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A 특별기획 ⑦] 미중 기술경쟁 속 선전·홍콩·광저우, 기술의 길을 다시 짠다

서영현 기자 / 기사승인 : 2026-11-03 1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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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첨단기술 통제 속 ‘홍콩 연구개발+선전 사업화’ 확대…AI 기술·제품은 동남아·중남미 등 제3시장으로
▲ 미·중 기술 갈등과 반도체 수출 통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GBA)가 ‘홍콩 연구개발+선전 사업화’라는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며 breakthrough(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선전과 홍콩, 광저우는 각자의 연구·제조·투자 및 실증 인프라를 연결해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한편, 인공지능(AI) 및 첨단 제조 솔루션을 동남아·중남미 등 제3시장으로 확대하며 글로벌 기술 이동 경로를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챗GPT)

 

 

홍콩에서 연구한 기술을 선전에서 시험하고 제품으로 만든다. 선전에서 사업화한 기술과 제품은 다시 동남아와 중남미 등 해외시장으로 향한다. 미중 기술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전이 그리고 있는 새로운 기술 이동경로다. 선전시가 최근 발표한 ‘인공지능 및 응용 발전 행동계획(2026~2028년)’에는 ‘홍콩 연구개발+선전 사업화’라는 협력모델이 명시돼 있다. 허타오 선전·홍콩 과학기술혁신협력구 선전단지와 선전허타오학원, 홍콩 대학의 첸하이 연구성과 사업화 플랫폼 등을 활용해 기술 연구개발부터 시험·검증, 양산, 시장보급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같은 계획에는 해외시장도 등장한다. 선전시는 인공지능 제품과 서비스의 해외진출 대상지역으로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브릭스 및 일대일로 참여국 등을 제시했다. 안에서는 홍콩과 기술사업화의 연결을 강화하고 밖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찾는 움직임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을 둘러싼 기술통제가 이어지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미국, 첨단 반도체 중국 수출조건 조정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지난 1월 엔비디아 H200과 AMD MI325X 및 유사 반도체의 중국 수출허가 신청을 일정한 보안요건 아래 건별로 심사하도록 정책을 변경했다.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을 자유화한 것은 아니다. 수출기업은 해당 제품의 중국 공급으로 미국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중국 구매자는 고객심사 등을 포함한 수출통제 준수 절차를 갖춰야 하며, 제품 성능과 보안을 확인하는 미국 내 독립적인 제3자 시험도 요구된다.


첨단 반도체를 어느 기업에 판매할 것인지가 기업 간 거래만으로 결정되기 어려워진 것이다. 선전에는 인공지능과 통신, 로봇, 전자·첨단제조 기업이 밀집해 있다. 첨단 반도체의 조달조건 변화는 기업의 연구개발과 생산, 공급망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전은 자체 산업기반을 확대하는 동시에 홍콩과의 연구·사업화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 선전, 2028년 AI 핵심산업 3000억 위안 목표
선전시는 2028년까지 인공지능 핵심산업 규모를 3000억 위안 이상으로 확대하고 인공지능 기업을 300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공지능을 생명과학과 재료과학 등의 연구에 활용하고 첨단제조와 금융, 산업용 소프트웨어 등 기존 산업과 결합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눈에 띄는 대목은 자체 산업생태계 강화와 외부 협력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상대가 홍콩이다. 선전시는 허타오와 첸하이 등을 활용해 선전·홍콩 산학연 협력을 확대하고 ‘홍콩 연구개발+선전 사업화’ 모델을 강화하기로 했다. 연구개발에서 시험·검증, 양산, 시장보급까지 기술이 제품과 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두 도시 사이에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미중 기술경쟁에 대한 선전의 대응을 단순히 ‘기술자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 홍콩·선전, 공동 연구개발에 자금 투입
협력은 정책 문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홍콩 혁신과기위원회는 지난 10월 7일 2026/27년도 중국 본토·홍콩 기술협력 지원사업 가운데 광둥·홍콩 및 선전·홍콩 공동지원 프로젝트의 신청계획을 발표했다. 신청기간은 10월 12일부터 12월 11일까지다. 홍콩과 중국 본토의 대학·연구기관·기술기업이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홍콩과 광둥 또는 선전의 담당기관에 각각 신청하는 방식이다. 홍콩 정부는 중국 본토와 홍콩 사이의 혁신·기술 요소 이동을 촉진하고 산업계와 대학, 연구기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사업 목적으로 제시했다. 

 

서로 다른 제도를 가진 두 지역이 공동과제와 자금을 통해 연구개발을 연결하는 구조다. 이는 GBA가 단순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도시들의 집합인지, 실제 하나의 혁신경제권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도로와 철도가 연결됐다고 하나의 산업권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동연구가 이뤄지고 기술이 기업으로 이전돼야 한다. 자금이 투입되고 시험과 양산을 거쳐 제품이 시장으로 나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 같은 움직임이 반복돼야 행정구역과 제도의 차이를 넘어선 산업의 연결이 만들어진다.

