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수필] 최영옥 ‘구월을 바라보며’

시인 최영옥 / 기사승인 : 2018-08-23 09: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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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풍성하고 감사한 계절이고 싶다”
▲ 최영옥 시인
▲ 최영옥 시인

온 밤을 잠 못 들게 하던 열대야가 확실하게 힘을 잃었다. 그 무덥고 후끈하던 열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새벽녘 공기에 한기를 느끼며 침대 끝으로 밀려 내려간 이불을 끌어당기게 된다.


희붐한(날이 새려고 빛이 희미하게 감돌아 밝은 듯, 편집자 주) 새벽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귀뚜르르 하고 들려온다. 이 청량한 소리 또한 얼마나 반가운가.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구월이 오면 들풀이 윤기를 잃어가고 나뭇잎들은 수액을 말리며 광합성 작용을 멈추게 된다.


수액이 말라 버린 건초더미에서도 향기가 난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되었다. 울긋불긋 물든 잎새들의 잔치가 화려한 만추도 아름답지만 초가을인 구월은 참으로 그윽한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호수처럼 맑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여유와 평화를 즐길 수 있는 구월에 우리는 그저 감사하는 마음만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 여름은 대단하였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태양. 사정없이 쏟아지는 햇빛은 과일과 곡식들이 영그는데 더없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 여름의 볕은 너무나 강하여 오히려 과일들이 타들어 가고 채소들이 죄다 말라버린 결과를 가져 왔다. 이로 인해 과일과 채소 값이 폭등하였다.


서민들은 전기료 걱정을 하면서도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었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은 높은 기온에 온열병 등으로 입원하기도 했다. 100여년 만에 찾아 온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한다.


뜨겁고 지루하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구월을 곧 만나게 된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사드리며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  선선한 구월의 바람이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으로 바뀌어 가을이 깊어지면 결실의 계절이다.
▲ 선선한 구월의 바람이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으로 바뀌어 가을이 깊어지면 결실의 계절이다.

선선한 구월의 바람이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으로 바뀌어 가을이 깊어지면 결실의 계절이다. 그때 즈음이면 공연히 여유롭고 풍성한 마음이 되어 이웃에게 의미 없는 미소도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들길을 걸으면서 연보랏빛 들국화와 대화도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어느 해 보다 혹독한 여름을 지나 왔기에 더욱 가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가을의 길목이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과 공존할 권리도 의무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을 우리 살아냈으니 올 가을은 더욱 풍성하고 감사한 계절이고 싶다. 좀 더 가을이 깊어지면 언제가 다녀왔던 춘천 남이섬을 한 번 다녀오고 싶다.


푸른 강물은 예전처럼 그대로 푸르게 흘러가고 있는지, 강가의 그 벤치는 아직도 비어 있는지, 나무마다 물든 잎새들을 매달고 있을 가을의 남이섬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확인하고 싶다.


태풍 솔릭이 우리나라를 향해 오고 있다는 기상예보 탓인지 바람이 한결 시원해 졌다. 그리고 하늘은 더욱 푸르고 맑다. 아래 부족한 필자의 졸시를 한 편 올리며 그윽하게 깊어 질 가을을 기다린다.


구월의 기도/최영옥


구월의 강둑에 동그마니 앉아


당신 향한 연정 주체할 수 없으니


주님 정말로 어찌 할까요


세포마다 풀무질 당한 듯


당신 향한 사모의 마음 자꾸만 부풀어


작은 이 가슴 터질 것 같으니


정말로 어찌 할까요



날마다 당신께 기도하며


허기진 영혼 살찌웁니다


세상의 거친 물살에


여린 가슴 퍼렇게 멍들어도


나를 향한 당신의 미소에 위안 받습니다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이웃을 더 이해하고 보듬겠습니다


타인의 허물에 눈 감고


따스한 관용으로 살겠습니다



나 이제야 알겠어요


가을볕에 길게 누운 강물의 반짝임은


당신이 주시는 이 계절의 축복인 것을


나 이제야 알겠어요


머물러 눈길 주는 이 없어도


함초롬히 피어 웃는 들꽃의 흔들림이


당신의 은은한 향기인 것을


당신의 축복으로 여물어 가는 이 가을엔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기뻐하며


더 많이 행복하겠습니다



주님


세포마다 풀무질 당한 듯


당신 향한 사모의 마음 자꾸만 부풀어


작은 이 가슴 터질 것 같으니


어찌 할까요


구월의 강둑에 동그마니 앉아


당신 향한 연정 주체할 수 없으니


주님 정말로 어찌 할까요



프로필


경북 경주 출생. 한국예총 “예술세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원, 예술시대작가회회원, 동작문인협회원. 고양YMCA흰돌종합복지관한글학교교사(전). 시집 『바람의 이름』 외 2권. 공저에세이 『3인의 칸타빌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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