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익어가는 기축년 9월,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마한, 숨 쉬는 기록'이란 특별전을 열었다. 마한은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을 포함한 삼한(三韓)의 하나로서 그 가운데서 가장 강대한 맹주였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번 특별전은 마한의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서 흥미를 끌었다. 지금까지 발굴한 마한의 유물과 연구 성과를 전시하여 과거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전시장을 두루두루 둘러보고 나오면서 두툼한《마한 숨 쉬는 기록》이란 도록을 한 권 샀다. 그 도록에는 마한에 관한 연구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지역별, 주제별 연구논문들을 수록하고 있어서 유익한 읽을거리였다.
마한은 4세기 중반에 백제에 멸망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비록 지상에서 마한이라는 나라는 사라졌지만 땅속 이곳저곳에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마한의 존재를 일깨워 주고 있다. 가물가물 잊혀가던 마한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셈이다. 마한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땅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던 모양이다.
땅속에서 나온 유물들을 보면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고리자루칼, 말모양허리띠고리, 다양한 형태의 구슬로 만든 장신구, 제사와 관련된 새무늬청동기, 각종 공헌물(貢獻物) 등이 옛날의 마한 땅에서 출토되었다.
한반도의 서쪽, 지금의 서울 ‧ 경기일대, 호서지방과 호남지방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4세기 중반에 마한이라는 이름의 소국 연맹체가 있었다고 한다. 이 마한은 청동기시대 이후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삼한 중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되었다.
중국의 사서(史書)에 마한의 위치와 사회 풍습이 소개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마한은 중국이나 일본과도 문화교류를 했던 것 같다. 이 마한은 4세기 중후반에 멸망했지만 영산강 유역에서는 6세기 초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국립전주박물관 전시장에서 '마한 숨 쉬는 기록'을 둘러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니 참으로 흥미로웠다. 다양한 토기를 보면서 흙을 주물러 살림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또 기원전 3세기부터 중국 연나라에서 영향을 받아 철기문화가 시작되었다는데 그 시대의 유물인 녹슨 칼과 쇠창 그리고 쇠도끼, 쇠낫 등 각종 무기와 농기구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때의 칼 모양 중에는 지금 군인들이 사용하는 칼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것이 있는지 놀랐다.
고리자루칼로서는 봉황무늬고리자루칼과 세잎장식고리자루칼, 민무늬고리자루칼 등이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의 여인들도 목걸이, 귀걸이 등 장신구를 만들어 청동거울을 보며 아름다움을 과시하였다니 예쁘게 보이려는 여인들의 마음은 동서고금이 다를 바 없구나 싶었다.
갖가지 유물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고리자루칼이었다. 마한시대 지배자의 무덤에서 출토된 고리자루칼은 하나의 철 소재로 손잡이 고리를 만든 것이다. 그 고리자루칼은 오랜 세월 땅속에서 묻혀 있었기에 녹이 슬어 있었다.
그러나 그 칼로 싸움터에서는 적군의 목을 베었을 것이고, 지배자의 미움을 산 백성들도 목숨을 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인 사람은 저승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었을까? 무기인 칼에도 지배자가 사용하는 위엄을 갖춘 칼과 병사들이 사용하는 칼로 구별되었던가 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조선을 삼한이라고 쓴 경우가 많았다.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을 삼한이라 지칭하기도 했단다. 이처럼 삼한이라는 이름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마침내 1897년 조선의 고종이 황제를 칭하고 조선을 황제의 나라로 끌어올리면서 나라 이름을 대한(大韓)이라 하였다. 삼한을 잇는 큰 한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국호는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나라의 이름에도 역사의 숨결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이다.'마한 숨 쉬는 기록'에서 상상으로 느낄 수 있는 조상의 지혜를 만났다. 우리 조상이 훌륭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나의 박물관 나들이는 유익한 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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