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무엇을 잡고서 살아야 하는가?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9-03-08 17:40:11
  • -
  • +
  • 인쇄
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32)
▲김선국 박사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우리는 물질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엄청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스마트폰과 구글링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 곳곳의 정보를 얻어내고 탐험한다. 새로운 정보의 생산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어 가공하고 처리하는 빅데이터의 시대도 열렸다. 그러나 많은 정보와 물질문명의 발달과는 반비례하여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잡고서 살아야 하는가?

 

◆ 잡을 수 없음이여, 大象 


執大象天下往 (집대상천하왕) 대상大象을 잡고서 세상에 나가면
往而不害安平大 (왕이불해안평대) 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고 평화로움이 크다.
樂與餌過客止 (락여이과객지) 즐거움과 음식은 나그네를 멈추게 하나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도지출구담호기무미) 도가 나오는 곳은 담백하여서 맛이 없다.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시지부족견청지부족문) 보아도 보기 어렵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用之不足旣 (용지부족기) 사용하기에도 어려운 것이다.

오직 그곳에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진리이고 사랑이고 평화이다. 그것을 노자는 대상大象이라고 했으니 도道의 다른 이름이다. 세상에는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나도 많은 세상이다. 맛있는 것도 많으며 즐거운 곳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도가 나오는 곳은 재미가 없다. 무미건조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것. 그것은 세상에 써먹을 수도 없는 것이니 얼마나 재미 없겠는가! 그것은 찾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 그것을 찾는 사람만이 대상大象이 무엇인지를 안다.

대상大象의 문자적 의미는 큰 코끼리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큰 코끼리는 보기 힘든 것이고 이름만 들었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자는 도道의 또 다른 이름을 대상大象이라 하고 대상이라는 상징적 단어를 사용해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진리, 사랑, 평화를 표현한 것이리라.

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다.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없다. 그래서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으려해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내면 속에서 무미건조함을 견디면서 깊고 깊게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執大象天下往 往而不害安平大 (집대상천하왕 왕이불해안평대) 대상大象을 잡고서 세상에 나가면 해를 입지않고 안전하고 평화로움이 크다.
樂與餌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락여이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즐거움과 음식은 나그네를 멈추게 하나 도가 나오는 곳은 담백하여서 맛 이 없다.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 보아도 보기 어렵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사용하기에도 어려운 것이다. 


 

 

 

◆ 미묘한 깨달음, 微明

채워도 채워도 부족함이 인간의 탐욕이어서 우리는 끝없이 커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만 나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의 과정을 거쳐서 연단되어야 하며 어둠의 밤을 거쳐야 한다.

將欲歙之 必固張之 (장욕흡지 필고장지) 줄어들려면 먼저 창대해야 하고
將欲弱之 必固强之 (장욕약지 필고강지) 약해지려면 잠시 강해져야 한다.
將欲廢之 必固興之 (장욕폐지 필고흥지) 없어지려면 일단 흥해야 하고
將欲奪之 必固與之 (장욕탈지 필고여지) 빼앗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是謂微明 (시위미명) 이것을 일러 미명微明이라고 한다.

미명微明은 미묘한 밝음이다. 이 밝음은 모든 것을 다 버린이 만이 얻을 수 있음이다. 노력에 의해서 얻을 수 있음도 아니요, 지식에 의해서 얻을 수 있음도 아니다. 자신을 그 무위와 하나되게 하여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여기서 노자가 좋게 여기는 것은 장張, 강强, 흥興, 탈奪의 창대하고 강인하고 흥하고 뺴앗는 상태가 아니라 흡歙, 약弱, 폐廢, 여與의 줄어들고 약하고 폐하고 나누는 상태를 말한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노자의 말은 역설처럼 들린다. 여기서 대상은 타인을 상대로 하는 것처럼 읽히지만 실상은 나 자신이다. 내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오므려져야 하고,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져야 하는 것을 말한다. 흥하는 것이 아니라 폐하여져야 하며, 주는 것이 아니라 빼앗겨져야 한다고 노자는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묘한 밝음이다.

나는 더 이상 가질 것도, 얻을 것도, 흥할 것도, 강해질 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야만 진정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노자가 얘기하는 성인의 삶이고 상태이다. 그것은 보통사람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마지막 장에서 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노자의 마지막 단어는 박樸이다. 소박함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무위의 궁극적인 상태는 세상에서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깊은 산 속의 한그루 나무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성인이 다듬어지지 않은 그 목재를 사용할 수 있으며 하늘이 필요하면 그 사람을 쓸 수 있는 것이다.

 



柔弱勝剛强 (유약승강강)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며
魚不可脫於淵 (어불가탈어연) 물고기가 연못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이
國之利器 (국지리기) 나라의 날카로운 무기를
不可以示人 (불가이시인)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된다.

유약한 것이 굳건함을 이긴다. 노자의 도는 성공하고 출세하는 등 세상에서의 흥함을 나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약함을 추구한다. 이 장에는 노자의 미묘한 가르침이 있다. 그것에 대한 깨달음을 미명微明이라고 한다. 강하게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얻겠다는 의도를 내어도 사실 얻을 것은없다. 물고기가 물 밖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욕심을 내어 물 밖으로 나간다면 숨을 헐떡이다 죽을 것이다.

나라에서 돈 버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그들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린다. 부동산이니 다단계니 해서 떼돈 버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눈이 멀어서 스스로 헐떡이는 지옥같은 현장에 뛰어들어 결국은 자신의 물질뿐만 아니라 혼까지도 팔아먹는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노자는 그런 창대함과 강함과 흥함 보다는 유약함이 더 낫다고 얘기한다. 욕심에 의해서 스스로를 망치지 말라고 목복目腹의 장에서 얘기한 것을 여기서 또 다시 얘기한다. 우리는 약함으로써 강함을 이기고 짐으로써 이기는 것이다.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