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⑭] 지친 몸을 쉬고 마음을 밝히는 곳...임휴사

이재윤 / 기사승인 : 2019-06-27 18: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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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이재윤기자] 팔공산과 더불어 앞산은 대구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물오른 봄기운으로 등산로에는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나선 시민들과 꽃망울을 터뜨리며 기지개를 켜는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생기가 넘친다. 임휴사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다. 열심히 걸으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뒤로 대덕산 품어주고 앞에선 청룡산이 보듬어 주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임휴사의 모습은 과연 왕건이 넉넉히 쉬어갈 수 있었을 만큼 아늑해 보인다. 

 

▲임휴사.(사진출처=대구 달서구청 공식블로그)

태조 왕건이 쉬어간 곳, 임휴사


가벼운 등산로와 케이블카, 전망대 등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찾는 앞산에는 예로부터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앞산에 있는 임휴사는 후백제 견훤과 전투 중 수세에 몰린 왕건이 은적사, 안일사와 함께 머물면서 마음을 다스렸던 곳으로, 훗날 고려 왕조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게 된다.


임휴사(臨休寺)라는 사명 역시 태조 왕건이 ‘임시로 쉬어갔던 절’이란 데서 유래했다. 서기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범해 오자 왕건이 신라를 돕고자 경주로 가던 중 동수(동화사 인근지역)에서 견훤을 만나 격전을 벌이게 된다. 이 싸움에서 왕건은 대패하여 생명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왕건의 심복인 김락의 호위를 받은 신숭겸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으로 위장해 달아나자 견훤이 이를 진짜 왕건으로 보고 쫓아가 죽이는 바람에 왕건은 무사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 싸움으로 인해 대구에는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게 되었는데, 왕건의 군사가 크게 패했다는 파군재, 왕건의 탈출을 비춰주던 새벽달이 빛났다 하여 반야월, 오아건이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 그리고 왕건이 탈출하다가 임시로 군막을 치고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갔다고 해 지은 ‘임휴사’ 역시 그 중 하나다.


왕건은 이곳에서 쉬면서 부처님 전에 기도를 드리고 전열을 가다듬어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결과적으로 후삼국통일의 발판이 되었다.

 

▲임휴사.(사진출처=대구 달서구청 공식블로그)

지역민의 관음기도도량


절 입구에 들어서면 삼성각이 일품이다. 오르는 길을 닦고 데크를 설치해 제법 운치를 더했다. 삼성각은 불교 사찰에서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모시는 집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고유의 토속신앙을 포용한 결과이다.


임휴사는 일찍이 신라 말엽인 921년(경명왕 5년) 중국 당나라에서 불법을 수행해 크게 선풍을 진작하고 귀국한 영조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11년(순조 11년)에 무주선사가 중창했고, 1930년 포산화상이 3창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휴사는 불조의 혜명으로 법등이 전수되어 1천년 세월을 국가에는 국태민안, 민족에게는 자비, 화합을 안겨준 지역민의 귀의처로, 기도도량이자 휴식공간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7월 타종교의 광신도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괴한이 저지른 계획적인 방화로 인해 요사를 제외한 전각이 모조리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법당 내부에 모셔진 불상이나 탱화를 단 1점도 꺼내오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참화였다. 아직도 방화범은 잡지 못했지만, 임휴사는 아픔을 딛고 현재 대웅전, 나한전, 종무소, 반야당, 그리고 삼성각을 중창해 관음기도도량으로서 기도와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민을 위한 ‘마야유치원’을 운영하며 어린이법회를 열고 ‘불교전문교육원’을 개설해 교육과 포교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부처님 오신 날에는 경내에서 산사음악회를 개최해 지역주민들과 가까이 소통하고 있다.

경내를 거닐며 문득 그 옛날 전투에 지친 왕건은 어디쯤에서 지친 몸을 쉬었을까 생각이 머물렀다. 계단을 올라 삼성각 석등 앞에 이르러 다시 한 번 그 ‘쉼’의 의미를 그려본다.


석등은 처음 어둠을 밝힐 목적으로 세워졌으리라. 적막한 산사의 어둠을 밝히는 석등 앞에서 왕건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빛에 스스로를 비춰 지친 마음을 밝히진 않았을까? 천년의 세월이 흘러 석등 안에는 누군가의 염원을 담은 동전이 반짝인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듯, 석등 아래 작은 바람을 내려두고 내 마음을 비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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