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노조, ‘족쇄’ 된 근로계약서…“심야 노동에 일상 무너져” [리얼줌②]

성지온 기자 / 기사승인 : 2022-05-12 10: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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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연봉계약서, 서명 시 추가 근무에 자동 일괄 동의하도록 고의 설정
-거부를 거부하는 불공정 조항…근로기준법 70조 취지·내용 모두 맞지 않아
-女노동자 “코로나로 잠시 경험한 저녁 있는 삶,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전수찬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왼쪽)과 조혜진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오른쪽)이 1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이마트에 대해 차별 시정 권고를 촉구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취재진에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제20대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0일. 신세계 그룹 계열의 대형 할인점 이마트에서 근무 중인 여성 노동자들이 ‘저녁 있는 삶’을 호소했다. 

 

‘저녁 있는 삶’은 2012년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가 내세운 선전 구호다. 질 좋은 일자리를 늘려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저녁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다. 비록 당시 손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으나 선전 구호만큼은 장시간 노동을 성토하는 곳에서 자주 거론되는 중이다.


이마트 여성 노동자들은 저녁 있는 삶을 방해하는 ‘족쇄’로 사측과 작성한 근로·연봉 계약서를 저격했다. 해당 계약서에는 연장·야간·휴일근로(이하 추가 근로)에 동의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관계로 서명한 노동자는 연장, 야간, 휴일 근로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 노동조합 이마트 지부에 따르면, 이마트는 2014년까지 매년 말 혹은 초에 사원별로 추가 근로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 그러다 2015년 전자 연봉계약서에 ‘연장, 야간, 휴일근로를 하는 것에 동의함’이라는 문장 한 줄을 추가했다. 연봉계약을 위해 서명하면 추가 근무에 일괄 동의하게끔 한 것이다.

당시 이마트 지부 측은 “어째서 연봉계약서에 근로조건에 대한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냐. 둘은 성격이 다르므로 연봉계약서에 적시하는 건 옳지 않다”라면서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측 역시 그해 12월,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추가 근로 동의’ 조항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2018년 들면서부터다. 회사는 ‘㈜이마트 [이하 ’사업주‘라 함]와 ○○○ [이하 ’근로자‘라 함]은 다음과 같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라는 문장과 함께 ‘계약사항 9항 기타, 근로기준법에 따른 연장, 야간, 휴일근로를 하는 것에 동의함’이란 문구를 추가한 새로운 연봉계약서를 제시했다. 해당 양식은 지난해까지 쓰이다가 최근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2014년까지 매년 연말 또는 연초에 사원별로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한 개별 동의를 받아 왔으나 2015년부터 연봉 계약서에 추가 근로에 동의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사진=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이마트 지부 제공>

저녁 ‘없는’ 이마트 여성 노동자의 삶 

현재 이마트 여성 노동자들은 오전 9시 출근~오후 5시 퇴근 혹은 오전 10시 출근~오후 6시 퇴근인 ‘오전 조’와 오후 3시 출근~오후 11시 퇴근인 ‘마감 조를 번갈아 가면서 근무한다. 무엇보다 마감 조의 경우 현실적으로 정시 퇴근은 불가능하고 야간 대중교통 배차 간격까지 고려하면 집 도착 시간은 새벽 시간이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15년 간 계산원으로 근무 중인 홍현애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서울본부장은 “처음 몇 년 동안 관리자가 짜주는 일정에 무조건 따랐다. 심야 노동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마감 조인 날은 정산기 고장으로 막차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했고, 밤 12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면 씻고, 잘 준비를 서둘러 해도 새벽 2시 넘어 취침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라면서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항상 몸은 피곤하고 아침 기상 시간 또한 늦어져 한 집에 사는 가족들 얼굴 한 번 못 보고 지나는 날이 점차 늘었다”라고 말했다. 

 

김선경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사무국장도 “마감 조로 근무하다 퇴근하면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깨어 있어서 바로 잠이 오지 않는다”라면서 “그러다 보니 마감 때는 늘 새벽 1시 넘어서 잠 들었다. 어떤 분들은 새벽 2~3시 넘어서 잔다고 한다. 생체리듬이 깨지는 셈”이라고 증언했다. 

