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RDP(지역내총생산) 33년 꼴찌 대구는 선거를 앞두고, 경제의 몰락에 따른 민심 악화에 이대로 갈 수는 없다며 '바꿔야 산다'와 '바꾸겠다'는 언설이 시민을 헛갈리게 하고 있다. 자칭 보수의 성지에서 '용인(用人)의 리더 쉽'과 '경제의 리더쉽'이 서로 부딪히는 '대구를 바꿔야 산다'와 '경제를 바꾸겠다'는 말은, 언 듯 맞는 말인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 속이 뻔히 보인다.
국민의힘 후보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보수의 성지에는 지역 토박이 국민의힘 후보와 시민의 민심을 매표하기 위해 중도 보수의 옷을 잠시 빌려 입고 온 민주당 후보가 진검승부를 펼치며 전국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들은 정책의 당당함보다 바꾸겠다는 화두로 선거에 불을 댕겼다. 바꾼다는 문제를 두고 후보들이 서로 부딪히고 싸우지만 비장함이 묻어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절망과 탄식의 굴레에 갇힌 시민들에겐 선거 화두가 언 듯 가슴에 와닿지 않은 것은 왜일까. 정치인의 단골 메뉴인 교과서적 수준의 감언이설에 속은 탓도 있지만, 장기적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이대로 간다는 건 분명 죽지 못해 사는 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꾸는지, 정작 새롭게 하려는 노력은 없이 유권자의 표심을 쇼핑 말 잔치에 그치는 것은 다 허구다. 이 허구는 신기루처럼 떠다니니 미래를 위한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서 싸우는 모습이 스포츠 게임을 구경하는 것 같아 새로움을 갈망하는 유권자를 눈멀게 하고 있다. 기어이 바라보려는 유권자의 시선은 아득한 저편 새로운 곳에 닿지 못하고 공허한 허공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블랙홀에 빨려 모든 것들이 소멸해서, 기대가 사라진 정치판 거짓말에 시민들만 난감하다.
땅속에 숨었다가 선거철만 되면 두더지처럼 불쑥 올라와 바꾸자는 언어는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 핵심 주제가 되기에는 철이 지나도 한참 흘러간 옛 노래다. 그들은 옛 노래인지 몰라서 그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것이 아닐 터이다. 새로이 부를 마땅한 노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일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자리를, 시장의 논리와 별개로 존재하는 유권자의 논리가 무엇인지 학습되지 못한 후보자들은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선거영역서 적응하려고 든다.
표심을 얻기 위해 얼굴 분장을 하고, 맞지도 않는 옷을 빌려 입은 정치는 곁과 속이 다르다. 매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비정상적인 정치에 서민들의 영혼은 너덜너덜해졌다. 주류 정치인의 언설이 감언이설로 표심을 흔드는 선거 현장에는 어떤 언어도 서민이 거쳐온 밑바닥 삶을 바꾸지 못했다. 서민의 삶이 타는 목마름에 죽어가는 시대, 정치인 저마다 바꾸겠다 말하지만 무엇을 바꾸려는지 모호하다.
미국같이 양당제 국가에서 유권자가 지지 정당을 바꾸는 걸 재편성(realignment)이라고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지지 정당을 바꿀 때 사용되는 단어다. 우리 선거 문화에서 바꾸자는 단어는 체제 재편성이 아닌 상대 죽이는 말로 이용되었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이 비정한 정치는 욕망으로 멍드는 사회를 만들었다.
바꾼다는 것을 이분법 렌즈로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게 많다. 줏대 없는 정치인이 왜 그렇게 많은지, 왜 그들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뒤집고 언행일치 불일치를 보이는지, 자리 하나에 영혼을 팔아버릴 사람이 왜 이렇게 줄을 섰는지, 내 편ㆍ네 편으로 나뉜 정치 패널들은 왜 궤변을 일삼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를 사람들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어딘가. 그들에게 국가와 국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자리 혹은 위치에 가면
출세고 성공이다.
지금 우리는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정치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내 일상을 위하는 '토박이 정치'에는 무심하다. 국회의원이 국가를 위한 큰 담론을 다룬다면, 내 고장 정치인은 내가 사는 주변의 일상의 문제를 다룬다. 그럼에도 우리는 먼 곳 정치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내 앞 정치는 무심하다.
전과자든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선택의 눈이 멀었다. '안 봐도 척' 특정 지방은 파란색 일도이며 또 다른 지역에는 붉은색 일색이다. 정작 바꿔야 할 것은 묻지마 지방선거 방식이다. 뻔한 결과에 지친 유권자는 참정권도 줄었다. 2022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50.9%로 2018년 선거 때보다 무려 10% 낮아졌다. 유권자의 관심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선거는 무관심하다.
무관심의 정도가 지나치게 투표장 풍경은 더 서글프다. 묻지 마 투표는 찍어야 할 후보가 누구인지, 지지하지 않는 타당 후보의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어느 당' 소속 인가, 몇 번째 칸에 찍어야 하나가 투표의 기준이 된다. 소중한 가치의 투표, 공적 기준이 되어야 하는 권리 행사를 자극적인 스포츠처럼 관람하고 소비하는 태도가 된 시대상이 더욱더 허탈하다.
힘 있다 해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무례도 서슴없이 소신이라 생각하고, 사실에 따른 논리 대신 조롱과 편 가르기 큰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저급한 이들을 주민의 대표로 선택하는 순간, 우리 동네 품격도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선택 반복해 온 우리 자신들도 이런 잘못된 정치환경이 조성되는데 일조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올바른 선거 문화는 유권자의 의식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 거창한 구호나 정치인 개개인 스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화려한 이력보다 성실한 일상으로의 생활, 법과 원칙을 마땅히 지키는 사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행동, 맡은 소임을 묵묵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시스템이 정착화된 세상에 좋은 정치는 후보자의 화려한 이력서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성실함이 배어 있는 평범한 상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몽상의 헛소리보다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후보로 바꿔야 한다는 이론은 듣기에는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바꿔서 모든 현안이 해결된다면 무엇인들 못 바꾸랴.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달려가 그 발치에 앉아 배우고 싶다. 공약만 남발하며 책임지지 않는 행위와 행위자는 설령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참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뜻있는 사람들은 정치 자체에 이대로 갈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해도 어디로 갈 것인지는 모호함이 있다. 여당 진영의 배나 야당 진영의 배에는 깃발만 펄럭일 뿐 막상 올라타려는 현인들이 모이지 않는 이유다.
남을 탓하고 자신은 완벽한 것으로 화장된 선거 문화가 우리 사회의 성공과 도덕적 기준으로 자리 잡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세상 바꾸려는 일도 필요하지만, 공동체의 중심인 우리부터, 나부터 바꾸자. 고정된 생각에 매이면 새로운 세계가 닫힌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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