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김태형
![]() |
| ▲ 김태형 시인 |
김태형 시인. 1971년 서울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로큰롤 헤븐』(민음사),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문학동네), 『코끼리 주파수』(창비),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문학수첩), 『다 셀 수 없는 열 마리 양』(청색종이), 산문집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마음의숲), 『아름다움에 병든 자』(마음산책), 『하루 맑음』(청색종이), 『초능력 소년』(청색종이), 평전 『엣세이 최승희』(청색종이)를 펴냈다. 시와사상문학상(2016), 노작문학상 지역상(2026)을 받았다. 출판사 청색종이를 운영하며 시 전문 계간지 《청색종이》를 펴내고 있다. 지금은 다자이 오사무 평전을 쓰고 있다.
Q1. 안녕하세요, 선생님. 양평에 머물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먼저 근황부터 듣고 싶습니다.
⯈ 양평 산 중턱 숲속에서 지냅니다. 이곳에 산 지 삼 년째인데,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갑자기 말을 하려면 목이 따라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산문집 『시골빵』을 마무리하면서 몇 년째 다자이 오사무 평전을 쓰고, 청색종이의 시집과 계간지를 만드느라 분주합니다. 하루는 아침에 빵을 굽는 데서 시작합니다. 반죽을 하고, 발효를 기다리고, 굽는 과정을 매번 처음부터 거쳐야 합니다. 책에 적힌 발효 시간이 산 중턱의 부엌에서는 맞지 않아서 시계 대신 반죽을 들여다보는 법을 익혔습니다. 책을 만드는 일도 그렇습니다. 익숙해졌다고 건너뛸 수 있는 과정이 없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이 늘면서 글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구체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손에 익은 반죽도 밀가루를 바꾸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글을 오래 쓴 사람에게도 손에 익은 말투와 문장이 있습니다. 그 버릇대로 쓰면 편하지만, 편하게 쓴 문장은 대개 어디선가 이미 굳어진 문장입니다. 그래서 오늘 반죽이 어제와 같겠거니 하고 넘기지 않듯, 자주 쓰던 말을 일부러 의심해 봅니다.
Q2. “노작문학상 지역상”을 받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오랜 시간 시를 써온 시인에게 이번 수상은 어떤 의미로 남는지요?
⯈ 고맙습니다. 1992년에 등단한 뒤로 지금까지 시를 써 왔고, 청색종이를 연 뒤로는 다른 시인들의 책도 만들어 왔습니다. 작은 출판사에서 낸 시집이 읽히고 호명되었다는 것, 이번 수상이 각별한 이유는 그것입니다. 지역상은 올해 두 번째를 맞은 상으로, 좋은 작품을 쓰면서도 덜 알려진 지역의 시인과 작가를 격려하려고 만든 상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제 시집을 “경건하고 순결한 순례자의 길”이라는 말로 읽어 주셨습니다. 상을 받았다고 시집 안의 질문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 질문을 다음 시에서 어디까지 밀고 갈 수 있을지, 지금은 그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예지 《백조》에 실린 수상 소감에는 노작이 나도향의 책에 남긴 서문 이야기를 썼습니다. 오래된 책에서 우연히 읽은 글인데, 이미 세상을 떠난 동료를 향해 나아가던 문장이 마지막에 “도향군!” 하고 이름을 부르는 대목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자리에서도 말을 끝까지 이어 가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작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게 되어 더욱 각별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말을 붙들고 가겠습니다.
