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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지능(AI)이 신약개발의 후보물질 탐색을 넘어 세포와 조직의 변화를 데이터로 구현하고 약물 반응까지 예측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서는 공간 다중오믹스와 첨단 이미징, AI 대형모델을 결합한 연구시설 구축과 제약·IT기업 간 협업이 잇따르면서 신약개발의 일부를 ‘실험’에서 ‘계산’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관건은 이러한 기술이 후보물질 발굴에서 임상·허가·생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실제 개발기간과 실패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
지난 9월 초 중국 광저우 국제바이오아일랜드(广州国际生物岛)에 조금 낯선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있는 상태의 조직을 빠르게 처리하는 장비와 세포의 공간정보를 분석하는 다중오믹스 장비였다. 이 장비들이 향하는 곳은 단순한 검사 자동화가 아니다. 세포의 상태와 변화를 데이터로 재현해 ‘디지털 세포’를 만들고, 이를 디지털 조직과 장기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광저우 국제바이오아일랜드에 건설 중인 인간 세포계보 대형과학연구시설(人类细胞谱系大科学研究设施)은 공간 다중오믹스, 첨단 이미징, 인공지능(AI) 대형모델을 결합해 인간의 발달과 질병,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세포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공간에서 질병을 예측하고 신약 후보물질의 반응을 시험하는 단계까지 가겠다는 구상이다.
표현만 놓고 보면 상당히 미래적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지점은 ‘디지털 인간’이라는 거대한 목표 자체가 아니다. 이 기술이 실제 신약개발의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바이오산업에서 AI의 가치는 결국 여기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신약개발이 ‘실험’에서 ‘계산’으로 이동한다
신약 하나를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많은 후보물질 가운데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찾아내고, 전임상과 임상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후보물질이 탈락한다. 광저우에서 진행되는 실험은 이 과정의 일부를 데이터와 계산의 영역으로 옮기려는 시도다.
인간 세포계보 대형과학연구시설은 세포가 어떻게 변화하고 질병과 노화 과정에서 어떤 상태를 보이는지를 데이터화한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세포와 조직, 장기를 구축해 실제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기 전에 디지털 환경에서 반응을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이것을 임상시험을 대체하는 기술이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연구개발의 앞단에서 실패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을 더 빨리 걸러내고, 유망한 후보를 좁힐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시설에서 개발 중인 조직 보존 절편 장비의 경우 연구진은 기존 30분~1시간 정도 걸리던 조직 처리과정을 이론적으로 10분 이내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동화 공간 다중오믹스 장비는 기존 조직 샘플 검사비용을 약 5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 이름이 아니다. 시간과 비용이다. 신약개발에서 실패를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비용이다. 반대로 잘못된 예측으로 가능성 있는 후보물질을 버리거나 효과 없는 후보를 임상까지 끌고 간다면 AI가 오히려 새로운 비용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AI 신약개발의 경쟁력은 모델의 크기나 발표된 프로젝트 숫자가 아니라 실제 연구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실패비용을 줄였는지를 통해 검증돼야 한다.
◆ 광저우제약과 화웨이가 만난 이유
이러한 변화는 연구시설 안에서만 일어나고 있지 않다. 지난 9월 17일 중국의 대형 제약기업 광저우제약그룹(广药集团)과 화웨이(华为)는 ‘AI 제약 공동혁신연구소(AI制药联合创新实验室)’ 구축을 시작했다. 구조는 흥미롭다. 광저우제약그룹이 실제 신약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AI 적용 과제와 산업 현장을 제공하고, 화웨이는 전문가와 컴퓨팅 역량, 산업 생태계 자원을 투입한다. 양측은 소분자 의약품과 항체, 핵의약품, 중의약 등의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광저우제약그룹과 화웨이가 추진하는 AI 신약개발 프로젝트에는 눈에 띄는 목표도 있다. AI를 활용해 초기 약물분자 발견에 걸리는 기간을 기존 1~2년에서 4~6개월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현재 확인된 성과가 아니라 프로젝트가 제시한 예상 목표다.
AI가 계산을 빠르게 했다고 신약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AI가 찾아낸 후보물질은 다시 실험실에서 검증돼야 하고 전임상과 임상을 통과해야 한다. 이후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고 실제 환자에게 사용된 뒤 시장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따라서 AI 신약개발을 평가하는 질문 역시 달라져야 한다.
