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긴 손가락이
정수자
신전의 부조들을 아다지오로 쓸다 말고
하늘을 훅 그으니 별들이 쏟아졌다
나일강 만파를 고르듯
파피루스 잎을 타듯
피아노를 타고 놀던 파리한 손가락이
별 사이를 촉진하자 은파랑이 튀었다
콤옴보 신화를 토할 듯
열주들이 울렁였다
불러 봐 너의 별을, 은파 만파 지휘하듯
반달 깃든 손톱이 뱃전을 두드릴 때
누천년 사막 능선 켜온
달도 뺨을 붉혔다

수천 년 묵묵히 서 있던 열주들과 이 모습을 비추는 달의 시간, 소년은 이 침묵의 선율을 시어로 고르지요. “신전의 부조들을” 쓸듯이 부드럽게요. 피라미드가 세워지는 것과 나일강이 범람하는 일 그리고 전쟁과 사랑이 반복되는 모든 시간을 비추어온 달. 시인은 이런 달이 “뺨을 붉혔다”라며 고요한 절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달의 관조가 음악이 되는 순간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시인은 소년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파리하고, “반달 깃든 손톱”으로 뱃전을 두드릴 뿐. 생각해 보면 그 손가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키보드를 연주하듯 두드리는 손. 누군가는 새벽까지 SNS 스크롤은 넘기거나 꺼진 채팅창의 친구 목록을 보며 관계의 잔향을 확인하지요. 이 순간 우리 손가락의 두드림은 어떤 언어를 만지고 있을까요. 몸의 가장 먼 언어가 우주의 언어가 되는 순간 떨림을 촉진하는 시인의 아다지오를 듣습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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