![]() |
| ▲ 2026 노작문학상 지역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전하는 모습 (2026. 10. 24.) |
Q3. “노작문학상 지역상”은 노작 홍사용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새삼 돌아보게 된 노작의 문학정신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 노작의 문학에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자기 작품을 쓰는 일과 문학이 이루어질 자리를 만드는 일이 함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백조》를 비롯한 동인지 활동은 작품을 발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문학을 할 사람과 독자를 만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도 시를 쓰면서 출판사와 문예지를 운영합니다. 좋은 작품을 쓰는 일과 그 작품이 책이 되어 독자에게 닿는 과정을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노작의 문학정신을 오늘의 제 일과 잇는다면, 작품과 지면을 함께 책임지는 태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계간 《청색종이》를 창간하면서, 새로운 문예지를 시작하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목적에 투신하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목적을 좇는 일 또한 시적이라고 믿었습니다. 동인지를 꾸려 지면을 열던 노작 선생의 마음도 그와 멀지 않았으리라 짐작합니다.
Q4. 스무 살 무렵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하셨는데요. ‘시인이 된 것’과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 등단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는 일이었습니다. 시인으로 사는 것은 자기 작품으로 그 이름을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1995년 첫 시집 『로큰롤 헤븐』을 낸 뒤 두 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 아홉 해가 걸렸습니다. 그사이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길렀습니다. 새 시집은 내지 않았지만 시인이 아니었던 날은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도 읽고, 쓰고, 고치는 일을 이어 갔습니다. 등단의 순간보다 그 아홉 해가 저를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등단한 지 서른네 해가 지났습니다. 어떤 때는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허물어 산문집을 엮었고, 이제는 산문집 한 권 분량을 허물어 다시 시를 엮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집 한 권을 내고 나면 다음 시집까지의 시간이 다시 시작됩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 시간을 매번 처음처럼 다시 건너는 일입니다.
Q5. 『로큰롤 헤븐』에서 최근의 시편들까지 지나온 시집들을 한 사람의 생애처럼 펼쳐본다면, 그 안에서 여전히 놓지 못한 화두는 무엇이었을까요?
⯈ 시집마다 다루는 대상과 문장은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놓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 셀 수 있고 다 볼 수 있다고 믿는 순간을 의심하는 일입니다. 돌아보면 첫 시집부터 그랬습니다. 『로큰롤 헤븐』의 「노란 잠수함」은 더 아래로 내려갈수록 “바닥 없이 밝아지는 두 눈”으로 가라앉았고, 『코끼리 주파수』의 「샘」에서는 끝내 두 손 모아 떠먹을 수 없는 “금단의 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시집의 표제시 「다 셀 수 없는 열 마리 양」에서 화자는 양을 하나부터 셉니다. 세다 보면 아홉 번째 양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세어 아홉까지 한 마리도 잃지 않아도 마지막 열 번째 양이 또 보이지 않습니다. 시는 “누가 아직도 열 마리의 양을 세고 있는가”로 끝납니다. 고작 열 마리인데도 끝내 다 세지 못하는 그 한 마리가 제 시가 붙들고 있는 자리가 아닐까요. 「달의 뒤쪽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아니다」에서 “달의 뒤쪽은 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쓴 것도 같은 물음입니다. 무엇이 있어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 다 말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빠져나가는 것. 저는 그 빈자리를 서둘러 메우지 않고 시로 남겨 두곤 합니다.
![]() |
| ▲ 양평 집에 모인 문인들. 왼쪽부터 정정화·이재훈 시인, 김대현·최진석 평론가, 문정희·김태형 시인 |
Q6. 시집뿐 아니라 산문집과 시선집도 꾸준히 펴내셨습니다. 시를 쓰는 일과 산문을 쓰는 일은 선생님께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시와 산문은 문장의 흐름 자체가 다릅니다. 시에서는 낱말 사이의 거리와 행을 바꾸는 자리가 의미를 만듭니다. 산문에서는 생각과 경험이 이어지는 과정을 독자가 따라올 수 있게 씁니다. 산문 안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시골빵』에서는 빵을 만드는 일과 그 일을 둘러싼 생활을 따라갑니다. 『엣세이 최승희』나 지금 쓰는 다자이 오사무 평전에서는 자료의 출처와 시기, 서로 다른 기록 사이의 관계를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엣세이 최승희』를 쓸 때는 흐릿한 디지털 자료로는 읽을 수 없던 한자 몇 글자 때문에 원본 고서를 직접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들은 서로 영향을 줍니다. 자료를 읽으며 얻은 구체성이 시로 넘어가고, 시에서 익힌 문장 감각이 산문으로 건너옵니다. 『시골빵』을 쓰면서 마당 한쪽 작은 밭에 밀을 길러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여문 밀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두고 빛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고 메모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른 밀은 빛 때문이 아니라 장맛비를 맞고 그 무게로 쓰러졌습니다. 자연을 아름다운 비유로 바꾸는 순간 그 식물이 실제로 겪은 일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작은 밭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산문을 쓰며 겪은 일이 시의 비유를 다시 보게 한 셈입니다. 장르마다 요구하는 정확성이 다르니, 그에 맞는 문장을 찾습니다. 실은 찾는다기보다는 문장이 스스로 걸맞은 꼴을 갖추어 가는 듯합니다.
