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욕망을 경계하라”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7-09 11: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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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12)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우리 몸은 정보의 90%를 눈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몸이 천(1000)냥이면 눈은 구백(900)냥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눈을 통해서 들어온 감각 정보와 다른 감각적 욕구를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해보자.


◆ 다섯가지 색. 五色


五色令人目盲 (오색령인목맹) 찬연한 빛은 사람을 눈멀게 하고


五音令人耳聾 (오음령인이롱) 아름다운 소리는 귀먹게 하며


五味令人口爽 (오미령인구상) 맛있는 음식은 입을 망친다.


馳騁?獵 (치빙전렵) 말을 달려서 수렵을 하는 것은


令人發狂心 (령인발광심) 마음을 광분하게 하고


難得之貨 (난득지화) 얻기 어려운 재화는


令人行妨 (령인행방) 행동에 장애가 있게 한다.


是以聖人 (시이성인) 때문에 성인은


爲腹不爲目 (위복불위목)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는 않는다.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그래서 눈을 피하고 배를 취한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보면 갖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인간의 눈, 코, 귀, 입은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먹고싶어 한다. 그런 감각적 즐거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인간 자체가 그런 감각적 즐거움을 기본으로 하여 생의 기쁨을 찾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눈, 코, 귀, 입의 촉감은 감각으로서 즐거움의 통로이다. 그 통로가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을 노자는 경계했다. 이는 반야심경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통한다. 안이비설신의가 일으키는 마음은 공(空)하다고 반야심경에서 말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감각적 기쁨이나 즐거움을 추구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의(意)라는 표현을 써서 생각을 일으키는 것조차 공하다고 한다. 우리 마음이 일으키는 것조차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하여서 왔다가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성인은 감각과 욕망의 초월을 강조한다. 그러나 감각적 욕구에서 벗어나기는 정말 어렵다. 노자도 그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그저 생리적 욕구인 배고픔만을 해결하고 꼭 필요한 것 이외의 것을 탐내지 않으며, 안이비설신의에 의한 욕망을 극복하기를 노자는 사람들에게 마음 속 깊이 권하고 있다.


여기서 간디가 늘 머리맡에 두고 읽었던 ‘바가바드 기타’에서 특히 좋아했던 구절을 소개해본다.


◆ 바가바드기타 2장 58~72절


58. 확고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거북이 껍질 속으로 손발을 끌어들이듯이 감각의 대상으로 향하던 자신의 감각을 거두어 들인다.


59. 감각을 대상으로 거두어들여도 그에 대한 갈망은 한동안 남아있다. 하지만 지고한 참나를 깨닫는 순간, 감각의 쾌락에 대한 모든 갈망이 사라져 버린다.


60. 아르주나여, 감각의 힘은 아주 강하다. 깨달음을 위해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조차도 감각의 힘에 휩쓸려 버릴 수 있다.


61. 모든 감각기관을 제어하면서 그 마음을 참나(또는 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얻는다.


62. 감각의 대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집착이 생긴다.


63. 집착은 욕망을 낳고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나며, 분노는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64. 그러면 과거의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삶이 황폐해진다.


65. 그러나 그대가 감각의 세계에 살면서도 좋고 싫음을 초월한다면 모든 슬 픔이 사라진 평화가 찾아 올 것이며 참나 아트만에 대한 깨달음이 흔들림 없이 지속되리라.


66. 감각기관을 제어하지 못하면 지혜가 멀어지고 집중하여 명상하지 못한다. 집중하여 명상하지 못하면 평안을 얻을 수 없고, 평안이 없다면 어찌 즐거 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67. 그대의 마음이 감각의 요구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면, 거센 바람이 작은 배를 집어 삼키듯이 그대의 지성과 판단력이 감각 속에 매몰되어 버 리고 만다.


68.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강한 힘을 발휘하여 감각기관의 좋아함과 싫어함에 서 벗어나도록 하라. 진정한 그대 자신에 대한 충만한 깨달음 안에 안주할 수 있도록 하라.


69.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달은 사람은 사람들이 앞뒤 구별 못하는 무지의 어 둠 속에 있을 때에 빛을 본다. 세상 사람들이 밝은 지혜라고 하는 것들이 그에게는 무지의 어둠에 지나지 않는다.


70.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고 고요한 것처럼, 감각 기관의 욕망을 내면의 바다로 끌어들이는 사람은 지고의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욕망을 쫓는 사람은 결코 평화의 바다에 이르지 못한다.


71. 모든 욕망을 버리고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사람, 나와 나의 것이라는 에고중심주의를 벗어난 사람은 참된 평안에 이른다.


72. 아르주나여, 이것이 바로 지고한 경지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더 이상 미 혹되지 않는다. 그대는 이 자리에 도달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들어가도록 하라.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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