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는 신선이 되거나 도술을 부리는 게 아니라 가장 평범함으로 돌아가는 것"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5-09 17:43:3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5)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이번에는 도(道)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어떤 이들은 노자의 도덕경이 정치가를 위한 거라거나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도가의 서적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노자는 정치나 신선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깨달은 도의 실상을 남이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도라는 것은 대단히 사회적이고 지적인 능력을 가지거나 신선이 되거나 도술을 부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평범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는 얻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며, 나의 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마음으로 그 삿됨을 바꾸는 것이다.


◆ 심원함, 道沖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이용지혹불영)


도는 심원해서 무엇을 사용해도 다 채울 수 없음이여.


淵兮 使萬物之宗 (연혜 사만물지종)


깊도다! 만물의 으뜸되는 근원인 것이다.


여기서의 충(沖)은 비어 있다 혹은 심원하다는 뜻이다. 뒤에 나오는 것 들을 보면 심원하다는 의미가 좀 더 강하다. 깊고 깊은 것이 도이며 만물 이 그곳에서 나온다.


도는 만물의 근원(宗)이고 만물이 그 하나에서 나오니 그것을 하나라고 하며 그 하나에서 나온 모든 것은 전체이며 모두이다. 즉 온 우주는 하나이면서 모두이다.


화엄경에서 말한 하나는 모두이고 모두는 하나라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과 같은 말이다. 이 세상은 자꾸 차이를 가지고 나누려고 하지만 최고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하나이고 그 하나의 근원에 도가 근원을 두고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이원성(二元性)과는 다르다. 비이원성의 세계에서는 오직 하나만이 존재한다. 선과 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선과 악조차 도 진리에 가까움의 정도 차이일 뿐 모두가 하나라는 것이다.


어미에게 있어서 나쁜 짓을 하는 아들조차도 어미는 사랑한다. 마찬가지로 천지자연은 모든 존재를 품고 먹이고 기른다.


挫其銳 解其紛 (좌기예해기분)


도의 날카로움을 꺾고 어지러움을 풀어헤치고


和其光 同其塵 湛兮 (화기광 동기진 담혜)


그 빛과 어울리고 그 알갱이와 같아져도 도의 맑음이여!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사혹존 오부지수지자)


있는 듯도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象帝之先 (상제지선)


아마도 상제(象帝)보다도 먼저 있었으리라


도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고 아주 복잡하다. 풀어 헤치면 빛과 알갱이처럼 아주 작고 미세하여 살펴보아도 없는 듯, 있는 듯하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이 장은 도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도는 너무나 심원해서 있 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상제보다도 먼저 있던 것이다라고 요약할 도리 밖에 없다.


도를 누가 설명할 수 있으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도의 깊은 곳을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설령 보았다 해도 그것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 요약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이용지혹불영)


淵兮 使萬物之宗 (연혜 사만물지종)


挫其銳 解其紛 (좌기예 해기분)


和其光 同其塵 湛兮 (화기광 동기진 담혜)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사혹존 오부지수지자)


象帝之先 (상제지선)


도는 심원해서 무엇을 사용해도 다 채울 수 없음이여.


깊도다! 만물의 으뜸되는 근원인 것이다.


도의 날카로움을 꺾고 어지러움을 풀어헤치고


그 빛과 어울리고 그 알갱이와 같아져도 도의 맑음이여!


있는 듯도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도다.


아마도 상제(象帝)보다도 먼저 있었으리라


<다음회에 계속>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