 

이러한 근로 형태가 익숙해질 무렵,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전국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됐다. 정부가 모든 사업장에 예외 없이 영업시간 단축을 강제하면서 자연스레 마트 노동자들의 퇴근 시간도 앞당겨 졌다. 모순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마트 여성 노동자들로 하여금 ‘저녁 있는 삶’을 희망케 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홍현애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서울본부장(가운데)는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추가 근로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한 사측을 규탄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홍현애 서울본부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이후 저녁 9~10시에 퇴근 하다 보니 그전에 느꼈던 피로감이 줄고 생활 전반에 여유가 생겼다. 퇴근 1~2시간 차이가 뭐 그렇게 다르냐고 하지만 제 경험 상 확연한 차이를 느꼈다. 거리두기 해지 이후에도 할 수만 있다면 저녁 10시에 퇴근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현 근로기준법상 부녀자는 심야 근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저녁 있는 삶을 경험한 이상,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 역시 “대형마트는 우려와 다르게 밤 9시에 가게 문을 닫아도 망하지 않았다. 이마트는 오히려 이 기간 매출이 증가하기도 했다”라면서 “밤 9시 폐점을 경험한 우리 마트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신세계를 경험했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고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늘었다.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삶이란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전날(10일) 전국 10개 지역 22개 이마트 점포에서 일하는 46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국가권익위원회에 평등권 침해를 구제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을 제기했다. 여성 노동자의 야간 근무의 경우 해당 노동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업무 지시가 불가능함에도 이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압박성 면담을 진행한 이마트가 인권 및 건강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에서다. 

 

▲전수찬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가운데)는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근로에 대한 여성 노동자의 결정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이날 전수찬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은 권익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내 11대 대기업인 이마트가 여사원들의 야간 근로 결정권을 박탈한다면, 어느 기업이 여성 노동자들의 야간 근로 결정권을 지켜주려고 하겠느냐”면서 “그저 하루 지나기 전 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보고, 1~2시간 더 쉬고 싶다는 여성 노동자들의 호소가 무리인가. 밤 10시에 퇴근하고 싶다는 게 그리 큰 잘못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거부를 거부한다!” 이마트의 포괄적 동의 조항
반면, 이마트는 저녁 10시 폐점은 불가하며, 야간 근무 등 추가 근로는 입사 시 포괄적 동의를 완료했으므로 정당한 업무 지시라는 입장이다. 

 

지난 3월 23일 사측은 전 직원들을 상대로 배포한 공지에서 “근기법 70조 1항에 대해 대법원에서는 ‘연장 근로를 할 때마다 당사자 간 합의를 할 필요는 없고 근로 계약이나 취업 규칙으로 미리 연장 근로의 근거를 포괄적으로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사전에 포괄적으로 합의된 연장·야간·휴일근로 합의는 유효하기 때문에 회사의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지시는 정당한 업무 지시”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노조는 “사측의 주장대로 입사 시 포괄 동의를 해 거부할 수 조차 없고 정년 퇴직 때까지 변경조차 되지 않는 불변의 근로 계약 사항이었다면 2014년 이전에는 왜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는 연장, 야간, 휴일 근로에 대한 각 직원마다 동의를 매년 받아온 것이냐”라면서 “사회통념상 추가 근무를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모두 일괄 동의 하게끔 하는 이러한 계약을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황당함을 숨기지 않았다.

 

▲야간 근로 거부 의사를 밝히자 이마트가 회신한 메일 답변. <사진=마트노조 이마트 지부 제공>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 법무법인 ‘여는’ 소속의 조혜진 변호사는 “설령 100번 양보하여 이마트의 주장처럼 입사 당시에 야간 근로에 동의를 하였다 하더라도 현재 야간 근로에 대해 부동의를 하였다면 이마트는 해당 여성 근로자를 다시 야간 근무에 투입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조 변호사는 “사측은 야간 근로를 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여성 근로자에게 다시금 동의를 구하여야 한다. 하지만 사측은 오히려 지시를 거부할 경우 타 부서 발령, 인사 조치가 따를 수 있다면서 주의하라는 협박성 면담을 했다”라면서 “여성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였을 뿐이다. 야간 근로 거부 의사를 밝힌 노동자들이 원치 않는 근로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권익위에서 차별 시정 권고를 내려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라고 강조했다.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서울본부는 지난 1월 12일 심야근로실태 폭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저녁 있는 삶 보장을 근거로 10시 폐점 시행을 촉구했다. <사진=이마트 지부 서울본부 제공>

 

한편, 이와 관련해 이마트 관계자는 <일요주간>과의 통화에서 “각 점포 운영 시간과 관계 법령에 맞춰서 운영하고 있다. 노조 등의 목소리를 좀 더 경청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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