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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철원 논설위원 |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서재에 쌓인 책 정리도 할 겸, 서재 한쪽 칸에 자리 잡고 있는 책들 중 읽히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을 박스에 담았다. 줄잡아 40여 권이 넘었다. 정치인의 행사인 출판기념회에서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산 책이다. 긴 시간 방치해 놓은 이 책들은 내용이 하나같아 읽어 보지 않았고 서재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며 애물단지로 남겨져 있었다.
막상 책을 버린다는 아쉬움으로 책 한 권은 펼쳐보았다. 책 앞머리의 유명 인사 몇 사람이 쓴 추천사는 표현만 다르지 내용은 그 말이 그 뜻으로 다 똑같다. 본문도 대게가 자신의 치적과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출마하게 된 동기와 사진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머릿속에는 무엇을 읽었는지 남는 게 없어 기분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런데 나만 그러지 않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랄까. 주변에 이런 류의 책들은 많이 샀다는데 읽어봤다는 사람이 드물다. 정치인들의 책은 그 책이 그 책이라며 혹평이 자자하다. 책을 읽어 감명받았다는 사람은 없고 서재 한쪽에 장식용으로 꽂힌 책의 결말은 폐지 수집처에 버려질 게 자명해 보인다.
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이른바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책 장사가 정치 행사장을 메우고 있다. 지방선거 때 한자리하겠다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어서인지,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출마를 하는 사람 너도나도 출판기념회를 빌미로 책 장사를 하고 있다. 정치자금법의 엄격한 적용으로 선거비용을 모금할 수 없기 때문이라지만 내가 보기엔 꿩 먹고 알 먹는 출판기념회 행사로 자신이 쓴 책에 대한 홍보 효과와 기념회 참석 인사들이 내놓는 봉투가 만만찮아 일거양득을 거두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시즌답게 매스컴마다 ㅇㅇ출판기념회를 알리는 선전이 요란하다. 또 다른 직장으로 변신을 위한 행사장 로비에는 '축하합니다' 리본이 붙은 화환이 2열 종대로 늘어서 있고 출입구는 저자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기에 연실 바쁘다. 행사 시작 전부터 책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다. 출판기념회에 책이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또 중요한지 정치인의 '본령'인 국민 봉사는 온데간데없다. 저자의 정치적 광고 영상만 무대 전면 대형화면에 번쩍이고 있다. 언 듯 보면 결혼식장 풍경 같지만, 이곳은 6.3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가 지지자들에게 책을 파는 곳이다.
출판기념회는 출마를 알리는 사실상의 출정식 행사다. 고위 관료를 지냈던 인물이 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판을 펴는 예비 잔치마당은 홍보를 넘어 조직 점검, 세 과시로 저자와 독자가 만나 책을 논하는 출판기념회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특히 이런 책들은 온ㆍ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을 통해 구매하거나 구독하기 어렵다. 행사만을 위해 제작된 책이기 때문이다. 대중 기만술에 불과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행사를 보며 느낀 점은 국민이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영구히 거둬드릴까 걱정스럽다. 아마도 나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한자리하겠다는 사람들은 책 내용에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법, 미래의 비전을 담아야 하며, 이런 내용으로 책장을 채워야지, 자기 자랑만 잔뜩 늘어놓으며 출판기념회를 정치 선전장으로 이용하는가. 아무리 정치자금법에 묶인 현 제도 안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 주머닛돈으로 선거하는 게 올바른 선거 방식이다. 왜 주권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선거를 하는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출판기념회의 문제를 보자. 경실련에 따르면 2020년 6월 1 일부터 2024년 1월10일까지 현역 국회의원이 연 출판기념회는 연간 91건에 달했다. 이 중 67건이 총선(2024년 4월)을 앞둔 70일 동안 집중적으로 열렸다. 선거 전 출판기념회가 통과의례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반복돼 왔다. 모든 출판기념회가 지금까지의 합법적 돈벌이가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회라는 명칭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저 실소에 부칠 일이나, 유보자 측은 자신의 선거 명운이 달려서 그런지 자못 진지하다.
후보자들의 노골적 책 장사는 사전 선거 행사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공약 발표보다 선거와는 거리가 먼 성악이나 악기 연주 공연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저자의 사진과 이름이 크게 박힌 피컷을 들고 '화이팅'을 외치는 것도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이들의 정치적 행보는 얕아도 너무도 얕으니 어쩔 수 없이 출판기념회 원론을 말하려 한다. 모름지기 바른 정치가라면, 돈 만드는 영리의 한 방법으로 선거 시작부터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이 가진 것으로 선거 행사를 치르려는 바른 정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사유에는 모두 눈 감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유명 정치인이 마음만 먹으면 매번 같은 방법으로 지지자들에게 부조금 형태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게 맞는가를. 정말로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겠다면 할 일은 따로 있다.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책 장사는 한마디로 기만에 가까운 어불성설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某 후보는 국회의원 생활을 몇 번씩 했지만 출판기념회는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이유를 물었더니 막상 시작해 보니 자랑할 건 별로 없고 부끄러운 것이 많아 못했다고 했다. 검소하기로 소문난 그가 무엇이 부끄러워 그런 표현을 했을까.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그 행동을 자제하는 것엔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움은 강하기 때문에 큰 사람을 키워낼 힘이 있다. 하지만 제 살을 깎아 내야 하는 고통도 안겨줄 수 있기에 외면받는다. 대게 책 장사로 출마하는 사람들의 심성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70년대 나온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에서 화자는 탐욕, 허영, 가식에 가득 찬 인간 군상을 겪으면서 말한다. 우리 사회 국어, 수학, 영어 학원은 많은데 왜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느냐고 했다.
정치 성향만 따지자면 상극에 가까운 여당 야당 정치인들은 묘하게 돈 나오는 길에는 함께 어깨동무하며 걸어왔다. 야당은 지난해 출판기념회를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통한 모금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 출판물 판매 수입을 정치자금으로 관리하자는 법안 등이 발의됐지만 별다른 논의는 전무한 상태다. 앞선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나온 바 있지만 모두 안건 심사 대상의 문턱도 넘지 못해 폐기됐다.
그들은 우리는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 손에 방망이를 쥔 이상 아무런 걱정이 없다며 눈도 까딱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후죽순의 출판기념회가 출마자의 통과의례로 자리매김하며 이를 둘러싼 내용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책 내용이 함량 미달이라는 지적과는 별개로 그 핵심에는 돈 문제가 있다. 작게는 몇만 원부터 수십만 원, 수백만 원짜리 봉투로 축하를 하다니, 김밥 몇 줄로 당선이 취소되는 시대에 책 한 권을 팔며 수백만 원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상식에 맞는 것인가. 이러니 정치인들이 싸잡아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것이다.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나선 후보자들이여, 출판기념회가 양거양득이란 전제보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분명 알아야 한다. 주권자인 시민들은 언제까지 당신들 행사에 '들러리'가 되어야 하는가.
돋보기 렌즈로 그들만의 잔치인 출판기념회 행사를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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