린 말은 그야말로 위선이거나 허위일 수 있다. 서민 생활과 사회적 현상의 인간관계는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이상적인 것도 아니다. 그 관계는 다만 실존적인 것이다.


이따금 주변국에서 들려오는 태풍 소식은 불안하다. 물 위의 높은 파고와 주변 암초로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선장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뱃길‘을 수정하여야 한다. 순풍에 돛을 달고 출항한 이 배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배냐. 우리를 어느 항구 어떤 유토피아에 내려놓으려 하는가. 사공아 말 해다오. 떠나는 뱃길.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