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 시인의 명시 읽기-5] 박은주 「밭에서 호미를 잃어버렸다」

김용락 시인 · 문학박사 / 기사승인 : 2018-05-29 20: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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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다음날 이었다


밭에서 호미가 사라져버린 건



나도 그렇게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 때마다 흔들리며 멀리 가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꽃 피우는 풀들의 이름 없는 시간처럼


몸살을 앓듯 꿈을 앓았



그러나 세월이 그 많은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동안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로 아무 것도 되지 못 했다



그런 사이에 비가 내렸다


비 사이에서 풀을 매고 난 후



호미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다


-박은주 「밭에서 호미를 잃어버렸다」 전문



박은주 시인(1968~ )이 첫 시집 『귀하고 아득하고 깊은』(한우, 2018)을 펴냈다. 박 시인은 대구 출생인데, 현재는 경북 봉화 산골마을에 가서 시를 쓰고 있다. 2007년 「아람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인용 시 「밭에서 호미를 잃어버렸다」 는 첫 시집에 실린 시이다.


나는 ‘호미’라는 단어에 혹해서 이 시를 꼼꼼히 읽었다. 알다시피 호미는 땅을 파고 흙을 고르는 농기구이다. 농기구 중에는 가장 작은 농기구에 해당한다. 그러나 요즘은 농촌에서도 여간해서 호미를 보기가 어렵다. 농부들도 들이 넓으면 트랙터와 같은 기계를 사용한다. 산골짜기의 조그마한 밭뙈기에서 밭을 맬 때나 호미가 필요한 정도이다. 농경문화의 마지막 세대인 나에게는 ‘호미’라는 단어가 말라 도태된 감정의 누선을 건드린다. 어머니는 평생 저 호미로 얼마나 많은 자갈밭을 매고, 해종일 긴 밭고랑을 타고 앉아 설움을 삭혔을까?


이 시는 바깥이야기(표층구조)는 비 온 날 밭을 매고 난 후 어디론가 사라진 호미가 시적 매제이지만, 자세히 보면 인간이 추구하는 어떤 이데아, 영원성을 향한 시적 자아의 열망이 표출된 시이다. 4행의 “누군가”는 누구일까? 어여쁜 여성시인을 꼬시는 백마 타고 온 신사일까? 그래서 그의 손을 잡고 흔들리면서도 멀리 사랑의 도피를 하고자 했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시적 화자, 시인, 아니 늘 실존적으로 불안하고 현실적으로 갈등하는 인간이 어떤 ‘진리’의 세계를 찾아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보는 게 더 맞을지 모른다. 그 진리의 세계는 인간이 시지프스처럼 피 흘리며 고투하지만, 결국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에 진지한 인간일수록 “세월이 그 많은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동안/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로 아무 것도 되지 못 했다”는 자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어디엔가 도달했고, 뭔가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문학의 영역 안에서는 오만이고 허위인 것이다.


해설 : 김용락(1959~ )


시인 · 문학박사. 1984년 창비 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 『산수유나무』 외 다수


평론집 『문학과 정치』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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