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폴리페서의 특권의식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1-06-07 09: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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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나는, 본래 개개인과 관련된 정치적 행위를 소재로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폴리페서(정치교수)의 정치 행위와 글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 글들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구별되지 않았고 말과 삶을 분간하지 않기에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행위는 항상 구분하기가 모호하다. 그들은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말하기에 자신들의 변명은 늘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이리저리 불어나 그 말들 왜 지껄이는지 그 뜻을 알기가 어려웠다.

폴리페서들은 항상 자신의 주장만 정답이라 말하며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을 하지만, 그 말들은 들을수록 허망하고 허망할수록 격렬하고 격렬할수록 무내용하고, 무내용할수록 진지하고, 진지할수록 기만적이기에, 컴퓨터 자판 앞에서 사람 사는 일을 생각나는 대로 글로 써 세상에 내보내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나는 그 말들이 너무나 멀어서 마침내 그 의미 내용에 닿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 시비에 관해 무관심 하려 했지만, 작금의 세태를 보니 읽히거나 설명되는 것이 아니어서 글을 쓴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이 출간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조국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책이 인쇄도 되기도 전 4만 부나 팔렸다. 도대체 조국 법무장관은 무슨 억울함에 사무쳤기에 글자 한 자 한 자를 가족의 피를 찍어 글을 써 내려갔을까? 이 사회가 그를 어떻게 했기에 그토록 억울한 게 많은가. 그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가족의 삶이 나의 정치 행위 때문에 고통받아야만 하는가."를 세상에 묻는 책엔 적개심으로 불타는 격정의 언어가 화산처럼 폭발해 있다.

이 책의 주 내용은 누가 뭐라 해도 내 편이 더 많다는 계산과 전략적 선전으로 쓰여 졌다. 자신이 검찰 권력과 개혁의 희생을 주장하며 회고록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자신을 치장한 상황에서 글을 읽는 독자들은 무엇을 판단할 수 있을까?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라는 대목의 협박성 절규는 자신의 저지른 행위와 서민 정서는 생각하지 않은 몰상식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이 몰상식은 사실을 사실로 정립시키지 않고 사실을 내 편 정서 속에 은폐시킴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기만 책략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기만은 국민을 끝없이 무지몽매 속에 가두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나는 이 글이 다 맞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행위에 '옳다' '옳지 않다'라는 잣대를 들여대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적인 내면이 세상에 드러나 잘나가던 한 생애가 망가진데 대한 증오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 했다. 그러나 굳이 주절대는 이유는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바친다는 책의 주(柱) 내용이 한 나르시스트의 극진한 '자기 사랑' 이야기로 자기변명과 타인의 혐오로 쓰여 졌기 때문이다.

그의 변명 글에는 이름 모를 시민, 택시기사, 빵집 할머니, 식당 주인 등 서민층들이 건넨 가슴 찡한 사례 수십 건을 끌어드려 동정심을 유발시켰고 심지어 18세기 실학자로 귀향 생활 중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소환해 자신의 처지를 격상했다. 혐오의 화살은 검찰과 보수 세력, 언론, 야당에게 쏘며 '조로남불'이라는 단어를 다시 각인시켰다.

나는 공인(公人)의 사인(私人) 됨을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우리네 삶에 개인 생활과 의견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개인이 공직자이거나 사회적 지도자일 때는 그 기준이 달라진다. 공직자는 소명의식이라는 기준이 따르기에 국민의 평균적 도덕성보다는 조금 더 높아야 한다. 올바른 삶이 무엇이며 이웃의 정서가 어떠한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 있다. 삶이 아름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하다. 내로남불이 아닌 언행일치다.

금수저 태생인 조국 전 장관은 사는 방식이 특권을 좇았고,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한 그가 특권이 박탈되면서 대중을 향해 내미는 그의 많은 하소연성 질문과 증오는 자신을 내려놓지 못한 무 내용한 언어일 뿐이다. 그 글들은 아무런 사실에도 입각해 있지 않고, 화답하는 자기편들의 정서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 또 다른 이름의 정치 권력화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뻔한 하소연의 답변은 뻔할 수밖에 없다. 이 뻔한 것을 한데 끌어모아 여론에서 이기려 한다면 결과야 어떻게 되었든 그 사회는 무지한 사회며 그 사회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은 바보들이다. 여론으로 사실을 뭉개버리는 사회는 올바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다 라는 사실을 잊었는가.

왜 이리 잊을만하면 또 불쑥 고개를 내밀며 세상을 편 가르기로 갈라놓는가.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본인도 편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조국의 시간에 머물러야 하나. 이젠 조국의 시간을 떠나 국민의 시간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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