AI가 제안한 후보물질 가운데 실제 실험을 통과한 것은 몇 개인가. 임상에 진입한 것은 몇 개인가. 개발기간과 비용은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허가받은 의약품으로 이어졌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AI 제약이 기술 시연을 넘어 산업이 된다.
◆ 광저우는 AI와 바이오 사이에 무엇을 만들고 있나
광저우의 움직임을 조금 더 넓게 보면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지난 8월 광저우 국제바이오아일랜드에서는 ‘AI 기반 신약개발 혁신연합체(AI赋能药物研发创新联合体)’가 출범했다. 눈여겨볼 것은 참여 구조다. 바이오기업과 AI 기업뿐 아니라 산업 플랫폼과 투자기관까지 참여했다. AI 신약개발 개념검증센터와 인큐베이터, 관련 펀드를 조성해 기술과 플랫폼, 자본과 프로젝트를 연결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제시됐다.
나는 이 지점을 중요하게 본다. AI 신약개발이 산업이 되려면 알고리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AI가 후보물질을 찾더라도 이를 검증할 실험실이 필요하다. 임상시험을 진행할 병원이 있어야 하고, 의약품을 생산할 제조시설과 규제 대응 역량도 필요하다. 장기간의 개발비용을 감당할 자본도 필요하다. 결국 AI와 바이오의 경쟁은 컴퓨터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현실의 연구실과 병원, 공장과 시장으로 돌아온다. 광저우에서는 AI의 적용범위가 신약 후보물질 탐색을 넘어 세포치료제 생산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지난 7월 광저우의 재생의학 기업 루이전재생의학(瑞臻再生医学)은 중국과학원 홍콩혁신연구원 인공지능·로봇혁신센터(CAIR)와 함께 iPSC(유도만능줄기세포) 분화·제조 과정에 AI를 적용하는 다중모달 AI 시스템 RC-GPT V1.0을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세포 이미지 등을 분석해 분화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최종 제품의 품질을 사전에 예측하며 생산 배치의 일관성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이 사례 역시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봐야 한다. 광저우시 과학기술국 자료에서도 RC-GPT V1.0의 핵심 기능은 초기 모델링과 개념검증(PoC) 단계로 설명된다. 실제 대규모 생산에서 품질과 비용, 생산성을 얼마나 개선할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할 영역이다.
이 사례가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홍콩이다. 광저우의 바이오기업이 생산현장과 세포 데이터를 제공하고 홍콩의 연구기관이 AI·로봇 기술을 결합한다. 지난 1편에서 살펴본 광저우와 홍콩의 산업적 연결이 이번에는 세포치료제와 AI라는 구체적인 기술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결국 AI도 임상에서 증명돼야 한다
AI가 신약개발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바이오산업의 경제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후보물질을 찾는 시간을 줄이고 실패 가능성을 더 일찍 예측할 수 있다면 연구개발 비용을 낮출 수 있고,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후보물질을 시험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AI 신약개발 기업의 숫자가 늘었다고 산업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대형모델을 만들었다고 신약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투자유치 금액이나 정부 지원사업의 숫자 역시 최종적인 산업 경쟁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후보물질 → 전임상 → 임상 → 허가 → 생산 → 실제 처방과 매출. 결국 이 경로를 얼마나 많은 기술이 끝까지 통과하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글에서 나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왜 차세대 암 치료제의 생산거점으로 광저우를 선택했는지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그 생산시설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게 된다. 그곳에서는 세포를 데이터로 바꾸고, AI가 약물 후보를 계산하며, 제약회사와 정보기술 기업이 함께 신약개발 방법을 다시 설계하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결과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한국 역시 AI 기술과 세계적인 병원, 바이오 생산능력, 제약·바이오기업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도 “AI 신약개발을 하고 있는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의 AI와 바이오 기술은 실제 신약개발의 시간을 얼마나 줄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임상과 허가, 생산과 시장으로 얼마나 이어지고 있는가. 신약개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AI’라는 이름이 아니라 결국 이 질문에 대한 결과일 것이다.
일요주간 / 서정선 기자 jacobxu03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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