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⑬] 불자들의 공부방, 시민들의 쉼터...은적사(隱跡寺)

이재윤 / 기사승인 : 2019-06-20 15: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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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이재윤기자] 앞산만큼 대구시민들에게 정겨운 이름이 있을까? 어릴 적 살았던 시골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산골이었다. 저마다 지도에 표기된 고유한 이름들이 있었겠지만 우리 마을에선 대대로 앞산, 뒷산으로 불렸다. 앞산 너머 마을에서는 뒷산이 되고, 뒷산 너머 마을에서는 앞산이 되었을 그 산들, 우리네 산은 다들 그렇게 정겨운 이름들로 불렸다.

◆  왕건이 몸을 숨긴 곳, 은적사


대구의 앞산 역시 그렇다. 비슬산, 대덕산, 최정산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앞산’이라 부르길 좋아한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앞산을 찾는다. 앞산에는 골짜기가 많다. 큰골, 고산골, 안지랑골 등 비교적 크고 이름난 골짜기부터 용두골, 메자골, 달비골 등 작고 아담한 골짜기도 많다.


은적사가 자리하고 있는 큰골에는 낙동강 승전기념관, 충혼탑, 케이블카, 수영장, 인공폭포, 원두막 등 많은 위락시설이 몰려 있어 특히 대구시민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말사탐방을 위해 은적사로 오르는 길에는 벌써부터 봄나들이에 나선 시민들로 붐볐다.

 

▲ 은적사 가을풍경.(사진출처=대한불교 조계종 은적사 홈페이지)

앞산 허리를 감고 도는 오솔길을 지나 가파른 길을 돌면 아담하고 정갈한 사찰, 은적사가 나온다.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저 멀리 도심의 매연과 소음을 차단해 고즈넉한 산사의 안온함을 느끼게 한다.


앞산 큰골에 위치한 은적사는 인근의 임휴사, 안일사와 더불어 고려 태조 왕건과 깊은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해 국운이 위태로워지자 경애왕은 왕건에게 도움을 청한다. 왕건은 구원병을 이끌고 달구벌에 입성하지만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하고 만다. 신숭겸의 지략으로 구사일생 피신한 왕건은 지금의 은적사 대웅전 아래 굴로 피신했고, 이곳에서 3일간 숨어 지내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왕건이 굴에 피신했을 때 짙은 안개와 거미들이 거미줄을 쳐주어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은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훗날 고려를 개국한 후 왕건은 고승 영조대사에게 명해 이곳에 사찰을 짓고, 자신이 숨어 목숨을 건진 곳이라 하여 ‘숨을 은(隱)’, ‘자취 적(跡)’자를 써 ‘은적사’로 명명하였다.

◆ 신도와 시민 속으로


천년 고찰 은적사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이 들어서 있으며 차고 깨끗한 약수가 있어 등산객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또 현재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불교 홍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입구의 종무소를 돌아서면 계단 위 마당을 내려다보며 대웅전이 서 있다. 대웅전 안에는 고려 말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석가여래좌상과 1880년대에 조성한 지장탱화가 봉안돼 있다.

 

▲ 은적사 대웅전 부처님 .(사진출처=대한불교 조계종 홈페이지)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둥근 양 어깨에 법의를 통견식으로 걸치고 있으며, 항마촉지인 수인을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영락 장식도 없으며 복식도 주름 무늬 외에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다. 18세기 초반 목조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내년에 설법전 불사를 합니다. 우리 절의 오랜 숙원인데 이제 인연이 되어서 불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불사가 이루어지면 어린이법회를 비롯해 우리 신도들이 전통 사경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은적사 주지 원일스님은 설법전 불사를 통해 신도들에게 더 가까이, 그리고 깊이 있는 교육의 장이 마련될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또한 불교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이 찾는 만큼 북카페도 만들어 불교가 일반인들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인연을 만들고, 시민들도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했다.

 
은적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룸비니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문화탐방 프로그램으로 불교를 통해 문화를 접하고, 문화를 통해 불교를 접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신도들을 위해 매월 금강경사경순례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5대 보궁을 순례했고, 올해는 9개 선원을 순례할 계획이다. 신도들이 금강경 1분~31분까지 각자 집에서 사경을 하고, 마지막 32분(응하비진분)을 순례지에서 사경한 후 법문을 듣는 법회이다.


포교와 교육에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오랜 전통과 유산을 일반시민들과의 인연으로 확장하고 있는 은적사, 불자들의 공부방, 시민들의 쉼터로 오늘도 인연을 잇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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