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⑪] 다라니 수행으로 관자재를 품다! ...안일사(安逸寺)

이재윤 / 기사승인 : 2019-05-22 1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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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이재윤 기자] 안지랑골 등산로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안일사는 앞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도 늘 열려 있는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점심 때 들르면 누구나 무료로 점심 공양을 할 수 있고 도량을 둘러보며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반가운 비가 내리는 날 앞산 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안일사를 찾았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일반 승용차로는 오르기 힘들만큼 가파른 산길이라 안일사에서 보내준 4륜구동 차량을 타고서야 겨우 오를 수 있었다. 

 

▲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대구 항일운동 성지, 안일사


팔공산과 더불어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앞산은 골마다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안일사는 은적사, 임휴사와 더불어 앞산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로, 세 사찰 모두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과 인연을 맺고 있다.
안일사는 927년(경순왕 1)에 영조(靈照)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대패한 후 은적사에 3일간 머물고, 다시 왕굴에 와서 피신한 뒤 이곳 안일사에서 편하게 피란하고 쉬어 갔다고 해서 안일사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안일사 위쪽에는 왕건이 피신했던 왕굴이 남아 있다.
또한 안일사는 일제의 강제병합에 맞서 싸웠던 대구지역 항일 운동과 저항의 출발지였다. 1915년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 13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안일사에 모여 조선의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활동을 서약하고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안일사에 설치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 뒤에는 상해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군자금 조달운동이 벌어지는 등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안일사에서는 2015년부터 조선국권회복단 선양회와 함께 독립운동 선열 36인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 다라니 수행, 관자재를 품다!


안일사 주지 성해스님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라니를 독송, 염송한다면 마음이 자재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며 다라니 정진을 수행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불자들에게 독려하고 있다.

“불자들의 힘은 기도정진과 수행에서 나옵니다. 불자들이 좋고 싫음에서 자유자재하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기에 가장 적합한 수행방편이 다라니 기도정진입니다. 눈으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자비의 마음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다라니 기도는 매월 1차례 철야로 진행되는데, 108독 다라니 수행정진은 2015년 8월 30명의 불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200여명의 불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만큼 다라니 수행정진을 통해 참여 불자들이 스스로 변화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108독 다라니 기도에 10회 이상 참여한 신도들에게는 ‘관자재(觀自在)’가 새겨진 합장주가 주어진다. 다라니 기도를 통해 관자재한 품성을 길러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닦는 수행의 방편이다.

“볼 관(觀)은 볼 견(見)과 차이가 있습니다. 견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관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죠. 관세음보살님의 또 다른 이름인 관자재는 마음으로 보아야 자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담긴 말입니다.”

성해스님은 다라니 염불 수행이 간화선 수행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고 염송하는 주력, 염불 수행이 업장을 소멸하고 지혜를 닦는 수행의 방편이고, 이를 통해 업장소멸을 넘어 자비심을 일으키고 마음의 효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해스님은 “모든 불자들이 다라니 행자가 되어 관재자한 보살이 되길 바란다”며 “안일사 주지 소임으로 있는 동안 세운 이 원력이 안일사 불자들뿐만 아니라 대구지역, 나아가 모든 불자들의 신행문화를 바꾸는 작은 불씨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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