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란 잡으려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오는 것"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7-19 13: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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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14)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도덕경은 죽간(竹簡)의 형식을 빌려서 아주 함축적으로 쓴 것이기에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노자의 진심을 알지 못하면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노자가 하고자 한 말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 도의 실마리, 道紀


노자의 도경 부분은 도의 본질을 먼저 밝히고 그 다음에 도에 들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얻은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도를 얻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視之不見 名曰夷 (시지불견 명왈이)


보아도 볼 수 없는 것을 이(夷)라 하고


聽之不聞 名曰希 (청지불문 명왈희)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것을 희(希)라 하며


搏之不得 名曰微 (박지부득 명왈미)


잡아도 잡을 수 없는 것을 미(微)라 하니


此三者 不可致詰 (차삼자 불가치힐)


이 3가지는 이치로 따질 수가 없으며


故混而爲一 (고혼이위일)


합하여 하나가 된다.


其上不? 其下不昧 (기상불교 기하불매)


그 위쪽은 밝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않으며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승승불가명 복귀어무물)


얽혀서 복잡하여 이름할 수 없으니 무물(無物)로 다시 돌아간다.


是謂無狀之狀 無物之狀 (시위무상지상 무물지상)


이것을 형상없는 형상이라 하고 실체없는 형상이라 하며


是謂惚恍 (시위홀황)


홀황(惚恍)이라 한다.


迎之不見其首 (영지불견기수)


그 머리를 볼 수 없는 것을 맞아들이고


隨之不見其後 (수지불견기후)


꼬리를 볼 수 없는 것을 따르니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집고지도 이어금지유)


옛날의 도를 잡고서 이제 있도록 다스려서


能知古始 是謂道紀 (능지고시 시위도기)


옛 시작을 능히 아니 이를 도의 실마리(道紀)라 한다.


앞서 노자는 오색(五色)을 이야기하면서 감각과 욕망에 지배되지 않는 삶을 촉구하고, 총욕(寵辱)에서는 진리와 사랑에의 헌신을 이야기했다. 그래야만 보이지 않던 도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장에서는 그런 이(夷)하고 희(希)하고 미(微)한 도의 실체에 대해서 노자가 그것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이는 크다는 의미다. 도라는 것이 너무나 커서 보아도 볼 수 없는 것이다. 희미(稀微)하다는 단어는 노자의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도란 희미해서 보기가 어렵고 너무나 커서 볼래야 볼 수 없지만 그것을 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리를 찾아가는 노자같은 이들에게는 그 꼬리가 잡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도란 잡으려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다. 도는 저절로 오기에 그저 맞아들이면 된다. 하늘은 준비된 이들에게만 도를 보여준다. 도를 잡으려고 쫓아가는 자들은 절대로 잡을 수 없다. 모든 부정적인 것을 제거 하고 어둠을 제거하면 밝음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도란 무엇인가? 궁극의 진리, 실상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지만 말할 수는 있어도 전해줄 수는 없고 세상 모두에게 주고 싶지만 받을만 한 사람이 없다.


그나마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혼란의 시대에 노자가 자신의 깊은 사상과 실상의 세계를 적어 놓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도 세계의 그림자를 배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 이야기는 노자의 깨달음이 암시되는 장이다. 글은 비록 난해하지만 자신이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도의 실마리를 찾았음을 나타낸 장이다.


누가 도의 시작을 알겠는가. 누가 도의 기원을 알겠는가.


오직 그곳에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니 노자는 그것을 보고서 도의 실마리라 했다. 그것을 노자가 81장의 글로 세상에 밝혀 놓았지만 볼 사람은 거의 없다. 보아도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되지 않으니 노자의 글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듯 오직 볼 사람만 보리라.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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