 

● 홍콩, 연구와 자본·해외시장 연결 확대
홍콩의 역할도 자금조달에만 머물지 않는다. 홍콩 정부의 2026년 정책자료를 보면 대학 연구성과의 사업화와 신산업 육성, 기술기업 투자, 해외시장 진출을 함께 지원하려는 방향이 나타난다. 홍콩투자관리공사는 첨단 핵심기술과 생명·건강기술, 신에너지·녹색기술 등을 포함해 200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이 가운데 11개 기업이 홍콩 증시에 상장했고 30개가 넘는 기업이 2026년 상장을 신청했거나 추진할 계획이다. 투자기업의 해외사업도 확대되고 있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홍콩투자관리공사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 가운데 약 70%가 해외사업을 설립했거나 확대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 기업의 상장과 자금조달 창구를 넘어 연구성과와 투자, 기업의 해외사업을 연결하는 기능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다. 미중 기술경쟁이 이어질수록 기업은 기술만 확보해서는 해외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 어느 지역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어떤 시장으로 진출할지, 서로 다른 국가의 규제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함께 판단해야 한다.


● 광저우, 올해 AI 적용 현장 450개 추진
GBA의 변화는 선전과 홍콩에서 끝나지 않는다. 광저우시는 지난 5월 ‘인공지능 산업 2026년 업무요점’을 발표하고 올해 경쟁력과 산업 확산 가능성을 갖춘 40개의 분야별 대형 인공지능 모델을 육성하고 450개의 인공지능 응용 현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인공지능을 별도의 첨단산업으로만 육성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광저우시는 의료와 교육, 도시관리, 스마트제조, 금융, 교통 등 14개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스마트제조 분야에서는 올해 70개 이상의 응용 현장을 추진한다.


자동차와 스마트가전, 첨단장비, 전자정보, 바이오의약 등 광저우의 주요 산업을 대상으로 연구개발·설계부터 생산과 경영관리, 유지보수, 공급망 관리까지 인공지능을 적용한다. 의료서비스 분야에서도 50개 이상, 미래산업 분야에서는 20개 이상의 응용 현장을 추진한다. 광저우시는 올해 상반기 인공지능 산업투자기금을 구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기술개발과 산업 적용, 자금지원이 따로 움직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선전·홍콩·광저우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선전은 인공지능과 첨단제조의 산업기반을 확대하면서 홍콩과 연구성과의 사업화 경로를 넓히고 있다. 홍콩은 연구와 투자, 기업의 해외사업을 연결하는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광저우는 인공지능을 기존 제조업과 의료·교통 등 실제 산업·도시 현장에 적용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서로 다른 산업기반과 제도를 가진 도시들이 같은 기능을 복제하기보다 필요한 부분에서 접점을 늘리는 방식이다.


● 선전 AI, 동남아·중남미 등 제3시장으로
선전의 인공지능 계획에는 또 하나 주목할 내용이 있다. ‘AI 해외진출’이다. 선전시는 중국산 인공지능 기초 소프트웨어·하드웨어와 표준 등을 묶어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점지역으로는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브릭스 및 일대일로 참여국 등을 제시했다. 현지 클라우드 기업 등이 이미 구축한 인프라와 사업망을 활용해 인공지능 응용을 확대하고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생태계와 솔루션, 산업표준까지 해외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미중 기술경쟁을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국가만 놓고 봐서는 전체 흐름을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이유다. 미국이 첨단기술의 중국 이동에 조건을 두는 동안 중국의 기술과 기업이 향하는 다른 길도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기업의 동남아·중남미 진출을 미국의 기술통제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장 확대와 생산비용, 현지 규제와 관세, 고객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다만 선전시가 하나의 인공지능 산업계획 안에서 자체 산업생태계 확대와 홍콩 협력, 제3시장 진출을 동시에 제시했다는 점은 이전과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 세계화가 끝나는가, 기술의 길이 달라지는가
미중 기술경쟁이 GBA의 혁신역량을 결국 강화할지 약화시킬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미국은 첨단기술의 중국 이동에 국가안보와 수출통제라는 조건을 두고 있다. 중국은 자체 기술과 산업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그 사이 GBA 내부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선전은 홍콩의 연구역량과 자체 제조·사업화 기반을 연결하고 있다. 홍콩은 연구와 투자, 기업의 해외사업을 연결하려 한다. 광저우는 인공지능을 제조와 의료, 교통 등 실제 산업현장으로 가져가고 있다. 밖으로 향하는 길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첨단기술 이동이 까다로워지는 동안 동남아와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 다른 지역과의 연결이 산업정책에 구체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도 이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GBA를 단순히 ‘중국의 큰 시장’으로 보면 변화의 일부만 보게 된다. 어떤 기술에서 중국의 자체 공급망이 강화되고 있는지, 어느 분야에서 외부 기술과 협력이 필요한지, 홍콩의 연구와 자본이 선전·광저우의 산업기반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미중 경쟁이 세계화를 끝내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오히려 기술과 자본, 기업이 이동하는 길이 달라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세계 1위 혁신클러스터로 평가받은 선전·홍콩·광저우가 달라진 국제경제의 규칙 속에서도 연구와 기술, 자본과 시장을 계속 연결할 수 있을지가 다음 시험대다.

 

 

일요주간 / 서영현 국제경제부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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