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풍류에 매료된 옛 시인들 바람과 시를 노래했다"

노현주 기자 / 기사승인 : 2010-07-07 13: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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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강건한 전남 담양의 선비들은 자연과 호흡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한 여름 아찔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은행과 지하철, 사무실을 전전하다 얻은 것이 고작 냉방병뿐이라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자연의 바람이 그리워질 터. 바람이 데려다 주는 대나무의 고장 담양으로 떠나보자.


여름철, 커다란 컵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커피처럼 시원한 소리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담양의 대숲에선 댓잎들이 부대끼며 내는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느덧 여름철 무더위도 무색해지곤 한다.

태양 한 점 들어올 새 없이 울창하게 하늘로 길게 뻗은 대숲은 그렇게 더위도 시간도 계절도 잊게 만든다. 그 때문일까… 옛 시인들은 담양의 풍류에 매료되어 전통 원림과 정자를 짓고 고즈넉한 숲길을 산책하며 바람을 노래하고 시를 노래했다고 한다.

친환경 1회용 그릇 사용하는 건강한 밥상

담양은 국내 최대의 대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고장답게 입구에서부터 대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대나무와 관련한 죽세공이 발달하였으며, 의식주 모두 대나무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이처럼 대나무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담양에서 꼭 만나봐야 할 대나무의 참 맛은 바로 영양만점 대통밥과 새콤달콤 죽순회를 꼽을 수 있다.

왕대를 한 토막씩 잘라 대나무로 자연 그릇을 만든 후 그 속에 찹쌀, 차조, 수수, 콩 등의 오곡과 은행, 밤, 대추같이 몸에 좋은 것들을 모두 담아 죽염으로 간을 맞춘 후 한지로 뚜껑을 밀봉하여 약 1시간가량 쪄낸 것이 바로 대통밥이다. 이렇게 밥을 하는 동안 대나무 속의 타이로신 성분이 밥에 녹아내리는데, 이는 천식, 기침, 당뇨 등에 특효가 있다. 또한 고혈압과 중풍 등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밥이 보약인 셈이다.

정성스레 여며진 하얀 한지를 걷어내면 마치 비가 내린 후 젖은 땅의 향기가 피어 오르듯 그윽하게 뿜어져 나오는 대나무의 은은한 향이 오래도록 코끝을 맴돈다. 간이 잘 배어든 대통밥은 찰지고 고소한 맛에 한번 반하고 자연을 통째로 품은 듯한 그윽한 향취에 다시 한번 반하게 된다. 맛으로도 영양으로도 손색없는 웰빙음식이다.

대통밥과 함께 차려져 나오는 남도의 반찬은 그야말로 일품이지만, 대나무 밭에서 막 캐낸 죽순으로 만든 죽순회는 대통밥의 향취를 배가 시켜주는 찰떡궁합의 반찬이다. 단백질이 많고 무기질과 비타민B가 풍부하게 함유된 죽순의 효능은 변비해소, 대장암 예방, 스트레스와 불면증 해소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얇게 저민 죽순에 갖은 야채를 넣어 초고추장으로 버무려낸 죽순회는 새콤달콤하여 잃어버린 입맛을 당기게도 하지만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아 기분까지 좋아진다.

또한 죽순을 듬뿍 넣은 후 살짝 된장을 풀어 끓여낸 죽순국까지 먹고 나면 그야말로 한여름 최고의 보양식을 한자리에서 다 맛보는 셈이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자신이 먹은 밥그릇을 챙겨가는 것도 대통밥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대통은 단 한 차례 밥을 짓는 것으로 수명을 다하는 일회용기이기 때문에, 그 대통을 챙겨와 필통이나 장식품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대통밥을 먹기 위해 찾을만한 곳으로는 바닥부터 천정까지 모두 대나무를 이용해 인테리어를 한 ‘한상근 대통밥집’이 유명하다. 이곳은 조명까지 죽부인을 이용해 만들었을 정도로 대나무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대통밥과 대나무 죽순회가 이곳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러나 담양까지 와서 떡갈비를 맛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만약 당신이 무한도전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무한도전>팀이 찾았던 신식당을, 무작정 여행을 떠나온 이라면 <1박 2일>팀이 찾았던 덕인관을 방문해보자. 먹는 취향에 따라 굳이 나누자면, 신식당은 살코기만으로 떡갈비를 만들어 더욱 도톰하며, 덕인관은 살코기를 뼈 위에 발라 자리에서 구워먹는 것이 다르다. TV 프로그램의 성향에 맞춰 고르던 먹는 취향에 따라 고르던 두 식당 모두 담양 떡갈비의 양대 산맥인 만큼 후회할 일은 없다.

담양 선비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소쇄원&식영정'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림인 소새원은 한국의 전형적인 정원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 양산보가 만들었다.

대나무 숲을 따라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 계곡물을 굽어보는 자리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현재는 대봉대와 광풍각, 제월당의 건물만이 남아 있지만 동쪽으로 걸쳐있는 긴 담장과 어우러진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소쇄원은 대나무 외에도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소박한 정자던 넓은 너럭바위던 그도 아니면 흐르는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그던 소쇄원에 갔다면 바쁜 속세의 일을 잠시 잊고 그저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귀 기울인 채 휴식을 취해보는 것이 좋다. 소쇄원은 그렇게 속세의 복잡한 일을 모두 잊은 채 학문에 매진하던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고 전해져 온다. 완만하게 흐르는 영산강을 내려다보는 강가의 언덕 위에 세워진 식영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로 다락방처럼 좁디 좁게 지어졌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기 위해 아흔 아홉 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필요 없었을 터. 소박하고 강건한 담양의 선비들은 그렇게 자연과 호흡하는 법을 일찌감치 깨우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이 그 곳에서 흐르는 강물과 바람을 바라보며 자연의 진수를 또 한번 체감하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식영정은 묵묵히 우리를 위해 강바람을 맞으며 그 언덕 위에 오롯이 서 있었다. 비록 낡고 퇴색하긴 했지만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대나무골 테마공원&죽녹원'

담양을 여행하며, 생각보다 지천에 대나무가 없는데 도대체 왜 담양을 대나무의 고장이라고 부를까 의구심이 드는 이들이 있을 터. 그 같은 궁금증을 해소하고 담양에서 대나무의 별천지를 감상하고 싶다면, 대나무골 테마공원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약 30여년에 걸쳐 대나무골테마공원을 만드는데 노력해온 신복진 대표는 정년 퇴직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대나무의 멋을 알리기 위해 이 곳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약 3만 여 평의 땅에 담양의 대나무를 심고 키우며 언론인에서 산을 찍는 사진가로 그리고 이제는 이 땅의 주인으로 바뀌었다고.


잔디운동장과 캠프장과 함께 햇볕 한 점 들어올 틈새 없이 빽빽하게 숲을 이룬 대나무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신복진 대표의 사진을 관람할 수 있는 갤러리에 다다르게 된다.

죽녹원의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올라가면 어느새 머리 위로 댓잎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르내리는 사람 하나씩 만이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을 제외하곤 사방이 대나무로 둘러싸인 이 곳은 산림욕보다 더 좋다는 죽림욕을 자랑한다.


특히 대나무 숲은 산소 발생량이 높아 바깥의 온도에 비해 약 4~7도 가량 낮을 정도다. 대나무 숲이 유달리 시원한 것과 여름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죽부인이 시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계곡이나 바다로만 피서를 떠나려는 이들에게 힘 안들이고 피서를 떠날 수 있는 소중한 피서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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