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93] 동물성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8-31 12: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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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성

성향숙


밀착 포복으로
담쟁이는 벽에 붙어 한 뼘씩 이동했다
월담을 모색하는 비문법적 허용 범위
담벼락에 귀 대고 서성대는
마치 벽 너머를 염탐하는 스파이처럼

은밀하게 벽면 전체를 정복하는 것
가랑이는 가랑이를 뻗는 고통으로 푸르게 결속하고
피가 밴 손가락은 옹벽을 움켜잡지만
비밀이랄 수 없이 뻗는 붉은 싹의 코드들

경계선의 담론은 예민하다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만
중력에 묶인 잎들의 무게가 돼지 엉덩이처럼 느껴진다
가까스로 경계를 넘고 나면
혁명처럼 무질서하게 뻗어나갈 광장이 있다는 것

손 쓸 새 없이 붉게 물드는 첨예한 담론
탐색만으로 끝나버린 혁명정부의 오판 같아

두리번거린 지령들이 박제된 수원 성벽
동면의 유전자는 뼈대만으로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밀착 포복”으로 한 뼘씩 이동하며 “담벼락에 귀 대고 서성대는” 존재지요. 마치 벽 너머를 “염탐하는 스파이처럼” 은밀하게 벽을 탐색하고 끝내 벽면 전체를 정복합니다. 이 움직임에는 식물이라는 이름만으로 가둘 수 없는 본능적인 몸의 힘이 있습니다.

“가까스로 경계를 넘고 나면” “혁명처럼 무질서하게 뻗어나갈 광장”은 자유와 무질서가 뒤섞인 혼란의 공간입니다. “붉게 물드는 첨예한 담론”과 “혁명정부의 오판”은 담쟁이의 생명력을 개인의 본능에 가두지 않고, 경계와 질서, 혁명의 문제로까지 밀어붙이지요. 이 시에서 담쟁이는 단순히 벽을 타고 오르는 식물이 아닙니다. 벽을 넘는 일은 출구를 찾는 행위지요. 그래서 “월담”과 “혁명”은 결국 같은 몸짓입니다. 몸이 경계를 넘는 순간,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가니까요.

우리의 삶에서도 경계를 넘는 일이 자유만을 뜻하지 않을 거예요. 익숙한 질서와 의지하던 벽을 벗어나면 혼란이 찾아오지만, 그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지요. “동면의 유전자”가 “화려한 부활을 꿈꾸듯” 담쟁이도 다음 공간을 향해 몸을 뻗으니까요. 시에서 동물성이란, 살아 있기에 끝없이 경계를 넘으려는 몸의 본능이 아닐까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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