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이 세상은 온갖 ‘에고’들이 서로를 내세운다. 다른 견해, 관점, 의견, 가치관, 도덕, 윤리, 종교 등으로 끝없이 ‘나(自)’를 주장한다. 그 나로 인해서 세상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 나를 내세우지 않음, 不自
나로 인해서 세상이 발전하는 측면도 있지만 세상에는 증오와 분노가 넘쳐난다. 내가 만들어내는 세상은 물질세상을 풍요롭게 했다. 따라서 세상은 오직 양(陽)의 펼쳐짐만을 발전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물질 세상이 팽창하고 문명이 발전하며 과학기술이 발전하니 겉으로 보이는 세상의 발전은 인간의 상상 이상이다.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전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이 보였던 바둑에서조차 인간을 초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미래 혹은 방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자가 바라보는 천하의 법도는 다르다.
曲則全 枉則直 (곡즉전 왕즉직)
굽혀야 온전할 수 있고 휘어야 곧게 할 수 있다.
窪則盈 ?則新 (와즉영 폐즉신)
우묵해야 채울 수 있고 낡아야 새롭게 할 수 있다.
少則得 多則惑 (소즉득 다즉혹)
적으면 얻을 수 있고 많으면 미혹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의 문명은 양적으로 발전하고 팽창하지만 인간의 행복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인간의 행복은 많이 얻을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자가 바라보는 행복은 그 반대이다. 적을수록 좋고 많으면 미혹된다는 노자의 말은 삶의 진정한 목적을 놓고 현대인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뻗뻗하게 우뚝 서고 곧은 나무는 잘리어서 보존키 힘들다.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 겸손하고 너그럽고 부드러운 가운데 마음의 평온이 있다.
진정한 행복은 굽히고 휘고 우묵하고 낡아야 하고 더 적게 성취해야 한다. 많이 가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 불행해진다고 노자는 말한다. 그것이 진리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이 몸조차 놓고 가야하건만 현대 사회는 우리가 영원히 이 물질세계에 머무를 수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유혹한다.
이전에 오색(五色)에서 말하는 것을 여기서 다시 이야기한다. 우리는 적을수록 행복하다.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제든지 가볍게 벗어놓고 갈 수 있는 가벼운 외투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 (시이성인포일위천하식)
때문에 성인은 포일(抱一)을 천하의 법도로 삼는 바
不自見故明 (불자견고명)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고
不自是故彰 (불자시고창)
스스로 옳다하지 않으므로 드러나고
不自伐故有功 (불자벌고유공)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고
不自矜故長 (불자긍고장)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오래 가고
夫唯不爭 (부유불쟁)
모름지기 오로지 다투지 않으므로
故天下莫能與之爭 (고천하막능여지쟁)
천하가 그와 함께 다툴 수 없다.
누구나 많이 소유하고 재미있고 보람된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세상에서 노자는 포일을 강조한다. 포일은 모든 백성을 하나로 품는다는 뜻의 재영백포일(載榮魄抱一)과 같은 말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노자는 시대를 가로질러서 이야기한다. 스스로 드러내고 옳다하고 자랑하는 것을 경계하라. 양적인 팽창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음적인 태도로 세상에서 드러내거나 자랑하지도 않고 다투지 않는 삶을 노자는 말한다.
행과 불행은 그저 종이 한장 차이이며 행도 불행도 하나로 포일하면서 천지자연과 하나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古之所謂曲則全者豈虛言哉 (고지소위곡즉전자개허언재)
옛사람들이 굽혀야 온전할 수 있다는 말이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誠全而歸之 (성전이귀지)
진실로 보존되고 돌아올 것이라.
휜 목재는 집 짓는데 쓰이지 않으나 곧은 나무는 곧바로 목재로 쓰인다. 그래서 곡즉전(曲則全)이라는 말이 옛부터 전해져 오는 것이다. 세상에서 동량(棟梁)으로 쓰이기 보다는 굽은 나무로서 그저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주식시장처럼 오르락내리락 한다. 주식이 오를 때는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10배, 100배 끝없이 오를 듯하다. 그러나 떨어질 때는 순식간에 폭락하여 종이조각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삶도 이렇게 파도 속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조각배와 같다.
그래서 모두는 가장 안전한 삶을 위해서 재물을 모으고 노후의 안정된 삶을 위한 대책을 세 운다. 그것은 어찌 보면 미래에 대한 인간의 당연한 생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한다.
인생을 다 걸고서 재물과 안락한 삶을 추구하지만 어느 한 순간에 심한 추락을 겪는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다. 사랑했던 사람과도 어느날 헤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가장 안전할 것 같은 길을 찾아가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다 놓아야 한다. 그 마지막에 우리는 꼭 쥐었던 손을 다 펴고 본래의 곳으로 가야한다. 이 땅에서의 삶은 아주 일시적인 꿈이자 연극이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 내 재산뿐만 아니라 내 육체도, 내 이름도, 한낱 거품에 불과해서 그냥 사그라져 버린다.
그래서 노자는 우리 모두가 영원한 무엇인가를 찾아가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천하식(天下式), 즉 천하의 법도인 것이다. 천하의 그 법도를 지킬 때 우리의 삶은 진실로 온전(穩全)해 지는 것이다.
노자처럼 세상을 초월한 신비주의자들은 ‘나’를 넘어간 사람들이다. 나라는 ‘에고 덩어리’를 넘어서 천하를 훨씬 넘어간 사람들이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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