Q7. 2016년 《청색종이》를 열면서 새 책보다 절판된 시집, 오래된 책에 주목하셨습니다. 왜 하필 ‘오래된 시집’이었나요?
⯈ 새 책은 서점에서 만날 수 있지만 절판된 시집은 찾는 사람이 있어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출판이 멈췄다는 이유로 읽을 기회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청색종이에서는 그런 책을 다시 독자와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오래된 책을 읽으면 지금의 평가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저자의 다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많이 알려진 작품 외에도 읽을 만한 작품이 있고, 오랫동안 언급되지 않았지만 오늘의 독자에게 말을 거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 책들을 다룰 때는 앞서 쓰고 펴내고 보관해 온 사람들의 역할도 함께 생각합니다. ‘발굴’이라는 말 한마디로 그 시간을 지워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최승희의 1926년 무용 영상이 2014년 국내에 ‘발굴’ 소식으로 알려진 일이 있습니다. 자료를 다시 따라가 보니 그 필름을 찍어 고향 도서관에 기증한 사람, 보존하고 디지털로 옮긴 도서관, 편집해 공개한 미술관이 이미 있었습니다. 저 역시 책에 ‘발견되었다’고 썼다가 그 말을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새 자료를 찾는 일만큼 이미 알려진 자료를 다시 읽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책이 지나온 경로를 살피고 지금 다시 읽을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오래된 책을 다루는 일의 의미입니다.
Q8. 책방과 출판사를 직접 운영하면서 수많은 시인의 원고와 책, 독자를 만나셨습니다. 시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넓어지면서, 오히려 자신의 시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을까요?
⯈ 시집 한 권을 만들 때 원고를 여러 번 읽습니다. 띄어쓰기 하나, 쉼표 하나가 행의 호흡을 바꾸기 때문에, 고치기 전에 그 시인이 왜 그렇게 썼는지부터 다시 묻습니다. 고쳐야 할 것처럼 보이던 자리가 그 시인만의 방식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남의 원고에 닿았던 손길이 제 원고에도 이어집니다. 쓸 때는 꼭 필요하다고 여긴 표현이 몇 달 뒤에는 과해 보이고, 무심코 지나친 한 행이 시의 중심일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시를 쓰는 사람의 자리에서만 읽었다면, 지금은 편집자의 자리에서도 한 번 더 읽습니다. 좋은 시의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원고를 만지며 배웠습니다. 편집자로서는 시인마다의 차이를 살리고, 시인으로서는 제 시에 맞는 선택을 합니다. 이번 겨울에 펴내는 김명은 시인의 시집에는 해설을 맡았습니다. 시인이 12년 만에 묶는 시집이라 원고를 오래 붙들고 읽었습니다. 남의 시를 그렇게 깊이 읽고 나면, 제 시 앞에서도 서둘러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 |
| ▲ 도쿄 미타카 젠린지(禅林寺)의 다자이 오사무 묘에 술을 올리는 모습 (2026. 10. 30.) |
Q9. 《청색종이》는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개입하는 것’을 지향으로 내걸었습니다. 그 지향이 곧 시가 갱신되어야 할 이유라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새로운 시’란 어떤 시인가요?
