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판단을 비우는 것이 진정한 도(道)이다"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5-02 10: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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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3)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이번 장은 도덕경 전체의 주제 장으로 노자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 꾸미지 마라, 無爲


天下皆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미지위미 사악이)


천하가 모두 아름답다 여기는 것은 꾸며진 아름다움이니 이것은 악하다.


天下皆善之爲善 斯不善已 (천하개선지위선 사불선이)


천하가 모두 선하다 여기는 것은 꾸며진 선함이니 이것은 선하지 않다.


노자는 꾸며진 아름다움, 꾸며진 선함인 위미(爲美)와 위선(爲善)에 대해서 설명한다. 요즘은 성형술이 발달해서 얼굴을 아름답게 꾸민다. 사람들은 꾸며진 아름다움을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없다. 오히려 인공적인 아름다움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작위에 의한 악함이 있을 뿐이다.


예수도 남에게 내세우는 선은 위선이라고 하였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인간이 선함이라 부르는 것 속에는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부심이 섞여 있기에 이를 경계한 것이다.


모두가 겉으로 드러내기를 좋아 하는 시대이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드러남이 중요치 않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완벽하다. 소박한 아름다움, 있는 그대로의 선량함, 그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꾸며지고 조작되고 위조한 것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는 존재 그 자체로서 나의 의미를 찾아야 하지만 좋다 나쁘다를 가리게 되는 것이 우리가 사는 바로 여기, 이 이원성(二元性)의 세계다.


故有無相生 (고유무상생)


때문에 있음과 없음은 서로가 있어서 생기고


難易相成 (난이상성)


어려움과 쉬움은 상대적인 것이라


長短相較 (장단상교)


비교하기 때문에 길고 짧음이 있고


高下相傾 (고하상경)


높음과 낮음은 경사 때문에 있음이라


音聲相和 (음성상화)


소리는 서로 어울려야 하고


前後相隨 (전후상수)


앞이 있어야 뒤가 있다


우리는 이원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물질과 시간의 세계에서는 늘 거리를 재고 앞뒤를 나눈다.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의 세계가 바로 여기다. 절대의 세계가 아니라 작위의 세상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나 부자들만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이다.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좋음과 싫음을 구분한다. 이것은 나에게 좋고 저것은 나에게 나쁘다. 저 사람은 나에게 이롭고 저 사람은 나에게 해롭다.


물론 이런 것들은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와 관계된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그저 옳고 그름, 선과 악, 좋고 나쁨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한다.


문제는 그런 분별들이 제대로 된 분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판단을 비우는 것이 진정한 도(道)이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것은 내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위미와 위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무위(無爲)의 세계를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높음과 낮음, 길고 짧음 등의 이원성의 세계 너머를 볼 수 있으며 노자는 그런 세계를 넘어서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게 할 때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는 저절로 펼쳐진다.


노자와 공자의 사상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자는 인의(仁義)를 강조했다. 그는 자애로움과 옳음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사람들을 교육하여 세상을 바꾸고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개혁하겠다고 했으나 갈등과 혼란을 일으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자는 그저 ‘있는 그대로’ 두고 개입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물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이 말은 직무의 포기처럼 느껴지기에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 세상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기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세상은 흘러간다. 역사를 인간들이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서 이 세상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노자는 그저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원성(二元性)이 아닌 일원성(一元性)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저절로 펼쳐진다. 그 펼쳐짐 가운데서 스스로의 존재를 정확히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위미하지 말고 위선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무위를 이야기하지만 자연 속에서 물러서서 세상을 잊고 소극적으로 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속하면서 세상을 바꾸기보다 나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진정한 무위의 삶이리라.


是以聖人 (시이성인)


處無爲之事 (처무위지사)


行不言之敎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 (생이불유)


때문에 성인은 무위의 일로 처리하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며만물을 일으키되 말하지 않으며만물을 기르되 소유하지 않는다.


성인의 마음은 천지자연과 하나이다. 때문에 애쓰지 않아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저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편재해 있는 ‘그것’이 이끌고 가도록 무위로서 일을 처리한다.


사람들은 온갖 것들을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짜고 경우의 수를 따지고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범인들의 생각이다.


성인은 일이 어떻게 처리될지 다 안다.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놓아두고 지켜본다. 그래서 주변의 만물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되 말로 내세우지 않는다. 성인은 만물을 기르는 원천이다.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유지되는 것은 소수의 성인들이 세상에 뿜어내는 평화의 에너지 덕분일 것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세상을 기르는 힘이다. 세상에 왔던 성인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멸망치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혼탁한 세상에 맑은 에너지를 주는 성인의 마음이 이 세상을 유지하는 원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爲而不恃 (위이불시)


功成而不居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부유불거)


是以不去 (시이불거)


행하되 자부심을 갖지 않으며공이 이루어져도 쌓아두지 않는다. 모름지기 그저 쌓아두지 않기에그래서 사라지지 않는다.


시恃는 의지하다와 자부심을 갖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행하면서 자부심 갖는 것을 성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범인은 자기가 무엇을 하면 늘 대단한 것을 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 나 성인은 무위의 일로 처리하기에 일이 저절로 펼쳐지도록 내버려 둔 다. 따라서 자부심(恃)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공적이나 업적이 이루어 져도 쌓아두지(居) 않는다. 아니 쌓아둔다는 생각조차 없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흘러간다. 그저 모든 것은 신성(神性)의 뜻에 의해 서 혹은 법칙에 의해서 흘러간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세상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불만이다. 그러나 노자가 보는 이 세상은 완벽하다. 모든 것이 무위의 도에 의해서 저절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삶에 아무런 불안이 없다. 자유로움 가운데 세상에 머물고 생존의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도 없다. 그저 이 순간에 머물면서 세상을 자유롭게 거니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우주가 있기 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사라진 후에도 있을 것이지만 그 ‘나’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로서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노자는 시간과 공간의 이원성의 세계를 초월하고 선과 악의 세계조차도 초월한 무한의 존재로서 이 땅에 잠시 왔다 간 것이다.


◆ 요약


天下皆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미지위미 사악이)


天下皆善之爲善 斯不善已 (천하개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長短相較 高下相傾 (장단상교 고하상경)


音聲相和 前後相隨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 處無爲之事 (시이성인 처무위지사)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천하가 모두 아름답다 여기는 것은 꾸며진 아름다움이니 이것은 악하다.


천하가 모두 선하다 여기는 것은 꾸며진 선함이니 이것은 선하지 않다.


때문에 있음과 없음은 서로가 있어서 생기고 어려움과 쉬움은 상대적인 것 이라


비교하기 때문에 길고 짧음이 있고 높음과 낮음은 경사 때문에 있음이라


소리는 서로 어울려야 하고 앞이 있어야 뒤가 있다.


때문에 성인은 무위의 일로 처리하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며


만물을 일으키되 말하지 않으며 만물을 기르되 소유하지 않는다.


행하되 자부심을 갖지 않으며 공이 이루어져도 쌓아두지 않는다.


모름지기 그저 쌓아두지 않기에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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