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에 빠져드는 붉은 구슬 입에 문 채”

송기옥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5-09-29 11:14:34
  • -
  • +
  • 인쇄
변산(邊山) 부사의방(不思議房) [일요주간=송기옥 칼럼니스트] 변산의 최고봉 의상봉(509m)에 오른 것은 벌써 20여 년 전의 일로 부사의방이 의상봉 동편 아래 깎아지른 절벽에 있다는 부대장의 말만 들었을 뿐이다.

봄기운이 감도는 2월 초순경으로 기억된다. 음지에는 잔설이 쌓여 있고 깎아지른 절벽에는 새하얀 빙벽이 눈부시었다. 멀리 황해건너 산동반도 중국 본토에서부터 칠산 바다에 몰아닥친 매서운 북풍한설 추위에 떨다가 교목이 된 키 작은 잡목들이 바위틈 산허리에 찰싹 붙어 모진 생명을 붙들고 있었다.

서너 필지 정도의 펀펀한 의상봉 분지에는 의상대사가 수도를 했다는 의상사(義湘寺)가 있었다는데, 그 자리에는 공군부대의 둥근 돔이 들어서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므로 산 밑에 큰불이라는 대광(大光)이라는 마을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우연의 일치치고는 기이한 일이다.

작년 여름에 의상봉 밑에 숨어 있다는 변산의 비경 부사의방(不思議房)을 찾아 나섰는데 나 같은 범부에게 그 비밀스런 그곳을 쉽게 보여 질 리가 없어 다음을 기약하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시원한 소나기도 없는 무던히도 무덥던 올 여름, 숯불처럼 이글거리던 태양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순응하는지 9월로 접어드니 조석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과 함께 서해노을에 숨는다. 이번만은 기필코 부사의방을 찾으리라 맘먹고 친구 고균과 함께 무작정 나섰다.

400년의 사연을 품고 있다는 한적한 산촌마을 하서면 백련리 문수동 안길을 지나 석재 와우(臥牛)골짜기 구시골을 꽉 채운 수원이 풍부한 문수동 저수지 우측으로 돌아가다 보면 임도가 끝이 난다. 풀숲이 무성한 가파른 좁은 길을 따라 숨을 헐떡이며 30여분 오르다 보면 완만한 능선을 만난다.

구부러진 실선 같은 능선을 요리저리 졸졸 따라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알고 보니 작년여름에 부사의방으로 가는 제대로 된 왼쪽 길을 택했는데, 이번에는 의상봉을 곧바로 향해 우측 길을 따라 가니 공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아 남쪽 방향 철책선 밑으로 억새와 맹감나무가시를 헤치고 어렵게 올라섰다.

의상봉 둥근 돔 철책선을 맞은편에 올망졸망한 산봉우리가 늘어져 있고 수몰된 중계호수와 고슴도치 섬 위도가 한눈에 들어와 칠산 바닷물이 발밑을 파고든다.

그 아래로 조금 내려가니 천 길이나 되는 깎아지른 절벽에 이르렀다.

선혈증이 들 정도로 오금이 절여와 어디에다가 발을 옮겨야 할지를 모르겠다.

가까이는 새재 노적봉, 그 너머로는 석재 와우와 좀 멀리는 주류성의 시발점인 우금암이 머리 벗어진 수리처럼 우뚝 앉아 푸른 하늘과 맞닿은 내장산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입을 다문 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부사의방은 어디란 말인가? 더듬더듬 한발 한발 옮겨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니 가느다란 노끈이 연결된 절벽 중앙에 서너 평 쯤 사람이 은신할 만 한 곳에 누가 오르내렸는지 그 흔적이 역력했다.

아! 저것이 우리가 그렇게도 찾던 부사의 방이로구나! 도저히 상식으로는 수행 처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김제만경 출생의 그 유명한 진표율사(眞表律師)가 12세 때 금산사에 출가하여 선계산(仙界山=변산) 부사의암에 은거, 20말의 쌀을 쪄서 말려 하루에 다섯 홉을 당신이, 한 홉은 다람쥐에게 보시하며 망신참(亡身懺-돌로 온몸을 상처냄)으로 3년간 고행과 난행의 수행 끝에 지장보살을 친히 만났다는 나이가 23세 때 라고 한다.

고려의 학자 이규보(1168-1241)가 송도의 궁재를 구하기 위해 하급관리인 변산 벌목사로 와 부사의암(不思議庵) 선경에 대한 그가 쓴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가슴조이는 시한수를 이렇게 읊고 있다.

“무지개 같은 사다리 밑바닥이 길어서(虹矗危梯脚底長)몸 돌려 곧장 내려가도 만 길이 넘네(回身直下萬尋彊)도인은 가버려 자취마저 없는데(至人而化今無跡)옛집은 누가 붙들었기에 아직 있는가(古屋誰扶尙不疆)일장육척의 불상은 어느 곳에 나타나는고(丈六定從何處現)대천세계는 그 가운데 감추었네(大千猶可箇中藏)완산 하급관리 세상시름 잊은 나그네(完山吏隱忘機客)”

이 외에도 삼국유사와 동국여지승람에 부사의암과 진표율사의 행적에 대한 여러 가지 사료가 나오며 또 다른 수행 처로 명성을 날린 변산에는 개암사 뒷산의 울금바위에 남(南)원효(元曉 617-686)방과 북(北)의상대에 의상(義湘625-702)대사 등 호남의 5대 명산인 변산에서 수도를 한 기록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의 이름난 고승의 수도처이기도 하다.

변산의 숨은 그림 같은 비밀스런 부사의암은 바위틈 절벽에다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쇠말뚝을 용이 박아 닫집을 완성하여 기왓장을 얹은 흔적으로 와편이 나 딩굴고 있다.

1300년 전 진표율사는 이곳 선계(仙界)에서 망신참(亡身懺)으로 득도하여 변산의 중계천 푸른물에 잠룡(潛龍)이 되어 거센 바람이 불고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이 치고 큰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변산의 최고봉의 혈맥을 누르고 있는 둥근 돔도 헐어버리고, 오갈 수 없게 가로막은 철조망도 몰아쳐 서해바다에 빠져드는 붉은 구슬을 입에 문 채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진 중생들을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하는 날만을 고대 해본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