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얻은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하게 세상 가운데 섞여있다”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7-24 11: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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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15)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가톨릭에서는 신을 직접 체험한 사람을 신비주의자라고 한다. 신을 본다는 것이 가능할까? 신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할까?


◆ 깨달은 자, 保道者


저번 화에서는 도의 실마리를 얻었으니 여기서는 도를 지닌 자(保道者)에 대해서 설명한다. 5000자의 <도덕경>을 통해 노자는 체계적으로 도와 도를 얻는 방법, 그리고 그 도를 얻은 사람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설명이 너무나 추상적이기에 알아듣기가 쉽지는 않다.


뒤로 갈수록 상세한 이야기들과 특징들에 대해서 나온다. 그의 글 한자 한자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의 깊은 마음을 아무도 본 이가 없으니 그저 각자의 수준에 따라서 해석할 뿐이다.


古之善爲士者 (고지선위사자) 옛적 도를 얻은 사람은


微妙玄通 (미묘현통) 미묘현통하여


深不可識 (심불가식) 그 깊이를 알 수 없도다.


夫唯不可識 (부유불가식) 비록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나


故强爲之容 (고강위지용) 억지로 형용하여 보리라.


도를 깨달은 이를 보고 도가 깊다는 말을 하니 그것은 노자 자신의 상태이다. 도의 실마리를 잡고서 이제 잡은 그 도를 지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도는 깨닫기도 어렵지만 말로 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부처는 미소로서 꽃 한송이를 제자에게 전했다. 도가 쉬웠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이 구원을 받고 깨달음을 얻어서 무한한 평화를 얻었겠지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이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도를 얻은 이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노자의 말을 들어보자.


豫焉若冬涉川 (예언약동섭천) 겨울에 강을 건너듯 조심스럽고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 이웃을 대하듯이 어려워하며


儼兮其若容 (엄혜기약용) 너그러워서 겸손하고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 녹으려는 얼음처럼 유연하여


敦兮其若樸 (돈혜기약박) 통나무처럼 소박하며


曠兮其若谷 (광혜기약곡) 계곡처럼 관대하고


混兮其若濁 (혼혜기약탁) 탁한 듯이 잘 화합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에 우뚝 서고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거룩한 스승이 되어 유명해지리라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하고 관대하며 세상 가운데 섞여 있는 듯하여 오히려 구분하기기 쉽지 않다고 노자는 설명한다.


이것이 노자 자신의 모습이리라. 소박하고 겸손하며 조심스럽고 어려워하며 관대하고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한 모습이 보통의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리숙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고 순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깨달음을 이룬 성인의 모습이다.


오히려 투박해서 경박해 보이기도 하고 가볍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하니 세상이 어찌 알아보리오! 그러나 하늘은 알아볼 것이며 그가 남긴 자취는 하늘에서 그 흔적을 거두어 세상 가운데서 사용되도록 할 것이니, 그것은 인연에 따라서 그리 될 일이다. 다만 노자의 가르침이 2500년을 넘어서 지금까지 전해지니 그의 깨달음의 향기가 만세를 이어지는 것이다.


孰能濁以靜之徐淸 (숙능탁이정지서청)


누가 탁한 것을 점점 고요히 하여 맑아지게 할 수 있을까?


孰能安以久動之徐生 (숙능안이구동지서생)


누가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 점점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保此道者 不欲盈 (보차도자 불욕영)


도를 지닌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으며


夫唯不盈 (부유불영)


무릇 채워질 것이 없기에


故能蔽不新成 (고능폐불신성)


능히 이루었고 새롭게 할 것이 없다.


깨달음을 이루어서 이미 온 세상의 모든 카르마를 해소하고 세상에 있지만 세상을 초월한 사람은 탁한 듯이 보이지만 그는 탁함과 깨끗함을 이미 초월하였으니 그를 누가 어찌 할 수 있으랴? 이미 모든 세상적 욕망과 할일을 마치고 고요히 안정되어 있는 이를 어찌 움직일 수 있으랴?


노자는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도를 지닌 이는 더 이상 채울 것도, 새롭게 이룰 것도 없다. 때문에 모든 것을 폐(蔽)하여 덮어버린다. 이런 단계에 도달한 이들은 세상에 나와서 세상을 변혁시키거나 세상에 불을 놓아서 세상을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비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본질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대인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제 세상에 다시 예수가 온다면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을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그들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기를 원했지만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신 만의 천국을 이루기를 원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이 세상의 모든 카르마를 넘어선 성인(聖人)은 존재함 그 자체로서 세상에 가르침을 준다. 교불언지교(敎不言之敎), 말하지 않고 가르친다. 그래서 노자는 모든 것을 덮고(蔽) 마지막 5000자를 세상에 남겨놓고 등선(登仙)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경허스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뒤 말년에 세상을 뒤에 놔두고 삼수갑산의 깊은 마을로 들어가 훈장 노릇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자신의 가르침을 펼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덮고 그곳에서 생을 마친 것이다.


경허스님의 맏제자인 수월스님도 깨달음을 얻고서 핍박받는 조선 민족을 위해서 만주로 간 뒤, 그곳으로 오는 중생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다가 조용히 등선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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