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는 공(空)에서부터 온다"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7-04 09: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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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11)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세상은 드러나지 않는 듯하지만 드러난다. 성인의 마음은 세상에서 멀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심오한 덕, 玄德


여기서의 현(玄)은 어질 현(賢)이 아니다. 어질게 세상을 다스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덕, 보이지 않는 덕을 말함이다.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의 마음이 세상에 어질게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보이지 않는 덕은 온 세상을 덮고 있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영백을 실어서 하나로 품고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專氣致柔 能?兒乎 (전기치유 능영아호)


기를 오롯이 하여 부드러움에 이르고 어린아이처럼 같아질 수 있는가?


滌除玄覽 能無疵乎 (척제편람 능무자호)


제(除)를 씻어내고 잘 살펴서 능히 상처가 없게 할 수 있는가?


愛國治民 能無知乎 (애국치민 능무지호)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무지(無知)하게 할 수 있는가?


天門開闔 能無雌乎 (천문개합 능무자호)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힘에 자(雌)가 없이 할 수 있는가?


明白四達 能無爲乎 (명백사달 능무위호)


사달(四達)을 밝힘에 무위할 수 있는가?


生之畜之 生而不有 (생지축지 생이불유)


낳고 기르고 살리지만 소유하지 않고


爲而不恃 長而不宰 (위이불시 장이부재)


행하되 교만하지 않고 어른이되 군림하지 않으니


是爲玄德 (시위현덕)


이를 오묘한 덕이라 한다.


낳고 길러서 살리되 소유하지 않고 행하되 교만하지 않으며 다스리되 군림하지 않으니, 이것을 현덕(玄德)이라 한다.


지도자들은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기 위해서 여론조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주로 쓰는 수법이 여론조작과 언론조작 같은 것들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온 백성을 하나로 품고 백성과 서로 소통하지만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그런 겸손한 지도자를 얻은 백성은 복이 있는 백성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 사랑하기처럼 하며 결코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무릇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백성을 하나로 품어서 네편과 내편을 가르지 않고 좌와 우를 가르지 않아서 미묘한 덕을 펼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지도자들이 사욕으로 정치를 하는 경우, 하늘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을 안다면 함부로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다.


◆ 무의 쓰임, 無之用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노자는 드러나지 않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三十輻共一? (삼십복공일곡)


30개의 바퀴살은 1개의 바퀴축을 함께 하여서


當其無有車之用 (당기무유거지용)


그 빈 것(其無)이 수레의 쓰임을 있게 하며


?埴以爲器 (선치이위기)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 때


當其無有器之用 (당기무유기지용)


그 빈 것을 그릇의 쓰임으로 있도록 하며


鑿戶有以爲室 (착호유이위실)


문을 뚫어서 방을 만듬에


當其無有室之用 (당기무유실지용)


그 빈 곳에 방이 있음에 쓰이도록 하는 바


故有之以爲利 (고유지이위리)


때문에 있도록 해서 이로움이 됨은


無之以爲用 (무지이위용)


없어서 사용이 되게 함이라.


흔히들 동양화의 특징을 빈 공간의 미라고 얘기한다. 서양화는 캠퍼스의 모든 곳을 물감으로 채워서 조금도 빈 곳을 두지 않으나 동양화는 붓이 간 곳보다 비어있는 곳이 더 많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궁에서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볼 수 있는 비어있는 것이 있음으로써 건물과 나무와 연못 등이 더욱 조화롭고 아름다워진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비어있음과 비슷한 고요, 침묵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이 세상은 침묵과 고요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늘 무언가 보고 듣기를 즐겨 한다. 등산을 하면서도 라디오 방송을 틀고서 간다. 그들의 마음은 고요함을 못견뎌 한다.


교도소에서 최고의 형벌은 독방에 가두는 것이라고 한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로 고통을 받는다. 불면증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나 잠을 못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생각으로 사람들은 엄청나게 괴로워한다.


이 세상은 본래 고요에서 태어났으나 우리 마음은 그 고요와 침묵을 못견뎌 한다. 노자는 빈 공간의 쓰임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나는 그 빈 공간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빈 공간, 공(空)의 공간에 있을 때 진정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쓸데 없는 생각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불가능하지만 재잘거림을 멈추고 끝없이 마음의 작용을 지켜보면서 그 생각을 놓아버림은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이다.


인도의 명상에 관한 경전 ‘요가수트라’에서는 수행이란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이 그저 고요에 머물러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의 도에 이를 수 있다.


마음이 비어있을 때에만 우리는 세상을 담을 수 있다. 세상을 담으려면 우리는 주의나 주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도그마로부터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것이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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