⯈ 새로운 시를 형식의 낯섦만으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아는 방식으로 사람과 세계를 정리하려 할 때, 그 방식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는 시가 새로운 시입니다. 무엇을 쓰는가와 함께 어떻게 보고 말하는가가 달라져야 합니다. 최근 「유예하는 에로스」라는 글을 쓰고 있는데, 그 글에서 붙들고 있는 것은 결론을 서둘러 확정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처음부터 다다르기를 포기하고 흐릿한 암시에 머무는 것과는 다릅니다. 끝까지 밀고 가면서도, 시인의 해석이 대상의 전부를 대신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독자가 읽고 생각할 자리도 그 과정에서 생깁니다.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문장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마지막 한 걸음만은 서둘러 내딛지 않는 것입니다. 시는 다 말해진 곳에서보다 다 말해지기 직전의 좁은 틈에서 가장 또렷하게 시 자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청색종이》를 편집할 때도 그 태도를 이어 가려 합니다. 어떤 원고를 싣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어떻게 나란히 놓느냐에 따라, 공동체를 바라보고 말을 건네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Q10. 문예지 《청색종이》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문단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시인이나, 독자들에게 새롭게 발견하게 하고 싶은 문학의 흐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계간 《청색종이》는 2021년 가을에 창간해 올가을 통권 21호를 냈습니다. 창간호의 기획 특집 제목이 ‘시는 어떻게 새로워지는가’였는데, 그 물음을 지금도 호마다 이어 가고 있습니다. 십여 년 전 인도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두 나라 토론자들이 한 해에 나오는 문예지가 몇 종인지를 두고 겨루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백 종의 문예지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는데, 돌이켜 보니 문예지의 종수야말로 한 나라의 문화적 척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시 전문 문예지가 하나쯤 더 있어도 괜찮겠다, 우리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다면 한국 시단에 중요한 자리 하나를 마련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청색종이》는 발행인이 혼자 이끄는 잡지가 아닙니다. 주간과 여러 편집위원들이 역량을 다해 함께 만듭니다. 지면은 몇 갈래로 꾸립니다. ‘시:인’에서는 한 시인의 신작과 자선시, 작가론을 함께 실어 그 시인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오직 나는 시인이다’에서는 시인과 긴 대담을 나눕니다. ‘신작시 우리 시대의 시인들’에서는 오래 써 온 시인과 이제 막 이름을 알리는 시인의 시를 한 지면에 나란히 놓습니다. 계절마다 ‘청색지가 선택한 이 계절의 시집’과 ‘이 계절의 시’를 골라 비평하고, 청색지신인상으로 새 시인을 찾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시인을 말한다면, 먼저 떠난 시인들입니다. 올해 봄호에는 박성현 시인을, 여름호에는 박열아 시인을 추모하며 그들의 시를 다시 실었고, 저도 박열아 시인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소설가 하창수 선생이 이상, 박인환 같은 앞 세대 시인을 다시 읽는 연재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시인이 떠난 뒤에도 그 시가 계속 읽히게 하는 일은 오래된 책을 다시 펴내는 일과 같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독자들이 함께 발견해 주셨으면 하는 흐름은 특집에 담았습니다. 봄호에서는 ‘제노사이드와 문학’을 다루며 전쟁과 학살을 문학이 어떻게 증언하는지 물었고, 여름호에서는 ‘트랜스, 시적 영성’을 주제로 시의 언어가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살폈습니다. 가을호에서는 ‘문학장의 구조 변동’을 주제로,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출판 환경 속에서 시인이 자기 리듬으로 쓰는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세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시, 설명할 수 없는 것 앞에 머무는 시, 자기 속도로 쓰는 시. 서로 달라 보이지만 모두 시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 흐름입니다.
Q11.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던 젊은 김태형에게 지금의 김태형이 한마디 건넨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 “첫 시집의 깊은 고요를 의심하지 마라. 다만 거기 오래 가라앉아 있지도 마라.” 『로큰롤 헤븐』에 실린 「노란 잠수함」은 “여기는 너무도 고요하다”로 시작합니다. 쇠사슬에 묶여 가라앉으면서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조여 오는 수압을 견디며 더 깊이 내려가는 시입니다. 시는 그 고요를 두고 “그 얼마나 솟구치는 벅찬 설렘인가”라고 물으며 끝납니다. 그때의 제게는 고요가 곧 뜨거움이었습니다. 그때가 아니면 쓸 수 없던 시입니다. 그 고요를 지키되 거기서 다시 떠오를 줄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생각하는 뜨거움은 그때와 조금 다릅니다. 견디며 가라앉는 데서만이 아니라, 마지막 말을 향해 끝까지 나아가면서도 그 말을 서둘러 확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뜨거움입니다.
Q12. 《청색종이》의 앞으로 계획과, 선생님 개인의 바람을 함께 들려주세요.
⯈ 청색종이는 시집 출판과 계간지 발행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김명은, 신은숙, 정채원, 이명훈 시인의 시집을 차례로 펴냅니다. 원로 시인 강인한 선생님의 60년 시작을 정리하는 시선집도 만들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겨울에 산문집 『시골빵』을 펴내고, 원고지 천 매에 이르는 다자이 오사무 평전을 다듬어 나가는 일이 남았습니다. 『엣세이 최승희』 때처럼 일본어 1차 사료를 살피고 대조하며 사실과 해석의 협곡을 건너야 합니다. 기록 하나하나를 확인하면서도, 한 사람의 삶이 흩어진 일화로 남지 않고 하나의 생애로 이어지는 고리를 찾는 게 저의 역할이지요.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혼슈 북단의 고도마리라는 어촌 마을도 찾아갈 예정입니다. 이 글이 발표될 즈음에는 그곳에 있겠네요.
![]() |
| ▲ 고비사막의 바람을 담은 자작곡을 첼로로 연주하는 모습 |
Q13. 오래된 시집처럼 오래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선생님,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선생님의 책 중 한 권의 책을 권하신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그리고 시도 한 편 부탁드리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시집 『다 셀 수 없는 열 마리 양』을 권합니다. 지금 제가 시에서 붙들고 있는 물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실 수 있는 시집입니다. 제목의 뜻을 먼저 정해 두기보다, 한 편씩 읽으며 어떤 장면과 말이 남는지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끔 이 이상은 쓸 수 없겠다 싶은 때가 있습니다. 엄살을 부리나 봅니다. 그럴수록 더욱 시를 붙들고 있어야겠어요. 이 시집이 마지막은 아니니까요. 이 시집에 실린 「달의 뒤쪽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아니다」를 함께 전합니다.
달의 뒤쪽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아니다
나 때문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
달의 뒤쪽은 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갇혀 있으면서도
길고 좁은 어둠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저곳이 아니라서
가까스로 이해한 문장에만 밑줄을 친다
네가 있어 네가 보이지 않는다고
― 김태형, 『다 셀 수 없는 열 마리 양』(청색종이, 2024)
![]() |
|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부산 덕포동 중흥S클래스 건설현장서 화재 발생...검은 연기 치솟아 [제보+]](/news/data/20220901/p1065590204664849_658_h2.jpg)
![[포토] 제주 명품 숲 사려니숲길을 걷다 '한남시험림'을 만나다](/news/data/20210513/p1065575024678056_366_h2.png)
![[포토] 해양서고 예방·구조 위해 '국민드론수색대'가 떴다!](/news/data/20210419/p1065572359886222_823_h2.jpg)
![[언택트 전시회] 사진과 회화의 경계](/news/data/20210302/p1065575509498471_939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